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하는 소리가 평소보다 30분 늦은 걸 보니
오늘은 깨달음이 출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긴급사태가 서너 달에 한 번씩
발령이 되면서 암묵의 룰처럼 우린 서로의
패턴을 읽게 되었다.
이런 날은 나도 느긋이 아침을 준비하고
함께 식사를 한다. 다른 날은 깨달음이
먼저 식사하지만 오늘은 겸상을 했다.
식사를 마치고 난 외출을 했고 깨달음은
집 안에 있는 동안 뭘 했는지 알지 못한다.
집을 나서기 전, 점심은 뭘 먹을 거냐고 했더니
지난번 코리아타운에서 사 온 버터와플
먹으면서 영화를 볼 거라 했다.
[ 과일 챙겨놓은 것도 먹어 ]
[ 알았어 ]
내가 집에 돌아온 시간은 오후 4시 무렵,
저녁 메뉴는 뭐가 좋을지 얘기를 나누다
깨달음이 조카 결혼식은 잘 치렀는지 물었다.
[ 응, 잘 끝냈대, 내가 사진 안 보여줬구나 ]
[ 못 봤어, 보여줘 ]
동생이 보낸 사진과 동영상을 보면서
5년 전, 큰 조카 결혼식 날이 생각난다며
신부가 살이 많이 빠졌네, 드레스가 화려하네,
신랑이 너무 신나 보인다며 얘길 하다
부모님께 인사하는 장면이 슬프단다.
[ 형님은 얼마나 슬플까? ]
[ 슬프다기보다는 서운하겠지...]
[ 나 같으면 딸의 손을 건네줄 때
사위가 좀 얄미울 것 같아 ]
[ 그런 생각하면 결혼 못 시키지.. ]
[ 그런가,,,]
돌려보기를 두 번 더 하고 나서는
꼭 직접 가서 축하해주고 싶었는데
그러질 못해 못내 아쉽다고 했다.
https://keijapan.tistory.com/1159
[ 축의금 보냈지? 아, 그리고 당신, 설마
조카한테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얘긴 안 했지? ]
[ 응, 안 했어.. 안 해도 살아보면 바로
알게 될 테니까.....]
[ 내년에 한국에 가도 그런 얘긴 하지 마 ]
[ 알았어. 절대로 안 할게 ]
저녁을 준비하려고 주방으로 들어가는데
깨달음이 이번 추석에 뭐 할 거냐고 물었다.
이곳은 이번 주말부터 다음 주까지
실버위크가 시작된다.
코로나 덕분에 일 년에 반 이상이 휴일이
되어버린 지금, 연휴가 찾아와도 그다지
즐겁지만은 않지만 그래도 추석이 들어있어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았다.
[ 깨달음,, 어디 가고 싶어? ]
[ 가고 싶은 데야 많은데.. 가까운 ,,
하코네(箱根) 온천이나 다녀올까? ]
그렇지 않아도 아침 뉴스에 각 온천지 숙박업소가
벌써 만실이던데 아마도 사람들이 붐빌 것이다.
시큰둥한 내 얼굴을 살피더니 명절이 다가오니까
한국에 가고 싶냐고 묻는다.
[ 깨달음,, 난 이젠 그런 생각도 안 들어..
완전히 무덤덤해졌어,,,...]
자기는 결혼사진을 보고 나니 가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든다면서 노트북을 열어 뭔가를 틀었다.
https://keijapan.tistory.com/1240
[ 봐 봐, 송가인이야 ]
[ 알아, 한참 안 보더니 다시 보는 거야? ]
[ 유튜브에 송가인이 미스트롯에 나올 때부터
1등 될 까지를 편집해 둔 게 있었어,
이런 날은 트로트를 들어줘야 하지 않겠어?
추석도 다가오고,,, ]
[ 추석하고 트로트와 무슨 상관이야? ]
[ 고향 내려갈 때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이런
노래가 엄청 크게 나오잖아 ]
[ ..................................... ]
광주에 내려갈 때는 거의 케이티엑스를 탔는데
동생 차로 두어 번 서울 올라갔던 걸 어찌
잊지도 않고 잘도 알고 있었다.
https://keijapan.tistory.com/643
구운 오징어랑 호두과자도 먹고 그랬다며
올 추석에는 정말 한국 느낌 물씬나게
보내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한다.
[ 깨달음,,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도 그렇지만
이제 한국도 예전처럼 명절이라고 해서
온 가족들이 함께 다 모이고 그러지 않아,
다들 바쁘고,, 사정이 있어서.. ]
[ 그러겠지..그래도,난 북적북적 친척들하고
인사하고 식사하고 그런 게 좋던데..
명절이니까,,일년에 두 번만이라도 좀
무리해서라도 다 같이 모이면 좋은데..
얼굴도 보고,,,]
[ 물론, 지금도 가족들이 다들 모이는 집이
있지만,,점점 모이기 힘들어졌다는 거야 ]
[ 알아...무슨 말인지]
깨달음이 원하는 명절 분위기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지만 둘이서 연출하기엔 역부족이다.
내가 변해가는 한국의 모습들을 얘기하면
깨달음은 상당히 우울해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한국문화들이 점점
그 빛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아서
한국스럽지 않고 한국적이지 않아 슬프단다.
https://keijapan.tistory.com/1045
[ 깨달음,, 한국도 일본처럼 명절이면 다들
해외여행 가느라 바빠,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못 가지만,..,]
[ 그렇게 되어갈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게 싫은데,,,그만큼 부모, 형제보다는 자기
자신들의 생활을 중시하는 사회가
되어가는 거잖아,,..]
[ 맞아,,,]
[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게 당연하고
첨단화 된 세련된 모습도 좋지만,,난 예전의
한국 스타일 더 좋더라... ]
사람들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깨달음에게
보여진 한국의 명절문화, 그리고 가족 간의
끈끈한 가족애가 한국적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꽤나 많은 부분을 차지했을 것이다.
깨달음이 그리는 예전의 한국 모습은
점점 찾아보기 힘들어질 텐데...
조금씩 변형되어가는 새로운 풍습과 문화를
받아들이면서도 자꾸만 미련을 떨쳐내지
못한 채 잡고 싶어 하는 깨달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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