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이곳은 월요일까지 3일연휴였다.
연휴 마지막날 , 아침도 거르고 집을 나선
깨달음에게서 후지산과 함께 샌드위치로
아침을 대신했다는 카톡이 왔다.
그렇게 오후까지 연락이 없다가 저녁이 되어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왔다.
한국도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이곳 일본은
연말에 송년회를 하듯이 신년에는 신년회를 한다.
오늘 깨달음이 나고야까지 출장을 간 것은
미팅과 신년회 참석을 겸한 이동이였다.
작년에 오픈한 호텔에서 무료숙박을 하게
되었다고 신년회에 참가하러 가는 길이라며
전화가 걸려왔는데 다음날 아침 일찍
시어머니 병원에 가 보겠다고 했다.
시간이 없을 줄 알았는데 나고야까지 와서보니
병원에 잠시 들려야 마음이 편할 것 같다고 했다.
알겠다고 시골에 내려가려면 저녁에 적당히
마시라고 당부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어머님이 지난주에 수술을 하셨다.
새벽에 화장실을 갔다가 미끄러져
고관절 부분에 금이 갔는데 그대로 두면
걸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주치의의
의견에 서방님이 서약을 하고 어머님께
설명을 해드렸다고 한다.
전신마취를 하고 인공관절을 넣는
고관절수술이였다. 90이 넘은 노인이
잘 버티실지 걱정이 앞서면서도
많은 생각들이 날 사로잡았다.
지난번 내가 갔을 때 어머님이
실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 화장실에서 넘어졌을때 그대로 하늘나라로
갔으면 모두가 편할텐데 안 죽고 이렇게
다리가 부러지기만 했어..,]
그리고 그날은 아버님도 죽는날만 기다리고 있는
두 늙은이가 연명치료는 안하겠다고 했는데
이렇게 뼈가 부러지면 안 고치고 내버려
둘 수도 없고 돈 들이고 수술을 해도
두 늙은이가 몇 년이나 산다고 수술을
해야하는지 모르겠다면서 자신들이 한심할
뿐이라고 복잡한 심경을 털어놓으셨다.
난 그런 말씀 마시라고만 할 뿐
그 부분에 대해 입을 다물었다.
다음날, 깨달음은 오전중에 버스를 타고
먼저 아버님이 계시는 요양원에 장어덮밥
도시락을 가져다 드리고 바로 어머니
병원으로 이동중이라고 했다.
걱정된 마음에 잠깐 통화를 했는데 생각보다
목소리는 밝았다.
어머님은 통증도 거의 없고 잠도 잘 주무시고
병원에서 나오는 식사가 요양원보다 훨씬
맛있다며 깨달음이 사 온
장어덮밥도 마다하셨단다.
그리고 5시간 후 집으로 돌아온 깨달음 얼굴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사진 찍는 걸 거부하는 걸 보니 집에 오는 길이
길게 느껴졌다는 감이 왔다.
적막할만큼 고요함 속에서 뉴스소리가 허공을
떠돌고, 저녁을 마치고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 깨달음..피곤했어? ]
[ 응,,정신적으로,,,]
어머니병원을 나와 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어릴적부터 다녔던 집근처
신사에 가서 기도를 하고 나오는데 불연듯,
어릴적 자신이 뛰어놀았던 기억들과
부모님과 함께 즐겼던 축제도 떠오르고
타임머신을 탄듯 옛기억들이 선명해지더란다.
[ 어머님 보고 나니까 많이 걱정 됐어?
그럼, 아버님이라도 우리가 모실까? ]
[ 아니, 그런 생각은 전혀 없다고 했잖아 ]
3년전, 시아버지가 구급차에 실려 입원하셨을 때
난 깨달음에게 장남으로서 부모님을 모실 생각이
있는지 솔직한 심정을 물은 적이 있었다.
그 때, 깨달음은 오늘처럼 단칼에 없다고 했다.
그 이유는 부모님을 모시게 될 경우
부모님도 그리고 자기도 나도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없게 된다고,
모두가 불행한 길이라면서 연로한 부모를
모시는 일은 모시는 그 사람의 인생도 함께
부모와 노화되어 가는 거라고 했다.
혹, 어쩔 수 없이 모셔야하는 선택밖에 없다면
같은 집에서가 아닌 가까운 곳에 별도로
집을 얻어 케어를 하는 게 부모는 부모대로
자식은 자식대로 갈등을 줄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했다.
단호하다고 할만큼 자신의 생각이 확고한
깨달음 말이 참 인상적이였던 기억이 있다.
오늘 깨달음 머릿속을 복잡하게 했던 건
늘어만 가는 장수노인들을 앞으로 자식들은
어떻게 케어를 해야만이 최상인지
그런 여러가지 생각들이였다고 한다.
언젠가 내가 남의 손을 빌려서 장수를 하게 되고
의술과 약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장수는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고 그 때는 그 말이 참 냉정하게
느껴졌는데 잘 생각해보니 그 말이
맞는 것도 같다는 생각으로 기울었단다.
느리고 둔하고 서툴더라도 자신 스스로가 거동을
하면서 자신의 남은 여생을 즐기며
장수하는 노인들과 달리, 그냥 죽음을 기다리는
죽지 않아서 살아가는 장수는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곰곰히 생각했다는 깨달음.
[ 그래도 살아계시는 것에 감사하고,
살아계실 때 잘 해야하는 게 자식으로서
해야할 의무이며 효도라는 걸 알기 때문에
건강하시라고 신사에서 기도를 했는데
부모님들도 나처럼 답답한 심정일 것 같아서
가슴이 아팠어..]
말끝을 흐리는 것을 보니 상당히 많은
생각들을 한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장수노인들에게 삶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의문을 갖는 것 자체가 어찌보면 실례였다는 걸
깨달음도 알았던 것 같다.
의미를 부여할 필요없이 그냥 살아계심에
감사하고 돌아가시는 날까지 편하게 지내셨으면
하는 마음과 돌아가시고 나서 땅을 치고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들은 부모님이 살아계시는 동안
때론 이성적이고 냉정한 논리가 앞설 때도
있겠지만 자식으로서 최선을 다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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