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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일본은..

일본에서 또 추석상을 차리다.

by 일본의 케이 2019.09.13

좀 이른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왔는데

우리집 발코니에서 한참 작업중이였다.

대대적인 외벽보수공사가 시작된지

 벌써 3개월이 넘어가고 있다.

공사가 시작된 날부터 온 집안에 있는

창문엔 커튼을 닫아두고 지내고 있다.

일주일에 2,3일은 발코니 이용이 가능하다는

공지가 있지만 작업하시는 분들이

때때로 왔다갔다 하시기 때문에

커튼은 계속해서 쳐두는 수밖에 없다.


발코니도 자유롭게 나갈 수 없어 빨래를 

24시간 거실에서 말리고 있는 상황이지만

작업이 끝나는 5시 이후엔 노을진 하늘을 

 볼 수 있어 다행이긴 하다.

내가 12월까지 빨래를 꼬실꼬실 말릴 수 없어

 불편하다고 투덜거릴 때마다

 깨달음은 공사가 끝나고 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로 위로아닌 위로를 했다.

오늘처럼 이렇게 아주 가깝게 눈 앞에서

작업을 하고 있을 때면 난 벽에 몸을 바짝 붙혀

숨기고 몰래?그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해

커튼 사이로 잠깐씩 엿보기도 하고

지금 공사가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

 이번주 공사내용은 무엇인지 상세하게 적힌

 안내장을 한글자도 빠트리지 않고

읽어내려간다. 


다시 커튼을 바로 잡아두고 깨달음에게 

  카톡으로 일찍 들어오라고 했더니

어떻게 알았는지 추석 지낼 거냐면서

 바로 오겠단다. 

 코리아타운에 갈 시간이 없어서 그냥 근처

마트에서 장을 봐 온 모든 재료들을 꺼냈다.

홋카이도를 다녀와서 차분히 추석을 지낼

 예정이였지만 우리 둘의 스케줄상 시간을 

내기 힘들것 같아 그냥 오늘 하기로 했다.

 나물 몇가지 무치고, 잡채를 볶고, 갈비를 찌고

 전을 부쳐서 간단하게 추석상을 차렸다.


[ 깨달음,,뭐 해? ]

밥상에 앉아 얼른 갈비뼈를 하나 입에 물고는 

젓가락을 바로 세우고 컵과 물을 

자기 옆으로 챙겨두었다.

[ 좋게 먹지 그래 ? ]

[ 왜? 갈비는 뜯어야 하는 거 아니야? 나 지금

뜯고 있는 거야, 근데 진짜 맛있다 ]

늑대가 포효하 듯 목을 쭈욱 빼서는

[ 오모니~~맛있어요 ]라고 외쳤다.

[ 어머니가 아니라 나한테 해야지.. ]

[ 추석이니까 오모니한테 맛있다고 하는 거야, 

온 가족들에게 우리도 여기서 추석 잘

쇠고 있다는 걸 알려야할 것 같아서 ]

전혀 일리가 없는 말도 아니였지만 아무튼 

깨달음은 항상 특별한 날의 의미에 맞는

 반응을 자기 나름대로 잘 표현하고 있다.


[ 근데 이거 뭐야? ]

[ 응, 송편대신 그냥 송편맛 나는 떡,,,]

올해는 송편까지 사서 추석상을 차리려고 했는데

못 사고, 궁리한 끝에 떡국 떡을

이용해 만들어 보았다. 

[ 먼저 떡을 끓는 물에서 부드럽게 만든 다음,

참기름으로 코팅을 한 번 시키고

꿀이랑 깨 섞어서 발랐어 ]

한번 먹어보고는 보기와 달리 엄청 

맛있다며 대추랑 같이 먹으니까

 완전 한국맛이라고 좋아한다. 


[ 당신,,역시 요리 천재인 것 같애 ]

[ 너무 치켜 세우지 마세요  ]

[ 응용을 잘 한단말이야,,역시 한국사람은

임기응변이 뛰어난 것 같애.

대처능력이 보통이 아니야,,대단해..

이 대추 올린 게 굳 아이디어야~내가 떡 

없을 줄 알고 사 왔는데 안 사와도 됐겠어 ]

생각지도 못한 떡을 맛보아서인지

꽤나 감동한 것 같았다.

[ 잡채도 맛있고, 전도 맛있고 다~맛있어 ]

[ 많이 드세요~ ]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깨달음이 샤워를 하는 동안

  송편 대신으로 사 왔다는 다이후쿠(찹쌀떡)와

 쿠리킨톤(율란)을 접시에 옮겨 담았다.

[ 분명 떡이 없을 것 같아서 사 왔는데 

이건 이것대로 맛있지? ]

[ 응, 찹쌀떡 먹으니까 진짜 추석 같애 ]

 한국 가족들이 어디에 모였는지, 조카들 얘기도 하며

이젠 명절을 이렇게 둘이서만 보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대화를 하다가 

장모님께 전화해야하지 않냐며 깨달음이

얼른 종이를 가져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일본어로 써내려갔다.


[ 오머니, 깨서방입니다,음식 많이 하셨어요? ]

[ 오메, 깨서방이네,,음식 많이 했냐고? 

많이 했네, 가까우믄 좀 보내주고 싶은디..

그러지도 못하고 괜히 마음에 걸리네 ]

[ 오머니, 10월에 서울에서 만나요~ ]

[ 그래, 10월에 만나세, 내가 서울 갈랑께

광주 내려오지 말고 ]

[ 네,,]

[ 오머니, 추석 잘 보내시고 건강하세요 ]

[ 응, 깨서방도 건강하고 10월에 또 보세 ]

전화를 끊고 난 깨달음이 어머니가 많이 바쁘신 것

같다며 여자아이 목소리가 들렸다고

전화에서도 명절분위기가 느껴졌단다.

여기서도 갈비랑 전이랑 먹었다는 자랑도 하고

 요리 잘하는 딸을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도

하려고 했는데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그리고는 언니나 동생에게 추석음식 사진 

보내달라고 하라며 옆에서 귀찮게 한다.

여기서 잘 먹어 행복하다면서도 한국의 추석상이

몹시도 궁금한 깨달음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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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2019년도 추석을 맞이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웃음꽃 가득하고

풍요로운 한가위 보내세요. 

또한 저처렴 해외에서 명절을 보내시는 분들도

많이 외로워하지 마시고 어디에 계시든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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