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근처로 꽃구경을 나왔다.
벚꽃이 만개하고 거리에 사람들이 늘어나며
감염자 수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
코로나 걱정을 안 할 수 없어 올 해도 그냥
꽃구경은 내년으로 넘길 생각이었는데
집 앞 공원이라도 다녀오자는 깨달음 제안에
흔쾌히 따라 나섰다.
흐드러진 벚꽃 틈 사이로
꽃잎이 하늘하늘 떨어진다.
이번 주말이면 꽃들이 질 것 같다며
조심스레 꽃망울을 만져보던 깨달음이
갑자기 흔들어 보고 싶다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사람들이 많다며 바로 포기했다.
그것도 잠시, 사람들 발길이 뜸해지자
떨어지는 꽃잎을 잡고 싶다며 다시 아이처럼
껑충껑충 뛰어오르기를 몇 번했다.
[ 깨달음, 그만해,, 사람들이 쳐다봐 ]
[ 정말 따는 건 아니야, 떨어지는 걸 기다리는 거야,
그냥 갑자기 도깨비 생각이 나서 해 봤어 ]
지난주에 드라마 도깨비를 보는 것 같더니
벌써 다 봤는지 환상적이면서 애절하고 신비로워서
재밌었다며 나에게도 꼭 보라고 권했다.
그리고 벤치 옆에 떨어진 벚꽃잎을 손에
주어 담아서는 내게 내밀었다.
[ 거기서는 단풍잎이었는데 나는 이 벚꽃잎을
잡았어, 당신이 만져 봐 ]
[ 재밌었어? ]
[ 응, 내가 본 드라마 중에서도 상당히 좋았어]
[ 난 현실적이지 않아서 별로인 것 같던데.. ]
[ 제대로 보지도 않았다면서? 재벌 2세 만나서
연애하는 뻔한 스토리보다
훨씬 순수하고 좋은데 무슨 소리야? ]
[ 재벌과의 연애는 어쨌든 희박하지만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지만 도깨비는 현실성이 없잖아 ]
[ 모든 드라마는 거짓이고 비현실적인
얘기야, 그런데 도깨비는 어릴 적 동화 속에서
나오는 얘기처럼 순수하고 맑잖아,
난 도깨비가 있다고 믿어 ]
도깨비가 있다고 믿는 순수한? 아저씨에게
현실성을 따져서는 안 될 것 같아서
이쯤에서 그만뒀다.
점심을 먹기 위해 장소를 옮기는데
도깨비를 검색해서 주인공들 이력을 살피고
여주인공 너무 귀엽다며 이미지 사진을
꺼내서는 내게도 보라며 얼굴에 갖다 댔다.
[ 요즘은 사극 안 봐? ]
[ 응, 사극을 너무 많이 봐서 좀 쉬려고
지금은 최근 것 보려고 하는데 해년마다
한국 드라마 랭킹이 달라서 볼 게
너무 많은데 도깨비가 1위였어 ]
[ 지금은 뭐 보는데? ]
[ 제빵왕 김탁구랑 태양의 후예를
번갈아서 보고 있어, 당신은 봤어? ]
[ 태양의 후예는 봤어 ]
[ 제빵왕은 왜 안 봤어? ]
내 취향이 아니라고 하려다가
그냥 시간이 없어서 못 봤다고 넘겼다.
난 솔직히 드라마보다는 영화 보는 걸 더
좋아해서 일부러 찾아보거나 그러진 않는데
깨달음과는 좋아하는 장르도 취향도 확연히 다르다.
[ 현대물도 재밌지? ]
[ 시대극은 시대극대로, 현대물은 현대물대로
아주 세련되게 잘 만드는 것 같아.
도깨비도 그렇지만 태양의 후예도 스토리
짜임새가 튼튼하고 스케일이 달라,
연출도 좋고 모든 신들이 그림이야 ]
[ 같은 작가가 쓴 작품일 거야. 김은숙 작가라고 ]
[ 그래? 그럼, 그 작가 작품을 다 봐야겠네,
미리 알려주지 그랬어, 그랬으면 내가
드라마 고르는데 편했잖아 ]
아주 귀한 정보를 얻은 듯 기쁨에 미소가
얼굴 가득 퍼졌다.
이 날밤, 12시가 다 되어 가는데도 깨달음은
혼자서 거실에 앉아 제빵왕을 보고 있었다.
취침시간이 10시에서 10시30분 사이로
정해진 사람인데 내가 다가가는 걸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온 신경을 쏟아붓고 있었다.
[ 깨달음, 지금 11시 40이야, 근데 왜
태양의 후예 안 보고 김탁구 봐?]
[ 이걸 빨리 보고 끝내려고 지금 늦게까지
보는 거야, 빨리 보고 나서 김 은숙 작가 것을
연속으로 보려고, 오늘 밤에 다 보고 잘 거야 ]
지난 3월 25일, 내게 결혼해줘서 고맙다는 내용의
편지를 썼을 때, 깨달음은 도깨비를 보면서
나와 자기를 보는 것 같아서 눈물이 났다며
마치 주인공 [공유]가 된 것마냥 간절함이
뚝뚝 떨어지는 애절한 내용들이 적혀 있었다.
지금껏 이렇듯 애정표현을 글로 써 내려간 적이
없던 깨달음인데 변한 건지 드라마 속에서
빠져나오질 못했는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달라진 모습이였다.
원래 순진함과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건 인정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드라마 속 주인공인 듯 살아가는
사람은 좀처럼 보기 힘들 것이다.
마지막에 여보~~~~~! 는 또 뭔지...
한 번도 여보라 부르지 않았으면서......
드라마를 많이 본 효과겠지만 작게나마
변화를 보이는 것은 좋은 영향을
받았다는 거라 믿고 싶다.
'일본인 신랑(깨달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편이 먹고 싶어 나열한 음식들 (0) | 2021.07.26 |
---|---|
요즘 남편이 외운 한국어 (0) | 2021.05.04 |
내년으로 미룬 남편의 생일선물 (0) | 2021.03.13 |
나 몰래 남편이 주문한 것 (0) | 2021.02.15 |
광고 수익금을 남편에게 줬다 (0) | 2021.01.1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