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멋 부리기가 힘들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습관처럼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양말을 챙겨 신는다.
한껏 멋을 부려 칠부바지를 입고 현관문을
나섰다가 발목과 목덜미에 스치는 찬바람에
놀라 다시 들어와 머플러와
발목까지 가려진 청바지로 바꿔 입는다.
20대 때는 칠면조라는 별명을 들을만큼 패션에
신경을 썼고, 나름 멋쟁이라는 소릴 들었던 내가
이젠 멋보다는 따숩고 부들부들한 소재로
만들어진 옷들을 찾아입는다.
멋내다 얼어죽는다는 말이 명언이라
합리화시키며 스스로의 나이듦을 곱씹는다.
신문 광고에 나온 건강식품이나 건강유지법,
뇌호흡, 반신욕, 숲속생활 등,,
건강 관련단어들에 귀가 솔깃해진다.
쉬는 날이면 온천이나 찜질방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들고, 따끈한 국물이 있는 곳으로
발길이 자꾸만 가기도 한다.
커피숍에 가게 되면 여름에도 왠만해서
차가운 음료를 마시지 않은지 오래됐고,
쥬스도 얼음을 빼달라는 주문을 하곤 한다.
2. 작은 것들이 마냥 귀엽다.
조그만한 아이들이 엄마랑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풍경을 보고 있자면 나와 전혀 상관없는
타인들이지만 괜시리 흐뭇해진다.
유치원에 다니는 꼬마들이 알 수없는 말들을
쏟아내며 조잘거리고 깔깔 거리는 걸 보면
발걸음을 멈추고 엄마 미소를
짓고 있는 내가 있다.
서툰 발걸음으로 이리뛰고 저리뛰는 아이가 행여나
다칠세라 괜시리 손을 뻗어 받쳐주려고 하고
꼬마가 날 쳐다보면 이 세상에서 가장
밝은 미소로 손을 흔들어 빠이빠이를
계속 해주는 내가 있다.
길을 지나다 애견샵이 눈에 띄면 잠깐이라도
들러 주먹만한 강아지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나온다. 지금은 사정상 애완견을 못키우고
있어서 더 애뜻한 것이겠지만 산책하는
강아지들만 봐도 예뻐서 마냥 쳐다보고 있는
내가 가끔은 안쓰러울 때도 있다.
3. 몸과 마음이 따로 논다.
살짝 베인 상처에 약을 발라도 잘 낫지 않고
오래가며 때론 어디서 어떻게 난 상처인지
기억이 안 나고 모를 때도 많다.
정기 검진외에 받게 되는 건강검진 결과가
항상 신경 쓰이고 몸에 좋다는
영양보조제를 여행을 갈 때도 잊지 않고
챙겨가서 꿋꿋히 먹는 나는 완벽한 아줌마다.
튀김류를 좋아해서 특히 새우튀김이라면
자다가다 벌떡 일어났던 내가
이젠 텐동이나 덴뿌라 정식을 주문해도
반만 먹고 나머진 깨달음에게 넘긴다.
5마리는 거뜬히 먹었던 새우튀김도 요즘은
속이 부담스럽다. 면음식도 마찬가지로
소화가 더딘 것 같아 메밀로 바꿔서
꼭꼭 씹기를 반복해서 먹고 있다.
앉아서 일어설 때면 무릎관절에서 우두둑 나는
뼛소리가 너무 선명하게 들려 부끄러울 때가
있고 나도 모르게 곡소리가 내며
일어설 때면 갑자기 슬퍼지기도 한다.
4. 관혼상제가 늘어간다.
친인척, 사회생활에 대소사가 많아졌다.
다음주엔 직장 동료의 딸이 결혼을 한다고 했고
작년에는 동창 딸이 시집을 갔고, 대학 후배의
아버님은 하늘의 부름을 받으셨다.
2달전엔 조카가 아이를 낳아 난 이제
이모할머니가 되었다.
갓 50을 넘었는데 내 주변은 시간에 맞춰
성장하느라 바삐 움직이고 있다.
생과 사, 삶과 죽음이 가까이서 일어나고 있으며
난 이제 그들과 함께 슬픔을 같이 하며 울기도 하고
기쁨을 나누며 축하를 보내는 자리에 서있다.
어리게만 봐왔던 친구와 친척들의 자녀들이
군대를 가고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있다.
(다음에서 퍼 온 이미지)
4. 음주가무가 버겁다.
결혼 전부터 깨달음과 나는 술을 좋아했다.
요즘은 와인을 주로 마시지만 예전에는
흥에 겨워, 분위기에 취해,
막걸리, 소주, 칵테일, 양주, 정종까지
그날 느낌에 맞게, 레스토랑 점장의 추천에
맡겨 마시고 또 마셨다.
그리고 다음날이면 거뜬하게 일어나
논문을 정리하곤 했는데 이젠 머리가
지끈 거리고 몸이 천근만근이여서
아무것도 못하고 쓰러져 술기운이
빠질 때까지 기다린다.
컨디션이 좋아 기분좋게 노래방까지
다녀온 다음날은 영락없이 물먹은 하마처럼
축축쳐져서 정신 차리는데 한참이 걸린다.
오랜만에 만난 동료들이나 친구는 2차, 3차를
원하기도 하지만 내 몸이 거부의사를 표한다.
전형적인 야간형 인간으로 올빼미로 태어났냐고
할 정도로 밤을 즐겼던 내가 이젠 11시가 되면
눈꺼풀이 무거워서 침대를 찾는다.
그래도 옛날? 젊었을 때 기운을 생각해 책을
펼쳐보는데 눈도 침침해져 글씨가 두겹으로 보여
이내 포기하고 바로 잠을 청한다.
5. 만남과 헤어짐이 짧다,
2주전, 모임이 있었다. 공적으로 만나
약간의 사적인 요소가 들어간 모임인데
돌아오는 길에 머릿속이 답답했다.
어리적부터 말수가 적었던 나는 요즘들어
더 말수를 줄었다. 그래서인지 굳이 서로를
이해하고 파악하기 위해 설명이
필요한 사람들을 만나는 게 지친다.
이것은 이렇고, 저것은 저랬으며 나는 이렇고,
당신은 이러하니 이러는 게 좋네, 마네라는
여러 말, 많은 말들이 오가는 만남이 피곤해진다.
그닥 듣고 싶지않고 궁금하지 않은 개인사를
풀어놓으면 자리를 피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말이 많은 자리에서는
더더욱 입을 다물게 되고 말이 많은 사람과는
거리를 두고 싶어진다.
한국에서는 노인들에게 입은 닫고 지갑을
열어라는 말을 한다고 하던데 나이들수록
많은 말들이 필요치 않는 만남들,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사람들이 편하다.
(일본 야후에서 퍼 온 이미지)
올 해들어 갑자기 연락이 끊어진
친구(카톡에서 사라짐)에게
안부를 물으려 애쓰지 않고 있다.
예전같으면 기종을 바꾼 건지, 이사를 한 건지,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되고 궁금해서
내쪽에서 어떻게든 연락을 취하려 했는데
이제는 언젠가 만나게 되면 만날것이고 아니면
아닌데로 살면 되는 거라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만남도 그렇듯 헤어지고 이별하는 것에
감정소비를 하지 않게 되었다.
감정이입하지 않는다는 건 인간관계에서도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게 살고 싶다는
나이듦의 증거일 것이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디지털에서
아날로그로 회귀되는 과정인 것 같다.
느림을 의미하는 아날로그처럼 몸과 마음도
그리고 행동도 느려져만 간다.
그래서 때론 추하게 보일 때도 있고 머리회전이
원활하지 못해 건망증이 생기고
기억도 가물가물 거린다. 세월은 어찌보면
너무 정직해서 잔인하기도 하지만
그냥 그대로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며
사는 것만이 정답인 것 같다.
옛날에는, 나 어릴적에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고
얘기하다가 삼천포로 빠질 때도 종종있고,,
새로운 것보다는 익숙한 것들이 좋아지고
아이돌 가수 이름, 맴버들 얼굴이 헷갈려
자꾸 봐도 관심이 생기지 않고,,,
점점 머릿수는 엷어져만 가고 있고,,.,,
피디나 의사가 나보다 훨씬 어리게 보일 때나,
마트에 놓인 비닐봉투를 쉽게 열지 못할 때마다
내가 나이 들었음을 실감하지만 우아하게
나이를 먹으면 청춘보다 더 아름다운
중년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싶어진다.
욕심을 내려놓고, 삶의 여유를 가지며
말하기 보다는 듣기를 많이 하며 살고 싶다.
한마디 떠드는 것 보다 살며시 응원의 박수를
쳐줄 수 있는 넉넉한 중년이 되고 싶다.
인간이 나고 자라고 늙고 죽고,,이 모든 과정이
자연스러운 자연현상일 뿐인데,
50대가 되어 보니 몸이 말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리게 되었다.
오늘은 내일보다 하루가 젊으니 나이들어감에
서러워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드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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