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어제부터 추석연휴에 들어갔다.
8월15일이 추석인 이곳은 지금 귀성차량과
해외여행 가는 사람들이 빠져나가
시내가 한산하다.
하지만 깨달음은 어제도 출근을 했고
9시가 넘어서 퇴근을 한 그는 비에 젖은
모습을 하고 들어왔다.
[ 소나기 맞았어? ]
[ 아니, 한 정거장 미리 내려서 걸어왔잖아,
살 빼려고,,,]
[ 오늘은 더워서 죽을지 모르니까
그냥 오라고 했잖아 ]
[ 아니야,,매일 해야 돼..열심히 해도
뱃살이 안 빠지고 있어서 .....]
ㅠㅠ를 해가면서 자기의 지금 심정이
울고 싶다고 했다.
[ 완전 땀범벅이네....]
[ 살이 쪄서 땀이 더 나는 것 같애 ]
[ 고생하네...]
[ 이렇게 열심히 하면 언젠가 빠지겠지..]
뱃살을 빼려면 다른 운동도
병행해야 빠진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너무 힘들어서 눈이 반쯤 풀려 있는 깨달음에게
차마 말을 할 수 없었다.
샤워하러 갈 거니까 사진 그만 찍으라며
속옷을 뒤지는 깨달음을 계속 찍고 있었더니
아직 다이어트 성과가 나오지 않았는데
찍어서 블로그에 올려 돼지라고 할 거냐면서
한국말로 [ 하지마했지? ]란다.
[하지말라했지]를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고
줄여서 하는 깨달음만의 한국어이다.
개운하게 샤워를 마친 깨달음이
냉장고에서 아이스크림을 꺼내더니
내가 사진을 찍을새도 없이 한 입에 다
넣고는 내게 부탁했던 것을 보여달라고 했다.
작년 7월부터 법인카드로 사용한 내력을
프린트해서 한국어를 일본어로 모두 표기한 것을
내밀었다. 소비세 정산및, 8월말까지
깨달음 회사의 세금을 내야했다.
올 한해 매출이 많았던 만큼 세금이
어마어마해서 오늘도 세무사와 저녁을
먹으며 정리하고 산출하고 했단다.
[ 수익이 많으면 세금도 많이 내야하니까
머리 아프겠다...]
[ 당연한 건데, 돈 벌어서 다 나라에
주는 게 아닌가 싶을 때도 있어.
그래서 세무사랑 이것 저것 조절하고
그러는 거야,,]
내가 뽑아 놓은 영수증을 한장씩 꼼꼼히 살피다가
묻는다.
[ 공항에서 뭐 산 거야? ]
[ 응,,선물,,]
[ 뭐 샀어? ]
[ 응,,향수,,]
[ 누구 것? ]
[ 친구 준 거야,,]
[ 저번에도 사지 않았어? ]
[ 응, 이번에는 다른 친구...]
아무말 없이 또 한참 영수증을 들썩이며 체크를
하다가 나를 한번 쳐다보더니 런닝셔츠 밖에
안 입었는데 찍는다고 못 찍게했다.
[ 당신이 뭐든지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게
좋다고 했잖아, 그리고 이 블로그의
모델은 당신이 전속이고,,,,]
내 말에 어이가 없는지 다시 영수증에
눈길을 돌렸다.
[ 올 해 세금은 얼마정도 낼 것 같아? ]
[ 말하면 블로그에 적을 것 같으니까 말 안할거야 ]
[ .............................. ]
[ 이 영수증은 뭐야? 국제우편 우송료네 ]
[ 응, 전 세계에 계시는 블로그 이웃님께
보낸 우송료야,,]
[ 음,,,]
[ 당신 보다 내가 더 많이 벌면 당신이
편할텐데,,괜히 미안해지네..]
[ 한국에 가면 당신이 다 벌어야하니까 지금은
내가 여기서 열심히 하는 것 뿐이야]
[알아,,]
[ 만약 약속을 어기면 내가 장모님한테 다
이르고 장모님 댁에 나혼자 가서 살거야 ]
[ 벌써 그런 것까지 생각했어? ]
[ 그럼, 당연하지, 지금 내가 열심히 버는 것도
한국에서 편하게 놀려고 하는 거니까..]
결의에 찬 얼굴을 보니 정말 약속을 안 지키면
우리 엄마집에 가고도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직원들 영수증도 다 봤어? ]
[ 아직 덜 확인했어,그래서 내일도 회사 갈거야 ]
[ 직원들이야 뭐 허튼 곳에 썼겠어? ]
[ 등잔 밑이 어두는 거야, 그래서 더 철저해야 돼.
직원들이 첨부한 영수증을 보면 그 직원의
생활패턴도 알수 있어. ]
[ ............................ ]
[ 그건 그렇고, 이 비행기값은 왜 이렇게
비싼 거야? ]
[ 아,,그 때 성수기여서...]
[ 그래서 미리 3개월전에 예약하라고 했잖아,,
두배나 주고 가면 얼마나 손해야..]
테이블에 앉을 때부터 깨달음 눈빛은
사장님으로 변해 있어서 순수히
알겠다고, 다음부터 조심하겠다고 대답했다.
모든 영수증을 한장도 놓치지 않고 아주 꼼꼼히
살피는 것은 기본이고
조금이라도 금액에 의문점이 생기면
내게 물었다. 200장이 넘는 영수증을
깨달음에 의구심이 풀리고 납득이 갈 때까지
늦은 시간까지 난 옆에서 영수증의 출처와 상세
설명을 해야했다.
깨달음이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회사를 차려서
지금까지 이끌어 올 수 있었던 건
이렇게 매의 눈으로 자산관리를
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으로 대단하면서도 역시, 보통이 아닌
사람이다는 생각이 들어 나도 모르게 깨달음
얼굴을 다시 쳐다보게 된다.
가끔 내가 회사에서 봐 왔던 깨달음은 아주
부드럽고 상냥하며 직원들 입장을 우선으로
생각해서 많은 해택을 받게 하고 있다.
직원들과도 격식없는 관계를 만들어
그만 둔 직원들이 또 다시 일하러 올만큼
유대관계도 돈독하다. 하지만
이렇게 돈 앞에 서면 깨달음은 한치의 빈틈도
주지 않고 상대가 아내일지라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그게 당연한 것이고 나 역시도 그런 성향이
참 마음에 들지만 한국으로 귀국해서 내가
본인처럼 열심히 하지 않으면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경영자여서 더 그럴 수밖에 없다고는 하겠지만
역시,돈에 관한 개념이 철저해서 썰렁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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