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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봉사 활동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by 일본의 케이 2023.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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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꼭 식사를 사고 싶다고

작년부터 시간을 내달라고 했었다.

솔직히 썩 마음이 내키지 않아 미루고

미뤘는데 이제 출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모두 알고 있어서 더 이상 거부할 수 없었다.

그녀와의 자리가 불편하거나 싫은 건

아니었지만 굳이 내 마음이 돌아선 이유를

끝까지 말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어디가 좋은지, 뭘 좋아하는지

묻길래 그냥 사무실 앞에서 먹자고 

미리 봐 둔 레스토랑으로 갔다.

런치타임이 끝날 무렵이어서인지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한산해서 우리가

잠깐씩 나누는 대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져나가는 것 같았다.

스페인 요리를 기다리는 중이어서

스페인에 관한 얘길 조금 나누고

비행기 티켓이 비싸네, 싸네..

비즈니스석은 기내식이 어쩌고 저쩌고,,

뭐  그런 가벼운 대화가

오갔던 것 같다.

메인요리가 나오자 내게 사진을 찍도록

자기 파에리아를 내 쪽으로 밀어줬다.

자신은 인스타그램을 하고 있다면서

그렇게 블로그 얘기로 자연스럽게

다시 대화가 이어졌다.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 오미야(大宮) 상, 저 그만두는 거,,

그냥 뭐랄까,, 잠시 쉬고 싶은 거예요.

별다른 이유는 없고요 ]

내가 먼저 말을 꺼내줘서 고맙다며

 역시나 왜 봉사활동을 그만두려 하는지

너무 알고 싶었단다.

 

남들보다 몇 배로 열심히 하고 정말

필요한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그만둔다는 건 분명 무슨 이유가 있다고

확신이 들어서 혹시 자신이 뭘 잘 못했는지

아니면 지금 이 협회 조직 속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건지 알고 싶어 했다.

문제점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난 말하지 않았다.

[ 아니에요, 그냥, 제가 순수한 봉사의

참 의미를 잃어버린 것 같아서 잠시

거리를 두고 다시 한번 새 마음으로

정리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요 ]

[ 정 상이 그런 말을 하면 내가 부끄럽잖아요,

나는 정 상에 비해 너무 한 게 없는데..]

[ 아니에요,, 정말,, 그냥,, 쉬고 싶어서요 ]

그녀는 우리 협회의 문제점이라 생각되는

것들을 내게 고백하 듯 쏟아냈다.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얘기하고 싶었다며

자기도 많은 생각들이 있지만

좀처럼 바꾸려 하지 않는 형식적인 행사와

사람들마다 각자 다른 명분으로 

보란티어를 하고 있어서 그냥

넘어가고 있다며 마음으로 우려 나서

봉사라는 걸 하는 사람보다

보여주기식 봉사를 하는 사람들이

더 늘어가고 있는데 그런 사람들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지시할 수 없어

답답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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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 상은 리더십이 있었잖아요,

그래서 모두가 따르고 좋아했는데 이제

정 상이 없으면 어떡해요..

난,, 사람들을 이끌고 그런 걸 잘 못해서

정 상한테 배우고 싶었는데...]

그녀는 울상을 지으며 안경을

자꾸 치켜올렸다.

잘하실 거라고, 내가 없으면 없는 대로

또 다른 리더와 맞춰가면서 다른 스타일로 

분위기를 만들면 되니까 걱정 마시라고 했다.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서 그녀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자신이 서질 않는다며 정말 울먹였다.

오미야상은 잘못한 거 없으니

지금처럼만 하시라고

그녀를 달래주고 

나는 퇴근길에 병원에 들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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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을 안 하고 와서인지 대기가 길었다.

사람이 없는 소파 쪽으로 멀찍이 떨어져 앉아

번호판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눈을 감았다.

꽃가루가 올 해는 작년보다

3배 정도로 심하다고 하는데

약을 도대체 얼마나 처방받아야 할지

머릿속으로 계산을 했다.

그러다 3월 시작되고 꽃가루가 날리면

봉사할 곳이 더 늘어나는데라는

생각이 갑자기 또 들었다.

 그만 둘 사람이 걱정할 필요가 있겠나싶어

이어지는 생각들을 끊어냈다.

난 지난 도쿄 올림픽 보란티어를 하면서

참 많은 사람들을 접할 수 있었다.

해외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보란티어를

하기 위해 지원해 온 사람들을 만났는데

봉사라는 이름이 얼마나 개인주의로

탈색되었는지 보란티어라는 탈만 쓰고

있는 자들이 너무 많아서 놀라기도하고

하루하루 그들을 지켜보면서 참

여러 갈래의 생각들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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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마다 맨손으로 화장실 변기를

반짝 빈짝 광이 나도록 하루도 빠짐없이

닦으시는 분이 있는 반면,

올 때마다 곱게 분장하고 앉아 눈앞에 

있는 일들은 못 본 척, 못 들은 척

수다삼매경에 빠져 있는 분도 있었다.

아마 그 때부터 보란티어라는  단어에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던 것 같다.

보란티어는 (volunteer) 사전적 의미로

자원하다, 봉사하다, 자발적인이란 뜻이 있다.

자원봉사(仕)는 한자로 풀면 자기 스스로

원하여서 받들고 섬긴다라는 뜻이다.

단순히 돕는 것이 아니라 받드는 것으로

다른 사람의 인격을 존중하면서 자발적으로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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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보란티어뿐만 아니라 그 어떠한

봉사활동에서도 목적과 개념이 흐려져

보란티어의 기본자세가 무엇인지

자원봉사의 목적이 무엇인지 확신이 없는

상태로 개인의 만족을 얻기 위한 활동으로

변질되어가는 사례를 몇 년째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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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냥 난, 그런 식으로 내 정성과

마음이 묻혀가는 게 싫어져 쉬고 싶었다.

좋은 마음으로, 좋은 생각으로

작게나마 누군가의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따스한 배려에서 시작되어야하는데

  그 기본들이 사라져가고 있는 것 같다.

봉사는 어느 누구나 가능하지만

결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그래서 나도 잠시 물러 설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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