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우린 도쿄를 잠시 떠났다.
니가타(新潟)는 아직도 눈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차장 넘어 보여지는 풍경은 한편의 수묵화 같기도
하고 도쿄와는 다르게 이곳은 겨울세상에
갇혀 있는 듯했다. 아침 7시, 신주쿠 출발행
버스투어를 참가하게 된 것은
마지막 눈을 보러가자는 깨달음의 느닷없는
제안이였다. 급하게 찾다보니 유일하게
빈 자리가 남은 투어는 이 곳 뿐이였다.
아침, 점심, 저녁 세 끼가 포함된 버스투어라는
점이 마음에 든다며 깨달음은 아주 만족스런
얼굴을 하고 여유롭게 신문을 읽었다.
아침으로 나온 생선정식을 먹고 난 후 쌀로
유명한 니가타산 쌀 퍼가기 이벤트에 참가했는데
남성 참가자가 별로 없어서인지 깨달음이 두 손으로
쌀을 입빠이 떠 올리자 옆에서 보고 있던
아가씨들이 자기 대신 해주면 좋겠다고 했고
깨달음은 기꺼이 해주려고 두 팔을 걷어 올렸지만
룰 위반이라는 쌀집 아줌마의 차가운 말 한마디에
조용히 가게를 빠져나와 다음 목적지인
버섯농장에 들러 버섯도 하나씩 따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니가타 중심가에 도착해 약 20종의 정종 시음을
하고 제일 맛있다는 술을 두 병 사고
곱게 내린 눈밭에 깨달음은 앞으로 자빠지고
뒤로 드러눕기를 몇 번 하더니
눈사람을 만들면서 놀고 있었다.
[ 깨달음 재밌어? 손 안 시려?]
[ 원래 눈을 보면 눈사람을 만드는 거야 ]
그렇게 즐겁게 논 덕분에 점심은 아주 맛있게 먹고
비록 시음이였지만 20잔정도 술을 마신 탓에
취기가 올라온 우리는 버스에 타자마자
바로 낮잠을 청했다.
우리를 포함한 모두가 낮잠을 자고 일어났을 땐
군마(群馬)의 어느 딸기하우스에 도착해 있었고
깨달음은 평소 한 두개밖에 먹지 않는 딸기를
20개나 먹었다면서 착실하게 꼭지를
세며 내게 보여줬다.
[ 더 먹고 싶은데 못 먹겠어. 배불러서..
당신은 몇 개 먹었어? ]
[ 나는,,30개 정도 ]
[ 진짜 당신 딸기 좋아한다..안 질려? ]
[ 좀,,질려,,그래도 먹을래 ]
깨달음은 자기가 딴 딸기를 내 컵에 부지런히
올려주면서 [ 먹어요, 많이 먹어요]라고 했다.
그렇게 마지막 코스를 마치고 도쿄로 돌아오는데
주말이라 차가 막혀 1시간이상 늦은 도착을 했다.
저녁식사를 예약해 둔 가게에 전화를 드리고
우린 작은 조각케잌 두 조각을 사서 들어갔다.
그리고 촛불을 켜기 전에 먼저 편지를 건넸다.
[ 깨달음, 생일 축하해 ]
[ 고맙습니다 ]
편지를 다 읽고는 얼른 하트를 보낸다.
그리고 기록용 사진?을 위해 촛불을 켜고
몇 장의 사진을 찍고 있는데 점장이 자기가
한 장 찍어 주겠다고 해서 아니라고 정중히
사양하고 다시 케잌을 넣었다.
[ 깨달음, 샤브샤브 맛있어? ]
[ 응 ]
[ 게를 좀 더 시킬까? ]
[ 응 ]
[ 편지,,어땠어? ]
[ 간동(감동) 했어요 ]
[ 진짜 감동했어? ]
[ 응, 사람은 사랑하는 방식이 다 다르니까
난 당신의 사랑법을 이해 해..]
[ 깨달음, 난,,정말 사랑하는 법을
모르는 것 같애 ]
[ 아니야,사랑은 어느 누구보다 많이 가지고
있는데 표현방법이 서툰 것 뿐이야 ]
한국에서 돌아오던 날, 우린 엄청나게
큰 다툼이 있었다.
싸우는 중에도 참 지긋지긋하다고 생각을 했고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말다툼을 했다.
이렇게 매번 같은 문제로 싸울바에 그냥 이혼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마져 들었고
조금씩 지쳐가는 내가 있었다.
처음부터 아닌 것은 단칼에 잘라버리는 성격을
갖고 있는 나는 깨달음과 결혼을 하고
참아야하고 눈 감아야했던 게 많았다.
그럴때마다 역시 결혼이라는 제도가 나라는
사람은 맞지 않는구나 실감을 했고,
결혼이란 게 원래 전혀 다른 남남이 맞춰가며
서로를 인정하며 사는 거라고 교과서적 명답은
알고 있지만 나에겐 그런 일상의 상식들이
전혀 맞지 않았다. 이런 게 결혼생활이고
부부로서 성숙되어가는 과정이라면 전부 놔
버리고 처음으로 돌리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런 일련의 것들을 실제로 행하지 못하고
있다보니 같은 문제들에 부딪히고 에너지를
소비할 때마다 거기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내 숨통을 죄어왔다. 물론 깨달음도 나로 인해
많이 힘들었던 게 분명 있었음을 알고 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명언도 우리에겐
통용되지 않았고 반복되는 트러블이
서로를 아프게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라고
생각하고 있는 깨달음에게 미안하고
고마워서 더 이상 아픈 상처를
만들지 말아야겠다고 다짐을 또 했다.
------- 깨달음,,생일 축하해-----
결혼하기 전부터 축하를 했으니 벌써 10년이 넘었네.
당신과 결혼을 하고는 8년째 맞이하는 생일이야.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을 함께 했네..
참 많은 일이 있었고 참 잘 버텨 왔던 것 같애.
나는 어쩌면 사랑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 같애.
사람을 사랑하는 법이 너무 서툴러서
당신을 좋아하면서도 마음과
다른 말들이 나오기도 하고 그로 인해
당신에게 상처를 줄 때가 있어서
많이 미안하게 생각해. 이젠 적당히 지금의
내 삶을 만족하며 살아야되는데
여전히 난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 같애.
당신이 내게 준 상처가 더 크고,
더 아픈 것 같아서 내 스스로가
그 상황을 참을 수가 없고 받아들이기
힘들 때가 많았어.
그래서도 당신을 아프게 했던 것 같애.
많이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라고 언젠가 당신이
그랬는데 정말 그렇게 되도록 내가 많이 노력할게.
내년 생일까지 아프지말고 행복하자.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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