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를 기다리며 우린 아무말이 없었다.
지난달 시부모님이 옮기신 노인 홈은
생각했던 것보다 좀 거리가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 어머니, 아버님, 저 왔어요]
[ 오,,케이짱 왔구나,,추운데 오느라
고생했지? 차는 많이 막히지 않더냐? ]
[ 네..조금 막혔는데 괜찮았어요 ]
[ 설 연휴에는 다들 놀러 가는데 너희들은 또
이렇게 멀리까지 오느라 고생했구나.. .]
[ 어머님, 그리고 아버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 해도 건강하시구요~]
[ 응,,고맙다,, 올해는 너희들도 아프지 말거라.. ]
[ 아버님, 이곳은 어때요? 지난번 계셨던
병설요양원에 비해 괜찮아요? ]
[ 음,,, 그냥,...특별히 달라진 건 없단다 ]
[ 뭐,,불편한 거 있으면 말씀해 보세요~]
[ 그냥, 만족하며 살고 있어. 곧 저 세상에 갈 건데
뭘 바라겠니. 모든 걸 받아들이며
사는 게 제일 편하단다.. ]
어머님이 기다렸다는 듯이 한마디 거드셨다.
[ 여기도 나쁘진 않는데, 식사가 변변치 못하다고
할까,,그래도 리해빌리(재활치료)는 여기가
훨씬 꼼꼼하게 잘해 줘..
모든걸 100%만족할 수 없잖니.
많은 걸 바래서는 안 되고..]
[ 그래? 식단표를 내가 봤는데,,그렇게 나쁘지
않았는데,,실제로는 아주 빈약하나 보네 ]
깨달음이 의아한 표정을 하며 팜플렛을 꼼꼼히
살피자 아버님이 이 정도면 충분하니까
괜히 사무실에 싫은 소리 하거나 그러지 말라며
불만을 얘기하는 자체가 실례이고
그냥 감사하게 생각하고 살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당부하셨다.
깨달음이 화제를 바꾸기 위해 새해 첫날밤
무슨 꿈을 꿨는지 두분께 여쭈었다.
일본에서는 1월1일, 꾸는 꿈으로 일년을 점치는
습관이 있어서 몹시 궁금해 했었다.
아버님이 머뭇거리며
[ 실은 31일부터 계속 장례식 꿈을 꾼단다..
어제도 그랬고,,]
[ 누구 장례식이였어? 그거 좋은 꿈이잖아,
장수한다는 꿈이야~]
[ 그래도 계속 3일동안 꾸니까 좀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아마 이 침대 위치 때문에 북쪽에
머리를 두고 자서 그런 꿈을 꾼 모양인 것 같구나 ]
[ 그럼 방향을 바꾸면 되잖아..지금 바꿔 줄게 ]
[ 아니다,,맘대로 옮기고 그러면 괜히
싫어할지 모르니 그냥 두어라 ]
[ 잘 때마다 신경 쓰이면 안 좋잖아,,그니까
바로 옮겨줄게,누가 뭐라 그런다고 그래? ]
[ 아니다, 아니다,,내가 괜한 소릴 했구나..
진짜 괜찮다,,그대로 둬.. ]
깨달음이 위치를 바꿔 드린다고 몇 번 그랬지만
끝내 그냥 내버려 두라고 하셨다.
곧 죽을 건데 바꾼다고 뭐가 달라지겠냐며
괜히 소란스럽게 하고 싶지 않으시단다.
그리고 아버님이 깨달음에게 집에 가서
몇 가지 가져올 물건들을 부탁하셔서
우리 집으로 옮겨왔는데 지난 연말, 집에 있는
가전제품을 서방님이 하나씩 처분하고
옮기느라 안방이며 부엌살림이 이사하는 집처럼
어지럽게 널부러져 있었다. 난, 깨달음이 먼지를
대충 닦고 향을 피운 불단 앞에
우두커니 서서 흔들거리는 촛불을 바라보며
빈집이 폐허가 되어가는 과정들이
이런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어머님이 부탁한 보청기가 눈에 띄이지
않아 서방님께 몇 번의 전화를 거는
깨달음을 멍하니 바라 보았다.
[ 깨달음,,지난번 니가 말한대로 몇군데 적었는데
맞는지 한 번 봐 주렴 ]
아무말 없이 깨달음이 책자를 받아서 체크를 했다.
언젠가 우리가 사 드린 유언노트였다.
그걸 집에서 가져오라 하셨던 것이고
궁금한 것들을 묻고 있는 중이였다.
[ 음,,,이렇게 적어 두면 돼...잘 적어놨네...]
[ 장례식은 아주 간소하게 하고,내 뼈는
납골당에 넣거라, 그리고 제사는 지내려고도
하지말고, 멀리서 일부러 오려고도 하지 말아라,,
시간과 돈 낭비니,,죽으면 모든 게 끝이다..
내가 니 아비였다는 것만 기억해 주면
고맙겠구나...우리 케이짱도...
여기에 적힌대로 아주 간소하게 마무리해 주고
재산 관계는 너희 형제 둘이서 처리를 하고
땅은 명의가 어머니로 되어 있으니
그것도 미리 처분을 해 두는 게 좋을 게다.. ]
[ 아버님,,왜 갑자기,,유언 얘기를,,그런 약한
말씀을 하세요..올 한 해 건강하시라고
이렇게 저희들이 인사드리러 왔는데
아버님이 그런 말씀 하시니까
갑자기 너무 슬퍼져요...아버님...]
[ 음,,케이짱,,,언젠가 해야할 얘기고,,
장남인 깨달음에게 확실히 해 두는 게 내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란다. 내가 새해를 맞이하고
너희들을 기다리며 생각해 봤는데,,
이 2018년을 무사히 보낼 자신이 없더구나....
[ 왜 자신감을 잃으셨어요. 저랑 100번은
더 만나기로 약속하셨잖아요 ]
[ 응,그러면 좋은데,이젠 때가 가까이 온 것 같애 ]
[ 아버님, 포기하시면 안 돼요, 마음을 강하게
먹으셔야 돼요~아직 100살까지 사시려면 5년도
더 넘게 남았잖아요, 그런 말씀 마세요~ ]
[ 음,,포기 하지 않는다고 되는 일이 아니란다.
순리대로 살다가 가는 것이니까...
아 참, 내가 우리 케이짱 신년 운수를 봐 주마,,
무슨 띠였지? 케이짱이? ]
아버님이 토정비결 책으로 눈길을 돌리셨다.
무언가 마음의 정리를 하신 것 처럼
지난번과는 너무도 달라진 모습의 아버님이
차갑게마져 느꼈졌다.
이곳으로 옮긴 뒤,,새로운 사람들과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불편하셨는지 어머님께 지난번
시설이 좋았다는 말을 딱 한번 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번 시설은 두 분이
이젠 들어갈 수 없는 상태이고 이곳 역시도
겨우 자리를 얻을 수 있어 거처를 옮기셨는데
여러가지 복합된 이유들로 모든 걸 접기로
마음을 먹으신 게 분명했다.
[ 깨달음..니가 장남이니까 모든 걸 부탁한다.
가는 날까지 너희에게 신세를 지고 가게 되서
미안하구나..그리고 행복했단다..]
[ 아버지! 알았으니까 이제 그런 말씀 그만하시고
미리 말씀해 주셔서 내가 오히려 더 고마워~
가시는 날까지 아버지도 즐겁게 보내셔~
다음달 생신 때 또 올거니까 뭐 먹고 싶은 게
있는지 생각도 해 놓으시고~알았지? ]
아주 밝게 마지막 인삿말을 하고는 아무렇지 않게
손을 흔드는 깨달음이 신기했다.
[ 음,,깨달음,,,그리고 케이짱,,너무 고마웠고
항상 기도하마...조심히 가거라~]
난 방문을 닫을 때까지 두 분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무언가 큰 죄를 짓고 있는 것 같아서...
두분의 불편함을 알면서도 어떻게 해 드릴 수
없는 현실이, 그리고 그 현실 속에 숨어 있는,
내 스스로가 부끄러워서....
노인 홈을 나오며 우린 사무실에 들러 음식물
반입과 소포에 관한 규제사항들을
조금 꼼꼼히 물어보았다.
그리고 식단표도 확인하며 잘 부탁드린다는
말만 거듭하고 문을 나섰다.
두 분이 의기소침하신 게 새로 옮긴 요양원
탓이라고 할 수 없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모든 걸 내려놓으셨기에 깨달음과 나에게
마지막 가는 길을 부탁하셨을 것이다.
죽는 날을 미리 알 수 없지만, 이렇게
냉정하리만큼 마음을 비우고 자식에게 말씀하시는
모습이 참 의연하면서도 안쓰러웠다.
무엇보다 아버님의 유언과 부탁에도 아주 담담히
대답하고 하나씩 체크하는 깨달음에게도 놀랐다.
자신들의 죽음마저도 미리 계획세워 준비하고,
마지막까지 자식에게 폐 끼치지 않으시려는
마음자세가 존경스럽다.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훨씬 깔끔하고 아주 단호하게 대응하시는
두 분의 태도가 차갑고, 낯설고,
슬프면서도 너무 대단하셨다.
죽음을 눈 앞에 두고도 초연해 질 수 있어야
하는데 난,, 아직까지 연습이 부족한 탓에
자꾸만 감정에 휘말리고 있다.
[ 내가 니 아비였다는 것만 기억해 줘도 고맙다]
라는 그 말씀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도쿄로 돌아와서도 먹먹한 가슴이
꽤 오래 지속되었다.
그저 우리 시부모님께 죄송한 마음과
존경스러움만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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