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연말, 송년회가 잦았던 무렵, 깨달음은
이틀에 한벌꼴로 12시가 다 되어서 집에 들어왔다.
그럴 때마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렇게 내
노트북에 만엔을 끼워놓았다.
12시가 넘으면 30분당 5천엔씩 늘어난다는 걸
알고 있기에 12시 되기전 아슬아슬 들어오곤 한다.
어느날은 새 카렌더를, 어느날은 유전자 검사
찌라시와 함께 놓아두었다.
결혼하고 서로가 정해두었던 벌금 약속을
지금까지 별 불만없이 잘 이행하는 깨달음이
한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깨달음 회사 송년회가 있던 날,
귀가가 늦여 서둘러 잠자리에 들려고 했는데
나에게 줄게 있다며 봉투를 건넸다.
[ 왠 상여금? ]
[ 1년동안 고생했으니까 주는 거야 ]
상당히 두꺼워서 좀 의아하기도 했고 받아도 되는지
왠지 주춤거리게 되자 직원들에게 보너스를 주면서
나에게도 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 회사 일을 그렇게 많이 하지도 않았는데...]
[ 출장도 가고 고생했으니까 받아 ]
그렇게 생각지도 못한 꽤 큰 액수의
상여금 받고 기분이 좋았었다.
그리고 이번 주말, 깨달음은 지난해 정리를
다 못한 서류및 영수증을 처리를 늦게까지하다
내게 보여줄게 있다면 자격증서를 내밀었다.
CASBEE(Comprehensive Assessment System
for Built Environment Efficiency )라는
건축환경 종합성능평가 시스템 관리의 자격증이다.
일반인에겐 생소한 자격증인데 내용을 들여다보면
환경을 배려한 기획및 계획,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적은 건축의 구축, 환경보전을 고려한 시공방법
촉진, 특히 설계단계의 에너지 절약 설계 등
환경배려 설계의 추진및 구체적인 대책에 관한
관리를 할 수 있는 자격이라고 한다.
5년전에도 땄던 자격증을 올해도 변함없이
시험을 치고 땄다고 한다.
[ 나 잘 했지, 공부 안 했는데 땄어 ]
[ 대단하네]
[ 잘했으니까 나 맛있는 거 줘,..]
[ .................................. ]
[ 뭔 소리?]
[ 뭐 맛있는 거 없어? ]
냉장고에 넣어둔 딸기 케잌을 봤던 모양이다.
내가 먹으려고 샀던 건 아니고 신년인사를
하러 가서 회원에게 받았던 것을 넣어두었는데
깨달음이 어느샌가 봐 두었던 것 같다.
난 어릴적부터 단 것이나 주전부리를 즐기지
않았고 어른이 되어서도 거의 입에 대질 않는데
깨달음은 충치가 생길정도로 과자나
케잌을 엄청 좋아한다.
자기가 합격한 걸 알고 사 둔 거냐고
물어서 그냥 그렇다고 대답을 했더니
[ 고짓마루(거짓말)] 이라고 금방 알아차려서
화제를 바꿨다.
[ 깨달음, 신년부터 당신은 좋은 일이 생겼네 ]
[ 응 ]
[ 올해 내 운수가 좋은 가 봐 ]
[ 운세 같은 걸 봤어? ]
[ 아니, 근데 기분에 좋은 일이 많이 생길 것 같애 ]
케익을 맛있게 먹으며 자신감이 넘치는
목소리로 올 한 해의 목표를 얘기했다.
첫번째는 회사 운영이 지금처럼 별탈없이
잘 되는 것이고 새로 계약되는 사업들도
원활하게 진행 되었으면 한다는 것이였고
그렇게 일이 잘 풀리면 올해는 돈을 모아서
한국에 작은 아파트를 하나 사고 싶단다.
이전에 사 둔 아파트는 세를 주고 우리들이
한국에 갈 때마다 호텔처럼 사용할 수 있는
작은 평수의 오피스텔이 있었으면 한단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깨달음의 목표에
의아하면서도 괜시리 들떠서 본격적으로 장소는
어디로, 어느정도의 평수를 원하냐고 물었더니
나보고도 저축을 입빠이 해두란다.
지난번에 준 상여금도 쓰지 말고 저축해두고
절약해서 오피스텔을 매입할 만큼에 돈을
모아두란다.
[ 알았어, 근데 굳이 새 아파트가 필요할까?]
[ 지난번 아파트는 내 이름이 아니고
당신 명의로 되어 있잖아, 그니까 이번에는
내 이름으로 한국에 아파트가 하나 있으면 해서]
[ ............................ ]
명의 얘기를 꺼내는 걸 보니 깨달음이
은근 마음에 두었던 모양이다.
두 사람 명의로 바꿀 수 있다고 했더니 그건
그냥 냅두고 자기 이름으로 한 채 갖고 싶단다.
완전히 자신의 명의로 된 것을 원하는
깨달음의 본심이 그대로 보였다.
알았다고 당신하고 싶은대로 하라고 하자
올 해의 목표이며 희망사항이라면서 행여
못이루더라도 기회를 봐서 기어코 살 거라면서
코에 힘을 주며 얘기했다.
지금껏 깨달음에게서 물욕이 강하다거나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못 느꼈는데
알다가도 모르는 게 배우자의 속내이듯
오늘은 새로운 일면을 보는 것 같았다.
깨달음은 내가 말하지 않은 자신이 세운
노후계획이 분명 있는듯 싶다.
새 아파트를 산다는 희망은 이루기 힘들겠지만
그런 목표를 가지고 올 한해도 부지런히
여기저기 뛰어다닐 깨달음에게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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