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우린 짐가방을 챙겼다.
저녁에 들어와서 해도 될 거라 생각했지만
늦게까지 밖에서 놀고 술까지 마시다보면 짐을
제대로 챙기지 못할 가능성이 발생한다는
염려가 서로에게 있었다.
가족들에게 받은 각종 반찬과 깨달음이
산 과자들까지 빠짐없이 챙기려면 지금 미리
해두는 게 현명한 판단이였다.
[ 내가 이 떡국을 썰게, 근데 왜 이 집 떡은
이렇게 맛있는 거야? ]
[ 만드는 기술이 다르겠지. 다른 떡도 맛있어 ]
떡국, 떡볶이, 떡라면 해 먹으면 될 것 같다며
떡 하나를 입안에 넣고 오물오물 거린다.
지난 2월, 방앗간에서 막 빼낸 떡국 떡을
언니에게 받아와 떡국을 끓였는데 깨달음이
너무 맛있다며 시중에서 파는 떡은
이제 못 먹겠다고 했었다. 그래서 언니가
또 이렇게 부리나케 방앗간에서
뽑아와 어제 우리에게 건네준 거였다.
떡을 다 썰고 짐가방까지 마져 챙기고 난 후
외출 준비를 했다.
[ 지금 몇 시야? ]
[ 아직 7시 안 됐는데 그 가게 몇 시부터지? ]
[ 7시 ]
[ 그럼 걸어갈까? ]
우리 둘은 언제부터인지 이렇게 새벽부터 일어나
움직이는 노부부?의 생활패턴에 들어와 있었다.
이른 아침, 서울의 거리는 한산했고 아주 깨끗했다.
바닥에 물을 뿌리며 분주히 아스팔트를 청소하는
청소차가 보였고 쓰레기를 한 곳으로 모으는
아저씨들이 서로 눈인사를 나눴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깨달음은 능숙하게
북엇국에 부추겉절이를 넣어 먹었다.
우리가 앉아 식사를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 주변 테이블로 일본인들이 하나 둘 앉아
아침식사를 했다. 오직 북엇국밖에 팔지 않은
이곳에서 계란후라이를 시켜 먹는게
호사스럽게 느껴져 좋다는 깨달음은 대접의
바닥소리가 날 때까지 국물을 떠 먹었다.
[ 국물 리필 해준다는데 당신도 해, 저기
일본 아저씨는 아까 리필해서 먹었어 ]
[ 그만 먹을래, 다른 거 또 먹어야 하니까 ]
아침을 먹고 나왔지만 너무 이른 시간탓에
어디를 가려해도 영업시작 전이였다.
어딜 갈까 고민을 하다 남대문에 새로 생긴
서울로 7071를 가보자고 깨달음이 제안했다.
쉬엄, 쉬엄, 사진도 찍어가며 한산한 서울의
아침을 구석구석 바라보며 서울로에 도착,
깨달음은 나무에 말을 걸기도 하고 아이처럼
뛰기도 하며 이상한 포즈을 취하고는 사진을
찍어달라며 알 수없는 행동을 반복했다.
[ 남들이 보면 당신 약간 정신 나간 줄 알아]
[ 괜찮아, 난 서울을 온 몸으로 즐기는 중이야 ]
[ ............................ ]
서울역 대합실에서 다음 행선지를 가기 위해
잠시 휴식을 갖기로 했다.
팥빙수를 먹겠다고 해 들어간 가게에서
내가 시킨 호박죽을 먼저 떠 먹어보고는
팥빙수에 호박죽을 조금씩 끼얹어 먹더니
최고의 궁합이라며 너무 좋단다.
아침 일찍부터 맛있는 북엇국도 먹고 산책도 하고
팥빙수에 호박죽까지 먹으니 대만족이란다.
우리는 그렇게 느긋하게 다음 장소를 위해 충전을 했다.
좀 이른 시간, 동묘시장에 도착했는데도
이미 상인들은 물건들을 펼쳐놓고 있었다.
[ 깨달음, 처음이지? 여기 ]
[ 응, 무슨 시장이야? 인사동하고 다르네 ]
[ 조선시대 때부터 행상이랑 노점이 있던
옛 장터였대, 80년대에 들어와서 상권화 되었고
골동품을 위주로 팔지만 고미술품도 있고
의류, 식기, 악세사리, 시계, 책 등
없는 게 없어. 빈티지가 많아 ]
[ 너무 넓다,,정말 없는 게 없네..]
어디를 봐야할지, 뭘 구경해야할 지 물건들이
너무 많아서인지 깨달음 시선이 바빴다.
동묘시장 명물 먹거리인 천원 샌드위치도 먹고
[ 미운 우리 새끼]에서 나온 막걸리 집에서
멸치에 막걸리도 한 잔하고,,골목 골목을 돌며
진기하고 옛스러운 물건들을 구경했다.
짜장면이 3,000원이라 적혀 있는 걸 보고
저렇게 쌀 수 있냐고 깨달음이 너무 놀라했다.
[ 응,,2,000원짜리 짜장도 있다고 들었어,
먹어 볼 거야? ]
[ 아니, 나 비빔냉면 먹을래..]
깨달음 셔츠에 버튼이 점점 벌어지고 있었지만
난 그냥 모른척 했다.
식당에 들어가 비빔냉면과 만두를
반쯤 먹었을 때쯤 옆 테이블 어르신들이
맛있게 먹고 있는 게 뭐냐고 물었다.
도가니탕이라고 소의 무릎 연골로 만든
설렁탕, 곰탕 같은 맛이 난다고 하자
다들 맛있게 먹으니 자기도 시켜달라고 했다.
[ 어때? ]
[ 완전 맛있어. 부들부들 하면서도 쫄깃하고
어제 먹은 꼬리곰탕하고는 또 다른 맛이야,
지금까지 안 먹어봤는데 나한테
왜 안 가르쳐줬어? ]
[ ............................... ]
남은 냉면과 만두는 내 쪽으로 밀어주고
도가니탕을 혼자서 깨끗이 비운 깨달음
입술이 번질번질했다.
배가 불러 걷기가 힘들다는 깨달음을 데리고
마트에 가서 필요한 것들을 사고
서점에서 몇 권의 책을 고르는 동안
깨달음은 쇼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꾸벅꾸벅 낮잠을 즐겼다.
북엇국에 팥빙수, 호박죽, 샌드위치. 막걸리,,
그리고 쫄면과 만두, 도가니탕까지...
오전중에 이렇게나 많이 먹었으니
얼마나 졸리겠는가..난 장르별로 구분된
책 코너에 들러 천천히 아주 천천히
좋아하는 책들을 읽어내려갔다.
[ 깨달음, 저녁은 뭐 먹을 거야? 아니 어디 가? ]
[ 한옥마을 또 갈래, 그리고 저녁은 보쌈 먹을래 ]
[ 가게는 찾아 뒀어? ]
[ 응 ]
일본 가이드 북에 기재된 보쌈집이였는데
한입 먹어보고는 맛이 별로라며
일본인 입맛에 맞는 곳에 와버렸다고
마지막 식사인데 실패했다고 꽤 억울해했지만
막걸리를 마시며 취기에 오르자 자기가 늘
그리워했던 30년전의 서울 모습이 종로 3가에
그대로 남아있는 것 같아 너무 좋다고 했다.
한옥집은 물론, 골목마다 촘촘히 붙어 있는 가게들,
정비가 덜 되고 약간은 어지러진,
무질서하게보이지만 그 속에 나름의
질서와 법칙이있는 것도
특히, 즐비하게 늘어선 포장마차가
옛기억 속의 서울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듯해서 소록소록 과거의 시간 속에
빠져들어갈 수 있어 좋단다.
[ 다시 반한 것 같애. 한국에,,그 때도 그런
모습이 너무 좋아서 반해버렸거든,
나는 사람 사는 냄새가 풀풀 나지 않으면
서울이, 아니 한국이 아니라고 생각해 ]
그 말에는 참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막걸리에 소주까지 취기가 올라온 상태에서
가게를 나왔는데 어디선가 꽹과리와 장구소리가
울려퍼졌고 그곳으로 가보니 우리 앞에
흥겨운 각설이 타령이 펼쳐졌다.
술기운에 쿵짝쿵짝 음악까지 들려오자
깨달음의 잠재된 본능이 요동치기 시작했고
각설이분들께 만원을 한장씩 드리자
여자분이 깨달음 품에 안겨 사진을 찍겠다고
했고, 신나는 음악에 점점 흥분한 깨달음이
급기야 이상한 춤을 추자 구경꾼 아저씨들이
박수갈채를 보냈고 기분이 최고치를 향한
깨달음은 덩실덩실 춤을 추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웃기던지 숨이 넘어갈 정도로
웃다보니 눈물까지 났다.
그렇게 이성을 약간 잃은 막춤 시간을 갖고 난후
호텔에 가려는데 깨달음이 다시 한옥마을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해서 휘청거리는 발걸음으로
골목을 들어섰는데 곳곳마다 영업을 마치느라
분주했다. 마침 늦게까지 문은 연 커피숍?
토스트 가게 같은 곳에서 비엔나커피와
스플레 토스트 딸기를 주문하고 한 입 먹더니
맛이 죽여준다며 입술에 생크림을
묻혀가며 맛나게 먹는 깨달음,,
[ 일본보다 여기 더 맛있어, 당신도 먹어 봐 ]
[ 18,000원이나 하는데 안 맛있으면 안 되지]
[ 비싸도 맛있으면 되는 거야, 여기
너무 맘에 들어, 익선동하고 종로 3가..
난 역시 한국을 좋아하나 봐 ]
영업이 끝나가는 11시가 다가 오고 있는데
깨달음은 마지막까지 즐거웠던 한국에서의
시간을 되돌아보며 행복하다는 말을 거듭했다.
[ 깨달음, 가자,내일 비행기 몇 시인지 알지? ]
[ 응,,가야지..가기 싫지만 가야겠지...]
익선동을 뒤로 하는데 아쉬움이 남았는지 골목에
대고 [ 안녕, 또 만나요]라고 인사를 나눴다.
저렇게도 좋을까 싶다가도 저렇게도 순수한
아저씨가 존재한다는 게 새삼스러웠다.
한일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는 뉴스가
연일 쏟아지고 있는 와중에도 깨달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즐기고 느끼고 맛있는
3박4일간의 한국을 보냈다.
다음에는 아예 종로3가에 숙소를 잡자고 한다.
다시 한번 반하게 만든 종로 3가,
깨달음은 한국만이 가지고 있는 인간미 넘치는
사람냄새가 몹시도 그리웠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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