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노트북에 놓여진 봉투에
요코야마 상이라는 이름이 적혀있었다.
부재중인 나에게 뭔가를 전할 때면 깨달음은
이렇게 내 노트북 위에 가만히 올려놓는다.
열어보니 지난달, 내 책을 샀던 대금과
아주 짤막한 인사말이 몇자 적혀 있었다.
한국어 필체를 보고 금방 알수 있었다.
꽤 급하게 썼다는 것을,,,
뒤늦게 내 출간 소식을 듣은 요코야마 상이
깨달음에게 몇 권 주문을 했었다.
그 대금과 축하한다는 의미의 상품권도
3장 들어있었다.
요코야마 상은 깨달음 회사를 담당하는
회계사의 한 분으로 동경대를 졸업한 수재이며
나와 동갑이지만 아직 미혼이다.
독학으로 한국어를 공부했고 읽고 쓰기는 항상
100점을 맞지만 말하기와 발음을 너무
힘들어해 한국어 발음이 알기 쉽게 표기 된
사전을 내가 선물한 적도 있다.
한국어 공부를 하다가 모르거나
막히는 부분이 생기면 시간에 관계 없이
내게 전화를 해서 직접 물어보는
아주 적극적인 아저씨이기도 하다.
한국 드라마는 번역판이 아니여도 60%이상
이해가 가능하고 작년에는 한국어
능력시험3급을 땄다고 했다.
내 주위의 그 누구보다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는 일본인이다.
그리고 소녀시대의 김 태연을 너무 좋아해서
김 태연의 고향인 전주에 가서 비빔밥을 먹고
부모님이 경영하는 안경집에서 안경을 하나
살 거라고 늘 자랑하듯 얘길 했었다.
선물 잘 받았다는 메일을 보내자 바로
요코야마 상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모시모시(여보세요) 도 하지 않고 새해 인사를
하는 그는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 어때요? 내 발음? ]
[ 아주 좋은데요]
[ 그렇게 말씀 해주시니까 감사합니다,
그래도, 역시 발음이 너무 어러워요..]
[ 많이 좋아지셨어요. 지금 한국어 공부는
어느정도 하고 계세요? ]
[ 일이 바빠서 많이 못 하고는 있어요..
개인교습 다시 신청해야하는데 좀처럼
시간 잡기가 힘드네요 ]
[ 지금도 잘 하시는데 언제까지 하시려구요? ]
[ 한국어 노래 가사를 멋지게 만들만큼 하고싶은데
너무 꿈이 크죠? ]
[ 아,,소녀시대 아직도 좋아하세요?]
[ 네..저는 누가 뭐래도 소녀시대뿐입니다.
온리 소녀시대,, 하하하]
통쾌한 웃음 소리와 함께 이번 평창올림픽에
한국에 잠깐 가고 싶다는 얘기를 하다가
북한 선수, 그리고 아베총리 얘기가 나왔고
한일관계, 위안부 얘기까지 좀 깊은
대화를 하다가
갑자기 내게 사과를 하고 싶다고 했다.
[ 요즘, 한일관계가 많이 냉냉한데
정말,,아베 정권에는 기대를 말아야해요.
같은 일본인으로서 정말 형편없다고 생각합니다.
돈으로 해결할 게 아니라 마음으로
진심어린 사과를 해야하는데
너무도 생각이 달라서...
제가 정 상에게 대신 사과를 드리고 싶네요.
일본 사람들이 의외로 역사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서 바보같은 소리를 하기도하고
억지를 부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처럼
선조가 뭘 잘못했는지, 뭘 사과해야하고
부끄러워야하는지 아는 일본인들도 꽤 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
[ 그니까요,,진심어린 사과를 하기 위해서는
바른 역사관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 부분이 많이 부족한 것 같아요. 요코야마 상이
이렇게 속내를 보여주시니까 감사하네요 ]
[ 아닙니다..잘못한 건 잘못했다고 하는 게
당연한데 일본인들이 그걸 잘 못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오랜시간 해결을 못하고
끌고 있잖아요.총리가 바뀔 때마다 사과를 했다가
취소하고 모른 척하고, 나몰라라하고,,
모른척 하는 게 가장 비겁한 건데,,
여전히 심각하게 고민하고 해결하려는
의지가 없는게 가장 큰 문제인 것 같아요.
덮으려고 하고 피하려고 하니...
두 나라가 좀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먼저 올바른 역사인식과 사과가 절실한데 말이죠]
[ 근데,,왜 갑자기 이런 말씀을 하신 거에요? ]
[ 정 상이 쓴 책을 아직 다 읽진 못했는데
한일커플로 살아가는 것,그리고 일본에서의
생활들이 그리 쉬운 게 아닌 것 같더라구요.
아직 한국어를 100%이해하진 못하지만
참,,여러 생각을 하게 만들더라구요..
늘 한국, 한국인에 대해 죄의식 같은 미안함이
있었는데 마음만 갖고 있을 게 아니라
직접 말로 하는 게 상대에게도 다이렉트로
전달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
[ .....감사합니다.....]
(출처- 한겨레 신문)
내가 이곳에서 17년간, 만나고 지냈던 일본인과는
사뭇 다르게 자기 감정에 솔직하고
할 말은 꼭 하는 요코야마 상이다.
원래 솔직한 사람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아닌 건 아니라고, 틀린 건 틀렸다고
자기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은 일본에서
그리 흔지 않고 만나기도 힘들다.
요코야마 상은 전화를 끊기 전에
하고 싶은 말을 다하고 사니까 자기가 결혼을
못하는 거라고 또 통쾌하게 웃었다.
( 2년전에 만났던 요코야마 상)
지금으로부터 26년전, 1992년 1월 29일,
당시 일본 총리였던 미야자와 기이치가
과거 2차 세계대전 중에 일본정부가 주도해
한국 여성들로 하여금 일본군들과 성관계를
갖도록 한 사실에 대해 사과한 날이다.
이날, 미야자와 총리는
[ 우리는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겪은 사람들에게
마음 속 깊은 사과와 반성을 한다]고 말했다.
갈길이 멀고도 먼 한일관계이지만
요코야마 상처럼 바른 사고를 가지고 있는
일본인이 분명 있다는 것에 조금은 안도가 된다.
앞으로도 이렇게 옳바른 역사의식을
갖고 살아가는 일본인이
늘어가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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