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인 오늘까지 이곳은 연휴였다.
연휴 마지막날, 침대에서 뒹굴거리다 느즈막히
내 방에서 나와 열려있는 깨달음 방을
내다봤더니 도면을 치는데 열중이였다.
[ 깨달음, 일 해? 아침 뭐 먹을 거야? ]
[ 아무거나 ]
내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만 한다.
내 노트북에 놓인 편지,,,왠 편지가 싶어
열어보니 생일축하한다는 내용이였다.
9월 23일은 음력생일이여서 올해는
11월 13인데... 결혼 8년간,,
매년 얘길 했건만 올해도 변함없이 깨달음은
9월 23일로 알고 이렇게 편지를 쓴 것같다.
일본에서 대부분 음력이 아닌 양력만 생일을
지내서인지 항상 설명을 해줘도 모르겠단다.
[ 깨달음,,,편지 고마워..근데 진짜 생일은
11월 13일이야,,,,,이건 음력이야,,]
[ 그래? 난 매번 헷갈리네..그냥 9월 23일을
생일로 하면 안 돼? ]
[ ............................... ]
아침을 먹으며 깨달음은 양력과 음력이 왜 다른지
또 설명을 해달라했고 내년부터는 음력생일이
다가오기 한달 전에 미리 말을 해달란다.
그것도 해년마다 하는 같은 말이다.
[ 알았어, 밥 먹고 열대어 수조청소도
좀 하고 그러자 ]
[ 청소보다 생일파티 해야지 ]
[ 생일 아닌데.. ]
[ 아니야, 오늘 축하해야 되니까 조금 있다가
나가자 ]
뭐 먹고 싶냐, 뭐 갖고 싶냐고 물었지만 전혀
계획에 없던 생일날?이여서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아침을 보내고 우린 수조청소와 못다한
가을옷 챙기기를 마저하고 집은 나섰다.
[ 케이크랑 가게는 내가 다 준비했어 ]
가게측에 촛불만 켜겠다는 양해를 구하고
깨달음이 조심히 케익을 꺼낸다.
[항상 고마워]라고 메시지까지 올려진
케익을 내밀면서 작은 목소리로
[ 센 추카하니다(생일 축하합니다)] 란다.
센이아니고 생일이라고 발음교정을
하려다 그냥 넘어갔다.
[ 편지 읽어봤어? ]
[ 응 ]
[ 감동 받았어? ]
[ 응, 근데 언제 썼어? ]
[ 새벽에 일어나 맑은 정신에 썼지.
당신이랑 결혼생활을 뒤돌아보면서,,,,]
[ 그래서 미안해요라고 썼구나 ]
[ 응,,미안한 게 많아서..상처 준 게
계속 떠올랐어...]
뭐가 제일 미안했는지 묻고 싶었지만
말하지 않아도 서로 알고 있는 사건?들이
몇 개 있어서 묻지 않고 앞으로 20년동안
우리 부부가 어떻게 즐겁게 지낼 것인지에
관한 얘길 나눴다.
하루라도 더 젊을 때 지구 반바퀴? 한바퀴를
모두 돌아보고 죽자는 생각은 여전히
두사람 모두 같았다.
[ 우리 여직원, 어제부터 유럽여행 간다며
한달 휴가 냈어, 부부동반으로 ]
[ 아,,그래? ]
[ 스웨덴에 사는 친구도 만나고 렌트차로
여기저기 돌고 온다며 한달간 휴가 달라고해서
좀 놀랬는데 다녀 오라고 했어 ]
우리도 그렇게 다니면 좋겠다고 했더니
자기는 늙어서인지 운전하고 물어 물어
찾아가는 게 귀찮단다.
깨달음은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각 나라에서
한달살기가 아닌 2주간 살아보기를 해보고
싶단다. 그리고 모든 일을 그만두고 나면
한국도 좋지만 역시 하와이에서 고즈넉한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한국이든, 하와이든 건강해야하니까
서로 아프지 말고, 제일 중요한 건 남의
손을 빌려서 살아야하는 삶이 안 되도록,
배우자가 간병인이 되는 일이 없도록
건강에 신경쓰고 살자며 다시 건배를 했다.
[ 내가 편지에 다 못 썼지만 미안하게
생각하는 건 이런 의미도 있어. 당신은
지금이라도 한국에 돌아갈 수있는데
나 때문에 일본에 있는 거잖아,
그게 제일 고맙고 미안해 ]
[ 아니야, 당신 때문에 이곳에 있는 게 아니야,
어떻게 보면 나도 한국보다 여기가 더 편해서
있는 것도 있어,,,근데 20년 가까이 살다보니까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좀 자주 든다는 거지,
돌아가고 싶었으면 언제든지 갔지 ]
[ 나 혼자 두고 갈 수 있어? ]
[ 응 ]
응이라는 대답을 내가 너무 빨리 해서인지
깨달음이 실눈으로 날 째려봤다.
[ 그니까 당신 때문에 내가 일본에 있는 게
아니라는 소리야 ]
[ 그래도 난 그 부분에 많이 고맙고 미안했어,
가족들하고도 떨어져있고,,]
[ 괜찮아, 난 외로움은 안 타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그리움이 좀 쌓일뿐이지 ]
[ 역시,,당신은 차가운 인간이야..]
[ .............................. ]
그렇게 우린 티격태격 웃다가 찡그리기를
반복하며 결론은 아프지 말고 늙자,
건강하게 서로에게 민폐 끼치지말자는
구호를 외치고 생일축하를 마쳤다.
집에 돌아와 다시 깨달음 편지를 읽어본다.
[ 언제까지나 사랑합니다] 만 한글로 적혀있다.
전체 글을 한글로 쓰려고 했는데 시간이
너무 걸릴 것 같아서 가장 중요한 대목만
번역기 돌려 썼다는 깨달음.
상처 준 것에 대한 반성과 내가 있기에
자신이 존재한다는 그런 내용,,앞으로도
지금처럼 사랑을 듬뿍 주라는 요구까지..
그리고 마지막엔
둘이서 오래오래 살잔다.
길고 장황한 내용은 아니지만 정말 하고
싶은 말들이 꼭꼭 집어 적혀있다.
근데 왜 깨달음은 자기 때문에 내가
일본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을 했을까..
난 한번도 그런식에 얘길 한 적이 없는데..
그런 불안감을 갖게 했다면 나한테도 분명
문제가 있다는 것일게다.
좀 이른 생일덕분에 깨달음 마음에
들어있는 걱정거리들을 엿볼 수 있었다.
꾹꾹 눌러 쓴 [언제까지나 사랑합니다]가
모든 걸 말해주고 있어 많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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