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자 언제나처럼
태현이가 우리방으로 건너왔다.
옷을 갈아입던 깨달음이 중학교 들어가냐고
엉덩이를 툭툭 두들기며 귀여워했다.
그리고 가방에서 얼른 입학선물로
봉투를 꺼내주자 태현이가
주춤거리다 받는다.
그리고 엄마에게도 생신선물 사시라고
금일봉을 전해드렸다.
한국에 올 때마다 뭔가를 주려는 깨서방 때문에
엄마의 마음이 무겁고 불편하다고 해도
이번에는 생신선물이니 드려야한다고
고집을 피웠다.
아침은 작은 언니집에서 먹고
조카들이 외출 준비를 하는 동안
엄마가 카페트 청소를 시작하자
깨달음이 자기가 하겠다고 실랑이를 벌렸다.
[ 아니, 내가 할랑께,,이리 줘..
여자들이 많아서 머리카락이 있응께
이걸로 몇 번만 하면 끝나, 내가 할라네~ ]
[ 괜찮아요, 괜찮아요~]
[ 오메,내가 한당께, 깨서방이 고집이 쎄당께 ]
결국 깨달음이 찍찍이를 뺏어서
청소를 했고, 카페트에 누워서 게임을 하고 있는
태현이를 발견하고는 찍찍이로 장난을 쳤다.
태현이는 테이블 밑에서 모르는척
실실 웃으면서 깨달음의 장난을 받아 주었다.
준비를 마친 조카들과 우리가 간 곳은 양평군에
있는 두물머리라는 곳이였다.
아직 얼음이 채 녹지 않아서인지 바람이
차가웠지만 즐거운 시간이였다.
점심은 막국수와 만두, 파전을 즐기고
다시 산책을 하는데 건강체크하는 곳에서
깨달음이 표준사이즈 틈에
배가 걸려 낑낑거리며 겨우 나오는 걸
보고 난 직감했다. 살이 더 쪘다는 것을,,,,
오후에는 중부시장으로 자리를 옮겨
깨달음이 노래를 불렀던 문어다리와
한국산 쥐포를 샀다.
[ 한국산이 이렇게 비싼지 몰랐어,,,
그냥, 중국산도 하나 살까?]
[ 당신이 알아서 해.난 어차피 안 먹으니까]
[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까 한국산 사야지]
그렇게 비싼 한국산 쥐포를 샀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공항에 가기 전에
빠른 저녁인 짜장면과 짬뽕, 탕수육까지
시켜서 맛있게 먹는 깨달음.
마지막으로 짐을 챙기며 캐리어에 김치와
된장들을 넣다가 20키로를 초과할까봐
짐가방의 무게를 재다 식구들이 한 명씩
체중게에 올랐고 깨달음도 오르게 했더니
체중이 3키로나 늘어나 있었다.
믿을 수 없다고 몇 번이고 올라가 재 보았지만
역시나 저울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 어떡해...돼지가 되어 버렸어...]
[ 당신 많이 먹었잖아,,,]
[ 그런다고 3키로가 불다니...
저 체중계가 고장났을 거야 ]
[ 아니야, 당신만 틀리다고 우기고 있잖아 ]
[ 어쩌지..정말 돼지가 됐네...]
[ 광주에서도 그렇고 서울에서도
당신 계속 먹었잖아,,]
고개를 떨구며 반성하는 기미를 보였지만
때는 이미 늦였다.
언니집에서는 쇼파에 앉아 태현이 과자를,,,
시장에서는 튀김을,,,,
거리에서는 풀빵과 붕어빵을,,,,
케이티엑스에서는 김밥과 삶은 달걀을,,,,
빵집에서는 크로와상과 공룡알을,,,,
그렇게 입을 쉬지 않고 먹었으니
3 키로가 찌는 건 당연한 일이다.
식구들은 안 가리고 뭐든지 맛있게 먹는
깨달음이 예쁘다고 했지만 난 내심 걱정이 되었다.
[ 실은 나도 이것저것 먹으면서
내가 진짜 일본사람인가 했어,
너무 맛있는 거야,,홍어도 오랜만에 먹어서
맛있었고 풀빵도 맛있고,,식욕이 넘쳤어 ]
[ ......................... ]
[ 그래도 일본에 돌아가면 맛있는 거
못 먹으니까 살 빠지겠지?
3키로는 안 찌고 아마 2키로정도 쪘을 거야 ]
[ 그렇게 쉽게 빠지지 않을 걸?
지금 쥐포뿐만 아니라 옛날과자랑 생김치,
파김치, 묵은김치, 창란, 명란젓까지 당신이
좋아하는 것들 입빠이 사왔잖아..]
[ 아,,그렇지, 입맛이 없어야하는데, 왜 나는
한국음식을 그렇게 먹어도 질리지 않지?
체중계가 고장이였으면 좋겠다,,]
[ ......................... ]
깨달음은 체중계가 고장난 거라고 비행기 안에서
계속해서 우기며 믿으려하지 않았지만
먹은 만큼 찌는 것이고 체중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진리를
아직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듯 했다.
크루즈여행에서 대판 싸우고 속상한 마음을
그대로 담아둔 채 한국을 갔었고
다시 이렇게 일본으로 돌아왔다.
참 고마워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은 게 사실이다.
비단, 이번 한국행 뿐만 아니라, 깨달음의 행동들
마음 씀씀이를 보면 고맙다, 정말 고맙다.
하지만, 부부로 함께 지내면서 쌓여가는 갈등들
그리고 미움과 애증을 만들게 하는 상대 역시도
남편이라는 존재인것 같다.
내 체질에는 좀처럼 맞지 않은 결혼생활이기에
거듭되는 시행착오와 다양한 학습을 필요로 하고 있다.
부부라는 게 사람을 은근 피곤하게 만드는
관계임을 매번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그래서 남편을 웬수라고 표현하는 게 아닌가 싶다.
죽이지도 못하고 살리지도 못하는...웬수,,,
웬수는 옆에서 또 아주 천진한 얼굴을 하고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쥐포를 뜯으며 웃고 있다.
진짜,,,웬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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