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교시 수업이 끝나고 점심을 먹고 난 후,
5.6교시 체육시간에 입을
체육복을 미리 갈아입고
이어 달리기를 같이 할 친구들과
바통으로 까불고 있을 때 선생님이
오늘은 오후 수업이 없으니 빨리
집에 가라고 했다.
우리는 다 같이 앗싸! 를 외치며
가방을 챙겼고 교복으로 바꿔 입으려는
친구를 본 선생님이 갈아입지 말고
집으로 바로 가라고 했다.
교문을 향해 걸어가는데 대학생 언니, 오빠들이
7.8명이 옆으로 붙어 어깨동무를 하고는
상기된 표정으로 줄을 맞춰 빠른 걸음으로
교문을 빠져나가는 걸 봤다.
한 줄, 두 줄, 세 줄, 네 줄, 다섯 줄, 여섯 줄,,,
대학 부속국민학교를 다닌 덕분에
수업이 빨리 끝나면 친구들과 대학캠퍼스
음악실에 들어가 피아노를 몰래 치곤 했는데
이 날은 그래서는 안 될 것 같다고 직감했다.
그리고 느닷없이 4교시만 하고 수업이 일찍
끝난 것과 무슨 관계가 있긴 있는가 보다 하고
나는 막연히 생각했다.
내가 집에 돌아왔을 때 마당에서 겁에 질린
표정으로 우왕좌왕하는 아빠를 봤다.
[ 아빠, 왜 그래? ]
[ 얼른 들어 가, 방에서 나오면 안 돼 ]
마당에 차곡차곡 세워둔 건축자재에서
크고 쭉 뻗은 통나무를 어깨에 걸치고
대문으로 걸어가는 아빠는 뭔가 정신이
나간 듯한 얼굴빚을 하고 있었다.
철제 대문에 통나무를 나란히 세운다음
대못으로 박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엑스자모양으로
넓적한 나무판을 옮겨서는 망치질을 했다.
마루에 서서 계속 아빠를 지켜보던
나는 비행기인지 헬리콥터인지 전투기인지
정체 모를 굉음 소리에 놀라 안방으로 들어갔다.
(다음에서 퍼 온 이미지)
아빠가 언제쯤 방으로 들어왔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지만 방에 들어와서도
아빠는 농에 넣어둔 두꺼운 겨울 솜이불을
방문에 걸쳐놓고 대못을 또 박았다.
[ 아빠,,왜 이불을,,]
[ 총알이 어디서 날라올지 모릉게
이렇게 해야제 안 들어오제 ]
그리고 엄마, 언니들, 오빠, 그리고 동생이
부엌방에서 하나로 모여 앉아
밖에 나가면 죽는다는 아빠의 절박한
목소리를 되새기며 숨을 죽이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 공수부대들이 다 잡아간께,
밖에 나오믄 큰일난다이,
아무튼, 밖에 나가믄 다 죽어! ]
내 기억의 한자리에 있던
1980년, 5월 18일을 너무도 생생히
떠오르게 만든 [ 소년이 온다]를 읽었다.
후배가 보내준 한 강 작가의 책 중에서
가장 늦게 읽을 생각으로 아껴 둔 책을
계엄선포와 해제가 일어났던
그날 저녁에 읽었다.
작가가 어릴 적 살았던 동네가 우연히도
내가 태어나 자라온 중흥동이라는 동네.
70년대, 호남전기가 있던 자리를 호전이라
불렀는데 책 속에 호전이라는 지명을 보고
동시대를 꽤 가까운 공간에서 숨 쉬고
있었다는 생각에 책을 읽는 내내
마치 책 속에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저자가 되기도 하는 착각에 빠졌다.
학교에 다시 등교하기 시작한 날이
언제부터인지 또렷이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흉악한 사진을 본 것은 한여름쯤이었다.
유독 땀을 많이 흘려 땀보라는 별명을 가진
6학년 오빠가 우리 집과 방향이 같다는 이유로
내 뒤를 졸졸 따라오더니만 나한테
재밌는 사진을 보여주겠다며
뭔가를 불쑥 내밀었다.
[ 이거 뭐야? 수박 아니여? ]
[ 멍청한 것이 그것도 모르냐?
사람이여, 여기 눈깔 있냐, 봐 봐 ]
[ 이것이 사람이라고? ]
사람의 머리라고는 전혀 연상이
되지 않은 내 눈에는 그저 아스발트바닥에
수박이 깨져 있는 걸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군인이 양복 입은 아저씨에게 발길질하는 사진,
트럭에 엎드려 있는 대학생들 사진,
팬티만 입고 목이 포승줄로 묶인 채
줄줄이 사탕처럼 군인을 따라가는 청년들 사진,
나는 그 사진이 무슨 사진이며,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멍청한 아이인채로
어느 누구에게도 이 사진을 봤다는
소릴 하지 않았다.
한 강 작가가 45년 전, 계엄에 의해
처참히 짓밟힌 민주와 운동을
그려내 노벨문학상을 받던 밤.
서울은 45년 만에 계엄선포가 울렸고
6시간만에 해제가 되었다.
아이러니라는 단어로 일축하기엔
죄송할 만큼 무겁고도 가벼웠던 날.
작가 한 강은 문학이란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했다.
일본에 있는 모 한국 식당에서...
내 소울 푸드 중에 하나는 삼계탕이다.한국에 가면 계절에 관여치 않고 꼭 삼계탕을먹고 와야할 정도로 좋아한다.하지만 이곳에서는 삼계탕 전문점을 가 보아도한국의 맛을 제대로 내는 곳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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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자를 좋아한 어느 아저씨의 고백
[ 내가 밀가루 음식을 좋아해서 한국갈 때마다 그녀와 칼국수, 수제비 맛집을찾아다녔어. 그 외 식사는 그녀가 좋아하는고깃집을 다녔는데 뭘 먹어도 그녀는정말 맛있다고 잘 먹었어.같이 롯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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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누군가에게 얘기할 필요가 없었던
내 12살의 5월,,
45년 만에 들은 계엄이라는 단어에
다시 허둥대며 겁에 질린 표정을 한 아빠가
꿈에 나오기도 하고 숨을 헐떡거리며
산으로 산으로 도망가다 깨기도 하고
두껍고 무거운 이불 속에서
나오질 못해 발바둥치다가
잠이 깨길 반복한다.
더 이상, 국민들을 추운 곳에
서게 하지 마십시오. 국민들을
그만 고생시키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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