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한 깨달음 손에 백화점 쇼핑백이 들려있었다.
뭐냐고 묻기도전에 얼른 내게 보여주면서
북해도 이벤트에 잠깐 들러 장모님이
좋아하는 박하사탕을 샀다고 한다.
고맙다는 말을 하고 지난달에 보내드렸으니
11월달에 한국 갈 때 가져가겠다고 했더니
내일 당장 오징어랑 함께 보내드리란다.
[ 왜? 지난달에 보내드렸다니깐 ]
[ 그래도 또 보내드려~~]
저녁식사를 마치고 티브이를 보고 있는데
깨달음이 장모님께 전화를 걸어달라고 했다.
[ 왜 그래? ]
[ 아니...그냥,,,안부인사 드릴려고..]
[ 엄마,,나야,, 잘계시죠?
한국도 이제 많이 선선해졌어요? ]
[ 오냐,,,여기도 많이 선선해졌다.
거기는 아직도 덥냐? ]
[ 아니..여기도 아침저녁은 선선해요,
별일 없으시죠? ]
[ 응, 여기는 걱정할 것이 없다. 깨서방은? ]
[ 응,,깨서방이 엄마한테 안부인사 하고 싶다고
해서 전화 한거야~ ]
[ 오메...이 늙은이를 생각해주는 사람은
깨서방 뿐이네~~]
전화기를 스피커폰으로 하고 깨달음에게 건넸다.
[ 오모니~~깨서방입니다. 뭐 하세요?
많이 더워요? ]
[ 아니여~여기는 하나도 안 덥네~ ]
[ 네... 오모니,,보고 싶어요~ ]
[ 긍께..지난번 제주도에서 만났어야헌디
내가 중국 놀러가니라고 못 만나부렀네..
우리가 언제 만났는가 기억이 안 나네..
아,,, 아버지 기일날, 2월달에 봤응께,,
6개월이 지나부렀네,,그 때 제주도에
내가 갔어야했는디...서운하네...]
엄마 말이 길어서 전혀 못 알아 듣는 깨달음이
이대목에서 내 눈치를 살피더니 얼른
전화기를 나한테 밀었다.
[ 엄마,,,깨서방이 찬바람 부른데 엄마 혼자
또 외롭지 않으실까하고 걱정된다고 하네..
그리고 또 박하사탕 샀다고 보내라고 난리야 ]
[ 오메..지난달에 겁나게 보냈는디 뭐덜라고
또 보내야~, 11월에 올 때 가져오니라,
글고,인자 외롭고 그러지도 않응께 걱정말아라.
살믄 얼마나 살것냐,,이렇게 살다가 죽것지...
그래도 깨서방이 그런말도 해주고 그런께
고마워 죽것다~나 같은 것을 깨서방이
꼭 챙겨준께 미안하고 고맙고 감사하고 그런다 ]
엄마는 외롭지 않다고 하셨지만 아빠를 보내고
홀로 지낸 5년이 여전히 쓸쓸하신 듯했다.
엄마와 이런저런 얘길 나누고 있는데
내 옆으로 바짝 다가온 깨달음이
귀에 대고 뭐라고 했다.
[ 뭐? ]
[ 패,,패..]
[ 패? ]
[ 패쥬스~~~]
[ 배쥬스,,아,,,배즙? ]
[ 응,,패줍 ]
배즙이라는 말에 갑자기 깨달음이 엄마에게
전화한 이유를 난 확실히 알아차렸다.
[ 엄마,,,깨서방이 배즙 해달라네...]
[ 그렇지 않아도 찬바람 분께 할라고 그랬다.
내가 배랑 도라지랑 넣어서 진하게 만들어
보낼랑께 쬠만 기다리고 그래라잉~
해서 바로 보낼랑께 ]
[ 아니.. 엄마 보내지 말고 11월에 우리가 가서
가져올게요. 무겁고 그러니까 그냥 두세요 ]
[ 아니여, 깨서방이 기다린께 보내줄란다,
도라지 넣은 놈을 마시믄 기침이 많이 좋아져야,
그런 것은 계속해서 먹어야 낫는 것이여~]
엄마는 깨서방이 늘 잔기침을 하는 걸
안타까워하셨고 한국에 갈 때마다 잊지 않고
배즙을 준비해 일본에 보내주셨다.
통화를 끝내고 내가 깨달음을 빤히
쳐다봤더니 지난주에 배즙이 다 떨어져서
장모님께 말씀 드린거라고 한다.
[ 그냥 코리아타운에 가면 판매하니까
이제부터 주문해서 먹으면 되잖아,,
엄마가 또 시장가서 무거운 배 사고,
도라지 사서 밤새 그걸 다 까고 씻고 해서
방앗간에 가지고 가서 배즙을 내실건데
그런 수고를 덜어드리는게 효도라고
생각 안 해? 당신은? ]
[ 그러긴 한데...어머님이 해주는 게
최고의 보약이잖아,,판매하는 것보다...
지금 마시고 있는 홍삼정도 처음 보는 거였어..
이건 나 뿐만이 아니라 우리 친구들도
얼마나 좋아하는지 당신도 알잖아,
매달 한병씩 달라고 난리야~ ]
한국에 다녀올 때 깨달음 친구들에게 홍삼정을
선물로 드렸는데 정말 너무도 좋아하셨고
몸에 맞다고 매달 구입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친구들이 많았다.
(다음에서 퍼 온 이미지)
[그러긴 한데..엄마가 고생하잖아,,]
[ 어머님이 나를 아들처럼 생각하셔서 해주신다고
그랬잖아,,나 기침한다고 도라지도 넣고,
난 어머님이 직접 해주신 배즙을 먹어야
건강해지는 느낌이 들어..]
[ 기분탓이야, 판매하는 것도 좋아,
당신 마음은 아는데 엄마가 고생하시잖아 ]
친정엄마가 고생한다는 내 말에 깨달음이
서운했는지 쳐진 눈을 더 불쌍하게 뜨고는
자신의 어릴적 얘길 했다.
[ 난,,솔직히.. 당신이랑 결혼해서 배즙도
마셔보고 그러는 거야,,일본은 한약,
건강음료 같은 걸 거의 마시지 않아,
나 어렸을 때 우리 엄마가 장모님처럼 그렇게
건강을 생각해 뭔가를 해주고 그러지 않았어.
그런데 장모님이 매해 해주시니까 참 좋았어..
단순한 배즙이 아닌 장모님이 사위를 위해
만들어주신 사랑이잖아,,그니까 그 사랑을
받고 싶단 말이야,..,]
일본인 부모는 자식을 위해 한국 엄마처럼
한약을 해서 먹이거나 영양제나 보양음료를
챙기는 게 거의 없다는 걸 나도 알기에
깨달음이 배즙에 대한 집착이 생기고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 이해는 하지만
친정엄마가 밤새 혼자서 도라지를 까서
수고하실 것을 생각하면 복잡한 심경이다.
[ 처제는 오미자즙도 보내주고 그러잖아,,,
나는 결혼전에 그런 걸 보지도 못했고
어떤 건지도 몰랐는데 챙겨 먹어보니까 진짜
몸에 좋은 것 같아, 그건 정성과 사랑이 담겨서
그런거잖아, 한국 장모님만이 해줄 수있는 건데
왜 사서 먹으라고 그래,, 당신은? ]
[ ............................. ]
약간의 애정결핍이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지만
한국 장모님에게만 받을 수 있는 사랑이라는
말에 더이상 말을 더하지 않았다.
깨달음 마음이 슬퍼질 것 같아서.
어쩌면 배즙도 배즙이지만 시어머니에게
받지 못해봤던 새로운 감각의 장모님 사랑을
받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다.
올해도 깨달음은 사랑이 가득 담긴
한국 장모님표 도라지배즙을
마시며 행복해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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