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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

남편이 쓴 편지를 다시 읽는다.

by 일본의 케이 2019.09.24

월요일인 오늘까지 이곳은 연휴였다.

연휴 마지막날, 침대에서 뒹굴거리다 느즈막히

내 방에서 나와 열려있는 깨달음 방을

 내다봤더니 도면을 치는데 열중이였다.

[ 깨달음, 일 해? 아침 뭐 먹을 거야? ]

[ 아무거나 ]

내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만 한다.

내 노트북에 놓인 편지,,,왠 편지가 싶어

열어보니 생일축하한다는 내용이였다.

9월 23일은 음력생일이여서 올해는 

11월 13인데... 결혼 8년간,,

매년 얘길 했건만 올해도 변함없이 깨달음은

9월 23일로 알고 이렇게 편지를 쓴 것같다.

일본에서 대부분 음력이 아닌 양력만 생일을

 지내서인지 항상 설명을 해줘도 모르겠단다.


[ 깨달음,,,편지 고마워..근데 진짜 생일은

11월 13일이야,,,,,이건 음력이야,,]

[ 그래? 난 매번 헷갈리네..그냥 9월 23일을

생일로 하면 안 돼? ]

[ ............................... ]

아침을 먹으며 깨달음은 양력과 음력이 왜 다른지

또 설명을 해달라했고 내년부터는 음력생일이 

다가오기 한달 전에 미리 말을 해달란다.

그것도 해년마다 하는 같은 말이다.

[ 알았어, 밥 먹고 열대어 수조청소도

 좀 하고 그러자 ]

[ 청소보다 생일파티 해야지 ]

[ 생일 아닌데.. ]

[ 아니야, 오늘 축하해야 되니까 조금 있다가

나가자 ] 

뭐 먹고 싶냐, 뭐 갖고 싶냐고 물었지만 전혀

계획에 없던 생일날?이여서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아침을 보내고 우린 수조청소와 못다한

가을옷 챙기기를 마저하고 집은 나섰다.

[ 케이크랑 가게는 내가 다 준비했어 ]


가게측에 촛불만 켜겠다는 양해를 구하고

깨달음이 조심히 케익을 꺼낸다.

[항상 고마워]라고 메시지까지 올려진 

케익을 내밀면서 작은 목소리로

[ 센 추카하니다(생일 축하합니다)] 란다.

센이아니고 생일이라고 발음교정을 

하려다 그냥 넘어갔다.


[ 편지 읽어봤어? ]

[ 응 ]

[ 감동 받았어? ]

[ 응, 근데 언제 썼어? ]

[ 새벽에 일어나 맑은 정신에 썼지. 

당신이랑 결혼생활을 뒤돌아보면서,,,,]

[ 그래서 미안해요라고 썼구나 ]

[ 응,,미안한 게 많아서..상처 준 게

계속 떠올랐어...]

뭐가 제일 미안했는지 묻고 싶었지만

말하지 않아도 서로 알고 있는 사건?들이

몇 개 있어서 묻지 않고 앞으로 20년동안 

우리 부부가 어떻게 즐겁게 지낼 것인지에

관한 얘길 나눴다.


하루라도 더 젊을 때 지구 반바퀴? 한바퀴를

 모두 돌아보고 죽자는 생각은 여전히

 두사람 모두 같았다.

[ 우리 여직원, 어제부터 유럽여행 간다며

한달 휴가 냈어, 부부동반으로 ]

[ 아,,그래? ]

[ 스웨덴에 사는 친구도 만나고 렌트차로

여기저기 돌고 온다며 한달간 휴가 달라고해서

좀 놀랬는데 다녀 오라고 했어 ]

우리도 그렇게 다니면 좋겠다고 했더니

자기는 늙어서인지 운전하고 물어 물어

 찾아가는 게 귀찮단다.

깨달음은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각 나라에서

한달살기가 아닌 2주간 살아보기를 해보고

싶단다. 그리고 모든 일을 그만두고 나면

 한국도 좋지만 역시 하와이에서 고즈넉한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한국이든, 하와이든 건강해야하니까

서로 아프지 말고, 제일 중요한 건 남의

 손을 빌려서 살아야하는 삶이 안 되도록,

배우자가 간병인이 되는 일이 없도록

건강에 신경쓰고 살자며 다시 건배를 했다.

[ 내가 편지에 다 못 썼지만 미안하게 

생각하는 건 이런 의미도 있어. 당신은 

지금이라도  한국에 돌아갈 수있는데 

나 때문에 일본에 있는 거잖아,

 그게 제일 고맙고 미안해 ]

[ 아니야, 당신 때문에 이곳에 있는 게 아니야,

어떻게 보면 나도 한국보다 여기가 더 편해서

있는 것도 있어,,,근데 20년 가까이 살다보니까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좀 자주 든다는 거지,

돌아가고 싶었으면 언제든지 갔지 ]

[ 나 혼자 두고 갈 수 있어? ]

[ 응 ]


응이라는 대답을 내가 너무 빨리 해서인지

깨달음이 실눈으로 날 째려봤다.

[ 그니까 당신 때문에 내가 일본에 있는 게

아니라는 소리야 ]

[ 그래도 난 그 부분에 많이 고맙고 미안했어,

가족들하고도 떨어져있고,,]

[ 괜찮아, 난 외로움은 안 타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그리움이 좀 쌓일뿐이지 ]

[ 역시,,당신은 차가운 인간이야..]

[ .............................. ]

그렇게 우린 티격태격 웃다가 찡그리기를 

반복하며 결론은 아프지 말고 늙자, 

건강하게 서로에게 민폐 끼치지말자는

구호를 외치고 생일축하를 마쳤다.


집에 돌아와 다시 깨달음 편지를 읽어본다.

[ 언제까지나 사랑합니다] 만 한글로 적혀있다.

전체 글을 한글로 쓰려고 했는데 시간이

너무 걸릴 것 같아서 가장 중요한 대목만 

번역기 돌려 썼다는 깨달음.

상처 준 것에 대한 반성과 내가 있기에

자신이 존재한다는 그런 내용,,앞으로도

지금처럼 사랑을 듬뿍 주라는 요구까지..

그리고 마지막엔

둘이서 오래오래 살잔다.

길고 장황한 내용은 아니지만 정말 하고

 싶은 말들이 꼭꼭 집어 적혀있다.

근데 왜 깨달음은 자기 때문에 내가 

일본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을 했을까..

난 한번도 그런식에 얘길 한 적이 없는데..

그런 불안감을 갖게 했다면 나한테도 분명 

문제가 있다는 것일게다. 

 좀 이른 생일덕분에 깨달음 마음에

들어있는 걱정거리들을 엿볼 수 있었다.

꾹꾹 눌러 쓴 [언제까지나 사랑합니다]가

모든 걸 말해주고 있어 많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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