도쿄돔에서 야구경기가 열렸다.
깨달음과 나는 솔직히 야구에 별 취미가
없지만 사업상 의리로 구매해야할 티켓이
매해 주어지기에 도쿄에서 시합이 있는 날이면
되도록이면 보러가려고 한다.
맥주와 간단한 안주거리를 사서
어느편도 응원하지 않는 중립을 지키며
경기를 지켜보았다.
우리 앞에 앉은 아저씨 두명은 맥주를 파는
아가씨들에게 번갈아가면서 실없는
농담 따먹기를 했다.
고향이 어디냐, 아까는 다른곳을 보고 있어서
다른 브랜드 맥주를 샀다, 치마 길이가
회사마다 다르냐? 사진을 같이 찍을 수 있냐,
뒤로 한번 돌아 봐라, 저기 핑크옷 입은
아가씨랑 친하냐 등등 듣고 싶지 않아도
앞좌석과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아니 아저씨들 목소리가 상기되어서인지
너무도 또렷이 들려왔다.
내 표정이 별로였는지 나를 쳐다보던 깨달음이
내 귀에 대고 남자라는 동물은 원래
저런다면서 신경쓰지 말란다.
[ 신경 안 써. 귀에 거슬릴 뿐이야 ]
[ 남자들은 예쁜 여자들을 보면 말을 걸고
싶고 관심 받고 싶고 그런 거야 ]
[ 당신도 그래? ][ 아니, 나는 안 그러지.. ]
7회말을 끝으로 우린 경기장을 빠져나와
미리 예약해둔 가게로 옮겼다.
점장의 추천메뉴를 주문하고 건배를 한 뒤
회사 얘길 했다.
리조트형식의 호텔을 맡게 될 것 같아서
여러군데 시찰을 해야할 것 같다고 했다.
[ 작년 제주도에서 호텔만 돌아봤는데 리조트랑
레지던스도 돌아볼 걸 그랬어..]
[ 올 해 또 가면 되지 ]
[ 그러긴 하네..부산이 좋을까? ]
[ 부산도 관광도시니까 좀 특별한 스타일에
호텔이나 숙박업체가 있을 거야 ]
그렇게 식사를 하고 있는데 카운터석에 앉은
아저씨들이 아르바이트생인 듯한 여종업원에게
농담을 시작했고 점점 원색적인 얘기들이
오갔다. 여름이면 여자들 옷차림이 얇아져서
브래지어 색이 보인다,반바지에 레이스가
달려 있는 건 팬티와 구별이
안 간다는둥,,
종업원 아가씨는 부끄러운지
주방쪽으로 가서는 나오지 않았다.
[ 참,오늘은 어딜가나 똑같은 남자들이 많네 ]
[ 술 마셔서 그럴거야,..]
[ 일본은 남자들이 시모네타
(下ねた-성적인 저속한 농담이나 화제)를
자주 하는 것 같애, 나한테는 안 하지만 ]
[ 당신한테 하면 맞아죽을 것 같으니까 안 하지]
[ 그건 그렇고, 당신 회사 송년회 때 오는
그 히라노 상 있잖아, 그 사람 매년마다
똑같은 저질농담을 하면서
여직원들 옆에 붙어 있잖아,
재작년에는 오죽하면 내가 보다못해
미노 상이랑 자리를 바꿨을까, 그랬더니
자기 술잔 가지고 미노 상 옆으로 기어코
따라갔잖아,.그건 정말 치근덕의 극치야 ]
[ 그래서 작년부터는 히라노를 안 불렀잖아 ]
[ 히라노 상이 당신 동창이여서 뭔 말도 못하고
다들 참은 거지, 당신이 조치를 취했어야 돼 ]
[ 그 자식이 사람은 좋은데,,꼭 술만 마시면
여자들한테 추근거린다니깐,,젊을 때도
그랬는데 그걸 못 고치나 봐 ]
[ 못 고치는 게 어딨어. 당신이 따끔하게 말을
했어야지, 그것만큼 큰 민폐는 없어 ]
우리가 흥분해서 이런 얘길 나누고 있는 사이
주방에 피해있던 종업원이 다시 나와서 아무렇지
않게 서빙을 하고 홀을 정리하고 있었다.
우리 대학원 동기가 회사에 입사해서 상사에게
성추행을 당한 일이 있었다.
회사에서는 쉬쉬하며 밖으로 세어나가지 못하게
상사를 3개월 휴직시키고 동기는
이 일을 두번 다시 문제 삼지 않겠다는 각서를
매번 회의때마다 3장이상 적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냥 넘어가도 될 일을 문제 삼은 게
아니냐는 다른 상사들의 비난 섞인 눈빛이
회사를 그만 둘 6개월동안 계속 되었다고 했다.
가끔 나를 만날 때면 일본에서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을 자주 했었다. 그렇게 가까운
동기의 사건을 직접 봐 와서인지
오늘처럼 남자들이 쉽게 던지는 성적인
농담들이 난 영 귀에 거슬린다.
[ 당신도 친구들이랑 술 마실 때 괜시리
성적인 농담하거나 그러지마, 정말 추해 ]
[ 나는 안 하지,,이제 늙어서인지 그쪽에는
관심이 없어, 오직 맛있는 음식, 죽기 전에
먹어야할 요리들 생각밖에 없어. 한국에
가면 뭐 먹을 건지도 이미 다 조사해 놨지.
그래서 난 여자를 봐도 아무 생각이 없어,
여성 호르몬이 너무 많이 나오나 봐, 히히, ]
[ ............................... ]
더 이상 말을 못하게 철벽을 치는 깨달음..
모든 일본 아저씨들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일본은 대체적으로 한국에 비해 성적인 부분에
관대하고 대담하며 개방적인 게 사실이다.
성문화가 유해질 수밖에 없었던 문화적,
역사적 배경들이 분명 있지만 난 이들의
성적 감각이 여전히 부담스럽다.
이곳에서 18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면서도
적응하기 힘들고 불편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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