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7일이면 긴급사태 선언이 끝날 거라 생각했는데
2주간 연장이 되었고, 감염자의 감소가
무뎌지고 있는 상황이 계속되자 오늘은
이 상태로라면 5월까지 연장될 수도 있지
않겠냐는 얘기가 조심스레 의료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아침 뉴스를 함께
듣던 우린 주말로 미뤘던 식사를
오늘 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해 집을 나섰다.
프린스호텔 중식당이 코로나로 영업중단 상태였다.
우린 그것도 모르고 찾아갔다가 발길을 돌려
에비스(恵比寿)로 향하면서 전화를 넣었다.
예전 같으면 당일 예약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인기 가게였는데 코로나 때문인지
순조롭게 예약이 가능했다.
가게에 도착하니 바로 알아보고 창가 쪽으로
안내를 해 줬는데 깨달음이 소파석이 좋다며
옮기자고 했다.
29층이니까 밖이 훤히 내다보이는 곳에 앉아
먹었으면 좋겠다는 내 생각은 접고 오늘은
깨달음이 주인공이니까 그에게 맡겼다.
스탭에게 양해를 구한 뒤 미리 사 온 롤케이크를
테이블에 올려 촛불을 켰다.
[ 접시 가져다 드릴까요? ]
[ 아니요, 사진만 찍을 거예요. ]
[ 깨달음, 생일 축하해 ]
[ 고마워 ]
[ 소원 빌어 봐 ]
[ 음,, 없는데..]
[ 그래도 하나 정도 아무거나 얘기해 봐 ]
[ 빨리 여행 갈 수 있게 해 주세요~ ]
촛불을 크고 다시 상자에 곱게 넣으면서 손에
묻은 생크림을 핣아먹고는 맛있단다.
자기가 먹고 싶은 케이크로 골라서 더 맛있게
느껴졌을 것이다.
식사를 하며 깨달음이 호텔 레스토랑이
문을 닫았을 거라는 생각을 왜 못했는지,
호텔에 투숙객이 없으니 영업 유지가 힘든 게
당연한 거였는데 몰랐다며 호텔에 종사하는
종업원들의 실직상태가 심각할 거라 걱정했다.
이곳을 오기 전까지 실은 다른 호텔의
중식당에도 전화를 했었는데
그곳 역시도 영업중지 상태였다.
[ 깨달음,, 갖고 싶은 거 없어? ]
[ 응, 없어..]
[ 내 편지 읽었어? ]
[ 응 ]
특별히 갖고 싶은 것도 없고, 결혼하고
10번째 맞이하는 생일이어서인지
둘 다 무덤덤했다.
[ 아, 근데 편지에 건강 얘기가 너무
많던데.. 그렇게 걱정돼? ]
[ 뭐니 뭐니 해도 건강이 최고니까,, 특히
당신 나이가 이젠 60대잖아 ]
60대라는 내 말이 신경 쓰였는지
제발 나이 얘기는 하지 말아 주라며 자신의
나이를 못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동안이어서 젊게 보이니까 너무 걱정 말라고
하니까 자기 나이가 실감이 안 나고
괜스레 슬퍼지고 힘이 빠진다고 했다.
식사가 시작되고, 깨달음이 결혼 10주년 기념 여행을
어디로 갔으면 좋겠냐고 내게 물었다.
이 시국에 여행 가는 게 내키지 않지만
그래도 10년을 서로가 잘 버텼으니
서로에게 축하해주고 격려차원에서
가까운 곳이라도 여행을 다녀왔으면 한다며
내게 장소를 정해보란다.
가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코로나 시대에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기에 포기해서인지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 괜찮아,, 종식되면 그때 가면 되지..]
[ 아니야, 그냥 말해 봐, 가까운 곳이라도
다녀오자 ]
[ 괜찮아, 안 가도,,,]
어디든 가고 싶은데 불안감이 커서인지
마음이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 그건 그렇고 작년에도 생일 선물 없이 그냥
넘어갔으니 올 해는 작년 몫까지 두배로 찬스를
써도 되니까 뭐든지 말해 봐, 깨달음.. ]
[ 아무것도 필요 없는데..]
[ 봄 양복 한 벌 맞춰줄까? ]
[ 아니야,, 코로나로 미팅도 거의 화상으로 하고
거래처 방문도 줄어서 지금 있는 걸로 충분해 ]
깨달음이 자신이 그동안 기념일에 받았던
선물들을 나열하다가 문득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다음에 한국에 가게 되면
[송가인 콘서트]를 볼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 갑자기 왠 송가인? ]
[ 예전부터 얘기했잖아,, 어제 심심해서 야후에
일본어로 송가인 검색해 봤는데 다 나오더라고 ]
미스 트롯에서 송가인이 진이 됐을 때부터
가수 이 은미만큼 좋다며 콘서트
가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었다.
[ 송창식 라이브 바도 다시 가고 싶고
이소라, 백지영 콘서트도 보고 싶어 ]
[ 그건 한국 가게 되면 바로 예약해줄게 ]
깨달음은 이런 기념일을 맞으면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한다. 색다른 장소가
주는 설렘과 기념일을 함께 하면 그 기쁨이
두 배이고 그 장소를 떠올릴 때마다
기념일도 함께 기억할 수 있어 좋다면서
내년에는 자기가 한국에 갈 수 있겠냐고 물었다.
[ 백신 맞고 그러니까 내년에는 괜찮겠지 ]
[ 그럼, 내년 내 생일은 한국에서 보내면
훨씬 기억에 남고 좋지 않을까? ]
[ 당신이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 ]
[ 그때 2년분 생일 선물 말해도 돼? ]
[ 응 ]
내일 일도 모르는데 내년으로
모든 걸 미루겠다는 깨달음.
[ 그럼, 그때까지 갖고 싶은 거나,
필요한 거 있음 생각했다가 말해 줘 ]
[ 알았어. 근데.. 뭐든지 들어주고, 사 줄 거야?]
[ 응, 내 능력이 닿는 한도에서는 다 해줄게 ]
뭐든지 들어준다는 말만 들어도 기분이 좋은지
한층 목소리 톤이 높아진 깨달음.
[ 내가 하고 싶은 거 다 하게 해 줄 거야? ]
[ 응, 그 대신 좀 미리 말해 줘, 준비를 하거나
예약을 해야 할지 모르니까 ]
[ 진짜지? 오~~ 벌써부터 기분 좋다~]
어떤 선물을 원할지 왠지 알 것 같지만
뭐든지 들어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내년엔 예전처럼 하늘길이
자유로워져 깨달음도 나도
서로가 한국에서 하고 싶은 것들을
맘껏 할 수 있었으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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