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재래시장을 참 좋아한다.
20대에도 마음이 심란하고 사는 게 무언지
갈피를 못 잡을 때면 자연스레 재래시장으로
발길이 옮겨갔다. 그곳에 가면
농, 수산물을 펼쳐놓고 목청 높여가며
땀범벅이 된 상인들의 얼굴을 보고 있자면
삶의 원동력을 느낀다고나 할까
그분들에게서 나는 진한 사람냄새가
무겁게만 짓누르는 삶의 무게를
잠시나마 잊게 해주곤 했다.
그래서 나는 서울에서 한 달 살기를
하면서도 시간만 나면 시장투어를 했다.
서울에서는 청량리시장, 동대문시장,
남대문시장을 갔고 수원에 친구를 만나
모란시장까지 다녀왔었다.
제주도에서는 민속시장과 동문시장을
광주에서는 말바우시장을 갔다.
지역마다 취급하는 물건들도 다르지만
상인들, 그리고 그 시장을 찾는 사람들의
색깔도 다양해서 볼거리가 많은 만큼
다가오는 체감도 제각각이었다.
외국인이 많이 찾는 시장이 있는 반면
주부나 아저씨들이 주로 모이는 시장,
가끔은 젊은 커플들이 많은 곳도 있었다.
그런 여러 형태의 시장을 돌아다녔는데
이번에 난 시장에서 외국인 취급을
당했다. 거기엔 나름 이유가 있었다.
제주 동문시장에 갔던 날,
천혜향, 카라향을 맛 보라며 바구니를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미는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맛보세요]라고 하고서는
나에게는 [트라이, 트라이]라고 했다.
그리고 깨달음이 좋아하는 약과를 사기 위해
일단 맛을 보고 사진을 찍어 깨달음에게
뭐가 먹고 싶은지 묻고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데
주인아줌마가 아주 불편한 시선으로
나를 힐끔 쳐다보면서 손을 휘저으며
저쪽으로 가란 식으로 밀어냈다.
그래서 내가 지금 남편한테 뭐가 좋은지
뭐 살 건지 물어보고 카톡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더니 아주머니가 놀라신 얼굴을 하고
한국사람이냐고? 자기는 외국인인 줄
알았다면서 눈빛이 달라졌다.
천혜향을 트라이, 트라이할 때부터,
센베이 아줌마가 손을 입으로 가져다 대면서
먹어보라는 시늉을 할 때도 기분이 싸하긴
했는데 약과 아줌마까지 그러니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그렇게 시장을
돌다가 깻잎을 파는 할머니가
계셔서 얼마냐고 물었더니
2묶음에 천 원인데 5묶음에 2천에
주겠다고 그러길래 얼마만큼 사 가는 게
좋을지 잠깐 생각하고 있는데
그 할머니가 갑자기 목청을 높이더니
[ 2묶음에 천 원인데, 5묶음에 2천에
준다는데 왜 말귀를 못 알아먹어! ] 라며
소리치면서 가라는 식으로 또 손을 휘저었다.
그 행동에 갑자기 화가 나서 나도 모르게
[ 누가 말귀를 못 알아먹어요? 아줌마!]라고
쏘아붙였더니 할머니가 한국인이네?라는
표정으로 얼른 고개를 돌려 내 쪽을 쳐다
보지도 않고 시선을 회피하셨다.
분명, 한국말을 잘하는 외국인이
사지도 않을 거면서 물어봤다고
생각한 게 틀림없었다.
말귀를 못 알아먹냐는 말도 그랬지만
그 할머니의 표정이 아주 사람을 바보
취급하는 눈빛이어서 불쾌함을 참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도 어른한데 그러면 안 됐는데 반성을
하며 언니집을 가서 이 날에 얘길 하나도
빠트림 없이 했더니 가만히 듣고 있던 언니가
나에게서 한국사람 같지 않은
외국인 냄새가 나긴 난다며 몇 가지
예를 들어주었다.
첫 번째, 화장을 안 하고 다니는 내 모습,
한국에서는 웬만하면, 주부들도
거의 화장을 하고 다니는데 나는
화장도 안 하고 외관상 패션도 약간
한국적이지 않고 머리스타일도 좀 그렇단다.
일본에서는 주부들이 그냥 외출할 때 거의
화장을 잘 안 하고 눈썹이나 선크림정도만
간단히 바르고 다니고 한국처럼
마스카라에 색조까지 넣지 않는다고 했더니
한국에서는 화장을 안 하면 모자를 쓰거나
좀 변장?을 하는데 전혀 그런 게 없어서도
외국인 취급을 했을 거란다.
두 번째. 시식코너에서 보인 내 모습
시식코너에게 내가 항상
[ 이거 먹어봐도 돼요? ]라고 묻더라면서
한국사람들은 그걸 굳이 묻지 않고 먹는데
나는 꼭 확인하듯이 물으면서
조심조심하는 모습이 이상하게 보였을 거란다.
일본에서는 시식코너가 있어도 맘대로 집어
먹는 게 아니라 일단 먹어도 되는지
한 마디씩 하고 먹는 게 일반적이어서
그게 습관이 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온 행동인데 그런 것들이 다르다고 했다.
또, 뭔가를 할 때도 주변을 살피고
주저주저하고, 망설이더라면서 그런
제스처도 한국인이 아닌 것 같단다.
서울 모 마트에서 화장품 코너를
둘러보는데 직원분이 나한테
니혼고 데끼마스( 일본어 할 수 있어요)
라고 말을 걸어왔었다.
주저하고 망설였다는 표현이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나는 괜히 사지도
않으면서 물어보는 게 실례일 것 같아서
밖에서 다 살펴보고 사야겠다 싶으면
들어가려고 했던 건데
일본에서 쇼핑을 할 때처럼 신중했던
그 모습도 약간 한국인과 다른 느낌이란다.
세 번째. 사진을 찍는 나
시장에 가면 특히 사진을 많이 찍는데
한국사람들은 시장에서 그렇게 대놓고
사진을 찍지 않는다며 블로그에 올리려고
찍겠지만 상인들이 봤을 때는
별 걸 다 찍는다 싶어 외국인으로
생각할 수가 있단다.
다른 한국 블로거들도 사진을 찍을텐데 그럼
그 사람들도 외국인 취급을 당하는 걸까
의문이 생기는 부분인데 알 수가 없다.
네 번째. 말투가 다른 나.
내 말투에서 가끔 약간 외국인 같은
억양이 나올 때가 있단다. 20년을 넘게
외국에서 살면 그 나라 사람들처럼
행동, 몸짓, 태도, 인사하는 모습,
리엑션도 닮아가듯이 말투에서 약간
일본사람이 하는 한국어처럼 들릴 때가
있었다고 한다. 미국에 오래 살면
버터가 섞인 느낌이 나듯이..
엄마와 싱가포르 여행 갔을 때,
자기랑 엄마에게는 [안녕하세요]라고
말을 걸면서 너한테는 [곤니찌와]라고
하지 않았냐며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너한테 풍기는 분위기가 한국인 같지
않았다는 거라며 다른 나라 사람이 봐도
너는 한국인이라기보다는
일본인 같은 분위기가 느껴져서
그런 거라고 했다.
그리고 특히 제주의 재래시장은 관광객을
상대로 장사를 하다 보니까 장삿속인
경우가 타 지역보다는 좀 더 강한 것도
있다며 물건을 살려면 사고, 안 살 거면 저리
가라는 식으로 육지에서 온 사람들에게
쌀쌀맞게 굴 때가 종종 있으니 지역 특성상
그런 것도 있었을 거란다.
일본인으로 보든, 중국인으로 보든,
내가 한국인으로 보이지 않았다는 것에,
그리고 외국인인 것 같으니까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게
불쾌했던 것이다.
아무튼, 난,, 한국에서도 외국인 취급을
확실히 받았는데 그걸 내가 증명이라도 하듯
서울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다.
작은 언니네 별장을 가는 길에 교통체증이
심해서 차선을 변경해야 될 것 같다며
끼어들기 전에 손을 잠깐 들어야 된다길래
조수석에 앉은 내가 차문을 열고
두 손을 빼서 싹싹 빌었더니
뒤에 앉은 동생이랑 언니가 동시에
[ 하지 마,, 뭐 하는 거야~~~]라고 악을 썼다.
나는 뭘 잘못했는지 모른 채 이렇게 하는 거
아니냐고 티브이 보니까 끼어들기할 때 이렇게
하더라고 했더니 그건 연예인들이
웃기려고 하는 것이고 일반 사람은
안 한다면서 완전 외국인이 티브이로
한국문화를 잘 못 배운 케이스처럼
자기 자매가, 이렇게 외국인 같은 행동을
할 줄 몰랐다며 창피하면서
웃기다고 한참을 웃어댔다.
뭔가 내가 잘 못 터득한 게 분명한데
뭐가 맞는 것이고 뭐가 대중적인지
그걸 구별하지 못한 내 자신이 참
한심스럽게 느껴졌던 날이었다.
연애를 책으로 배우는 사람처럼,
난, 한국을 티브이에서 배우고 있다.
정말 외국인처럼,,
여기서도 외국인,
한국에서도 외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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