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은 아침도 먹지 않고 일찍
나고야행 신칸센을 탔다.
미팅시간이 빠른 것도 있었지만
제일 중요한 지친사이(地鎮祭)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공사를 시작하기 전에 안전하고
무사히 마무리 되길 바라는 마음에
제(고사)를 올리는 [안전기원제]이다.
좀더 상세히 설명하면 토지를 이용하겠다는
토지신, 땅신에게 허락을 받는다는
토속의식의 하나이다.
이 제를 올리기 위해서는 길일을 택하고
상에 올릴 공제품들을 준비해야한다.
칸누시(神主-신을 부르는 사람)가 토지신에게
건축업체와 설계자, 관련업체 등의 회사명을
차례로 부르며 보고를 드리고
땅의 동서남북 네 곳 모퉁이에 청대나무를 세워
소금이나 쌀을 뿌리고 중앙 단상에는
술, 물, 쌀, 소금, 야채, 과일, 생선 등을 차려
제를 지낸다.
건물이 크면 클수록 성대하게 제를 올리고
일반주택을 짓는데도 규모는 작아도
온 가족들을 모아두고 제를 지내곤 한다.
그렇게 경건하게 제를 마친 깨달음은
또 미팅을 한뒤, 오후 늦게 시댁으로 갔다.
깨달음이 집에 도착했을 때, 어둠이 깔려 있었고
아들이 오기를 기다리시던 시부모님은 저녁식사도
하지 않은채 깨달음을 기다리셨다고 한다.
그래서 바로 아버님은 스테이크 정식,
어머님은 새우튀김 정식을 시켜 드렸더니
오랜만에 먹는 고기여서 맛있다며
아주 맛있게 드셨단다.
노인들도 고기를 먹어야하니까 일주일에
한번씩 저녁메뉴로 육류를 내 놓으라고
어머니께 말했더니 아버님이
깨달음에게 눈을 깜빡깜빡 하시며 더 이상
말을 못하게 하시더란다.
식사가 끝나고 어머님이 부엌에 계실 때
아버님이 깨달음에게 목소리 톤을 낮춰
짧고 명료하게 말하셨단다.
[ 니네 엄마가,,노망한 것 같애..]
지난 1월, 설날에 내가 갔을 때도 아버님이 하셨던
얘기인데 이번에도 같은 소릴 하신 듯 했다.
계속해서 무슨 말씀을 더 하려 했지만
어머님이 방으로 들어오셔서
얼른 말을 끊으셨단다.
괜히 어색해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깨달음은
다음날 일찍 도쿄로 돌아와야 했기에
영업시간이 거의 끝나가는 슈퍼에 달려가
냉장고에 채워둘 음식들을 사왔다고 한다.
아침 6시 30분, 깨달음이 시댁을 나서며
대문사진을 한 컷 보내왔길래 답장을 보내자
내가 일어난 걸 알고 바로 전화가 걸려왔다.
[ 잘 잤어? ]
[ 음,,일찍 나왔네...]
[ 도쿄 미팅이 오전중에 있어서 빨리 나왔어 ]
[ 아침 인사 드리고 나왔어? ]
[ 아버지한테는 드렸고 엄마는 주무셔..]
[ 그래..알았어,,조심히 와..
도쿄 도착하면 바로 사무실로 갈 거지?]
[ 응 ]
[ 근데,,,엄마가 치매 걸린 것 같애..]
[ 당신이 보기에도 좀 달랐어? ]
[ 음,,말이 원래 없기도 했지만 전혀
말을 안하고,,묻는 말에 대답은 하는데..
아버지는 기관지염이 심해져서
기침이 멈추지 않고
나이탓인지 약도 효과가 없다네,,
엄마는 건망증이 많이 심해졌다고
아버지가 그러시고,,
내가 봐도 예전에 비하면 점점 얼굴 표정이
멍해져 가는 것 같애....]
[ 걱정이네,,,5월달에 같이 갑시다 ]
[ 그래야 될 것 같애..]
[ 5월에 같이 가서 맛있는 것도 많이 사드리고
앞으로 자주 찾아 뵙도록 노력해야겠지..
힘내~깨달음씨~ ]
그렇게 통화를 끝낸 깨달음은 도쿄에 도착을 하고
집에 돌아올 때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 기분이 아직도 꿀꿀해? ]
퇴근하고 옷을 갈아입는 깨달음에서 물었다.
[ 아니,괜찮아,근데 어젯밤에 슈퍼에서 사 온
음식들을 냉장고에 넣고 있는데
엄마가 다가와서 그러시는 거야..
맨날 돈만 쓰게 해서 미안하다고,,
바쁠텐데 시간내서 와 준것도 고마운데
늙으니 민폐를 끼치기만 한다고,,
정말 엄마가 치매에 걸리면 어쩌나하는 생각도 들고
치매에 걸려도 자식 생각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는 것 같아 뭉클했어..
자주 찾아뵈야 하는데....
그리고 당신에게 꼭 전해주라고 몇 번 당부하셨어.
일본에 살아줘서 고맙고,
아들을 잘 챙겨줘서 고맙고,
소포 보내줘서 고맙고,
마음 써 줘서 고맙고,,
언제나 변함 없어서 고맙고,,
시부모인데도 따뜻하게 대해줘서 고맙고
딸처럼 살갑게 해 줘서 고맙다고 하셨어.
왜 그런말을 하는지 마치 기억을 잊기 전에
고맙다는 말을 모두 전하고 싶었던 것 같았어]
[ ......................... ]
말끝을 흐리는 깨달음 등을 한 번 쓰다듬어 주고
난 방을 나왔다.
항상 고맙다는 말씀을 자주 해주셨는데
이번엔 왜 당부하듯이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
좀처럼 내색을 해가며 걱정하지 않았던
깨달음인데 오늘은 부모님의 건강과 현상황이
눈에 밟혔는지 목소리가 많이 차분했다.
늙은 부모일수록 자식이 함께 살아야한다는 걸
알면서도 부모가 돌아가실 때까지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채 생각만 하고
사는게 바로 자식인 것 같다.
내 사는 게 바쁘고 내 사는게
힘들다는 핑계를 대며,,
자식은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야
땅을 치고 후회를 하게 된다.
죄송하고 죄송해서,,알면서도 하지 못한
죄책감에 통한의 눈물을 흘린다.
알면서도 안 했고, 알면서도 모른척했던
그 시간들을 되돌리고 싶어 울고 또 운다.
그러니 지금,,계실 때 잘해야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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