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인사와 함께 깨달음은 자신이
차린 아침상 사진을 첨부해서 내게 보내온다.
그리고 그날의 스케쥴도 간략하게 보고를 하고
일찍 퇴근하는 날이면 장을 보고 난 후
멋지게 차린 저녁 상차림도 빠짐없이 보내온다.
내가 이곳 제주도에 오기 전날, 카레라이스와 밑반찬
몇 가지를 해 두었는데 그건 진작에 떨어지고
마트에서 자기 입맛에 맞는 반찬이나 안주거리를
사 와서 먹는다고 했다.
깨달음이 아침마다 해 먹는 메뉴는 대충 이렇다.
생두부, 감자샐러드, 카레.
생두부, 죽순, 문어초무침, 된장국, 장어덮밥,
샐러드,야채조림.
생선구이, 쥐포와 멸치조림, 샐러드,
생두부, 우유, 우동
참치조림, 샐러드, 우동, 생두부.
아침에는 우동이나 소바가 먹기 편해서 면종류를
많이 만들었다고 한다.
저녁 메뉴는 아침과 달리 사시미나
초밥이 자주 등장했다.
3종사시미, 샐러드, 튀김, 우동
만두, 게란야채볶음, 규동, 야채샐러드, 된장국,
아귀간, 만두, 찌라시스시, 된장국.
마키스시, 마른반찬, 우엉볶음, 야채조림,
샐러드. 5종 사시미,
아구간, 샐러드, 모든 초밥, 된장국
그런데 이렇게 자신을 위해 차린 밥상을 보면서
약간의 배신감과 서운함이 들었다.
먼저, 아내가 없어도 저렇게 다양하게 바렌스를
맞춰가며 잘 해 먹는 깨달음에게 놀랐고,
내가 아파서 힘들어 할 때는 아픈 아내를 위해
이런 밥상을 솔선해서 차려보려 하지 않았고
내가 힘들어해도 아침밥을 꼭 집에서 먹으려고
그것도 내가 차려주는
밥을 먹으려고 했다는 생각에 스멀스멀 서운함과 괘씸한
생각이 올라왔다.모든 게 자신의 잘못이라며
며칠전 썼던 사과의 편지를
보냈던 깨달음이 맞는지
의구심마져 들었다.
[ 당신,,나 없어도 너무 잘 해 먹는다...]
[ 혼자 있어도 잘 해 먹어야지.]
[ 외롭다고 했던 말 거짓말이지? ]
[외로운 것은 외로운 것이고 먹는 건 별게지..]
[ ................................. ]
[ 나 아플 때, 당신이 지금 자신을 위해 만든
것처럼 나한테도 해줬으면 서운한 마음이
안 들었을텐데, 지금 음식사진들을 보고
있으니까 서운함이 많이 밀려오고 있어 ]
[ 당신은 면종류 싫어하잖아, 그리고
사시미랑 초밥도 안 좋아하고,,,]
[ 맞아,,안 좋아하는데..그래도
당신 밥상을 보니까 여러 생각이 들어서..]
[ 그래서 내가 맨날 장어덮밥 도시락 사왔잖아 ]
[ 알아,,..]
작년 여름 내가 수술 뒤, 몸을 움직일 수 없을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해준 전복죽이였지만
그것도 실은 자의반타의반에 의한 것이였고
아픈 아내를 위해서 원기회복 하라며
장어도시락을 사오는 게 깨달음에겐 최선이였다.
저렇게 잘 할 수 있는 남자였는데 아내를 위해서는
하지 않았다는 점과 당신은 면을 안 좋아하지
않았냐는 유치한 변명을 하는 깨달음이
얄밉게까지 느껴졌다.
[ 샐러드에 올려진 삶은 계란은 언제 만들어? ]
[ 응, 따끈한 게 맛있으니까 아침에
샤워할 때 계란을 올려놓고 샤워 해..]
[ ...................................... ]
따끈한 삶은 계란을 토핑하기 위해 시간맞춰
삶았다는 말에 말문이 더 막혔다.
[ 그럼, 내가 일본에서 또 아프거나 그러면
저렇게 나한테도 차려 줄 수 있어? ]
[ 응, 당신이 원하며 해줄게..]
아내가 없어도 남편이 혼자서 저렇게 잘 해
먹는게 매일 라면만 끓여 먹거나 외식을 하는
것에 비하면 백번이고 좋은 일이고 칭찬한
일이다는 걸 알면서도 한편, 남자의 이기심의
결정판을 보는 듯해 미운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다.
[ 당신,,나 없어도 될 것 같애...]
[ 아니야, 당신이 있어야지..]
[ 나 없이도 저렇게 잘지내는 것 보니까
걱정 안해도 되겠어~]
[ 당신이 없으니까 할 뿐이야,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야~그리고 이왕에 먹을 거면
이쁘게 세팅해서 먹으라고 당신이 말했잖아,
그래서 이쁘게 접시에 덜어서 먹은 거야 ,
그리고 저거 마트에서 다 사 온 음식들이야
내가 만든 건 우동뿐이야~~
된장국도 3분된장국이여서 뜨거운 물만 부었어 ]
그 말이 맞다, 우동만 깨달음이 만든 게 맞지만
생두부에 가츠오부시나 잔멸치를 올리고
각종 요리에 새싹을 토핑으로 예쁘게 장식한 것이며
샐러드에 계란을 스크램블처럼 만들어 올리고
오이와 토마토를 매일 다른 모양으로 썰어 담아
놓기도 하고 김을 맛스럽게 뿌린 샐러드,
우동에는 유부와 맛살등을 올려 맛을 내는
그 정성과 마음이 오직 자신만을 위해서였다는
것에 깨달음의 속이 보이는 것 같아
씁쓸하기까지 했다.
우리 후배에게 깨달음 상차림을 보여줬더니
라면만 먹고 골골해 하는 것 보다는 낫지만
웬지 얄밉다며 언니가 아팠을 때 저렇게 해주면
120점 남편일텐데라며 애석하다고
[ 언니, 남자들도 여자만큼 자기애가 충만한
사람이 많아, 그래도 형부는 일본인이여서
배려하는 마음이 많이 있을 줄 알았는데...
우리 남편은 자기몸을
얼마나 생각하는 줄 알아?
나는 먹지도 않는 수입제 비타민제랑 영양제를
혼자 매일 챙겨 먹드라니깐, 그 때 나도 엄청
서운한 마음이 들더라구,]
후배의 한탄이 계속해서 이어졌지만 난
귀에 들어오지 않고 깨달음이 아침마다
주방에 서서 열심히 자신을 위한 밥상을
만들고 있는 모습을 떠올렸다.
난 왠지 깨달음에게 배신당한 기분이
자꾸 들어 저 식단을 또 보고 또 보고 있다.
남편들도 아내 없이 잘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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