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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남편이 일본인임을 재확인할 때

by 일본의 케이 2019. 1. 3.

1월1일, 일찍 일어난 깨달음이 주방에서

온 재료들을 꺼내놓고 오죠니를 

만들고 있었다.

오죠니는 일본의 떡국과 같은 것으로

새해에 먹는 음식이다.

결혼하고 8년동안 항상 설날이면 나는 떡국을

깨달음은 오죠니를 만들어 두 그릇을

올려놓고 먹는게 우리집의 관례처럼 되버렸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깨달음은 오죠니를 난 한국 떡국을 만들어 

 밥상을 차린다.

 [ 깨달음, 오세치 요리는 다 담았어? ]

[ 응, 내가 찾아보니까 쥬우바코(重箱)보다 훨씬

괜찮은 찬합을 발견해서 거기에 넣었어 ]

오세치 역시도 난 거의 먹지 않기 때문에

깨달음이 썰고 담고, 장식까지 모두 한다.

오세치(おせち) 요리는 일본에서 정원 1월 1일에

 먹는 음식이다. 원래는 중국에서 전래된 풍습으로

명절에 행해지는 연회자리에서

행해지는 진수성찬을 뜻한다.

신에게 올리거나 손님에게 드리는 

오세치쿠가 오세치라는 준말이 되어서

정월요리를 의미하게 되었다.


오세치 요리로는 주로 청어, 검정콩조림,

 다시마말이, 멸치조림, 찐새우,연근 등으로

 주우바코(重箱)라는 옻칠을 한 찬합에

 보기 좋게 담아 내놓는다.

또한, 음식마다 뜻이 담겨져 있는데 검은콩과 

새우는 장수와 건강, 특히 검은 콩은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간다는 뜻도 있다.

멸치는 풍작을, 연근은 지혜, 밤은 재물과

 승리를 뜻하며 다시마는 기쁨, 청어알은

 자손번영의 의미를 갖고 분홍색과 흰색어묵은 

축하의 홍백을 뜻하고 있다.

또한, 이 오세치요리를 먹을 때는 끝이 둥글고 

흰색의 젓가락 이와이바시祝箸)를 사용한다.


옛날에는 설 2,3일전부터 음식을 장만하고

새해가 되면 친척이나 손님들과 함께 나눠 먹곤

 했지만 핵가족화 되고 모든 게 간소화 되다보니

 오세치를 집에서 만들지 않고 백화점이나

전문업체에 주문하는 가정이 늘어나고

아예 해외여행을 떠나거나 외식으로 연휴를

보내는 가족들도 많아졌다.

우리는 특히 둘뿐인 것도 있고 내가 거의 

달고 짠 오세치요리를 먹지 않기 때문에

아주 소량과 깨달음이 좋아하는 것들만

 간소하게 준비해 형식만 갖추는 정도이다.

그렇게 우리집 새해 첫날 밥상이 차려졌는데

깨달음이 멋진 찬합이라고 말했던 것은 

한국에서 가져온 구절판이였다.

[ 여기에 넣으니까 훨씬 고급스럽지 않아? ]

[ 응,,잘했어 ]

[ 술은 어딨어? ]

[ 없어,,,]

매해 그러했듯이 새해맞이를 축하하는 의미로

  금가루가 들어가 있는 정종을 마셔야 된다고 했던

 깨달음의 얘기를 귀담아 듣지 않았던 탓에

  준비해 둔 술이 없었다.

하지만, 깨달음이 술박스에서 어떻게 찾았는지

참이슬을 꺼내와서는 우리 부부에게는 참이슬이

어울린다며 내 잔을 채워주었다.

[ 근데,아침부터 술 마시는게 영 그렇네 ]

[ 아니야,,이것은 술이라 생각하지 말고 그냥

음료수라고 생각해, 신년 축하 건배니까 

한잔씩만 하면 돼 ]

[ 꼭 마셔야 돼? ]

 [ 응,1년간의 잡귀, 악한 기운을 털어내고 

장수를 기원하기 위해서 마시는 거야]

[ 알았어...]


술을 한 잔씩 하고 식사를 하다가 다시 

자기 잔에 술을 채우면서 병을 들어 찬찬히

라벨을 보다가 예전 참이슬보다 훨씬 부드럽다며 

후레쉬여서 정종같은 맛이 나는 것 같다면서

 깨달음 혼자서 반병을 마셨다.

식사를 끝내고 둘이서 뭘 할까 멀뚱멀뚱 쳐다보다가

쇼핑이라도 하러 가자고 집을 나섰다.


쇼핑센터는 어딜가나 명절분위기가 가득했다.

세일도 많이하고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이

두 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 즐거워하는

 모습이 정겹게 보였다. 깨달음 신발과 

쉐터를 하나 사고 점심겸 저녁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서방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머님이 어젯밤 요양원 화장실에서

넘어져 골절상을 입어서 오늘 병원에 모시고 

갔는데 수술을 해야될 것 같다는 내용이였다.

그렇지 않아도 내일 시댁에 갈 예정이였는데 

갑자기 골절 소식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디가 얼마나 다치셨냐고,

 걸을 수 없으시냐고,

수술은 얼마나 걸리냐고 계속해서 물었지만

깨달음은 묵묵히 짐가방을 싸기 시작했다.

[ 깨달음, 어느 정도냐고 묻잖아 ]

[ 괜찮아,,동생이 옆에 있으니까, 어차피 

우리도 내일 가면 알게 되겠지.. ] 

[ 어떻게 그렇게 차분할 수 있어? ]

[ 그렇게 큰 골절도 아닌 것 같고, 서두른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잖아 ]

깨달음은 다른 면에서는 참 오버스러울 정도로

정도 많고 오지랖도 넓은데 자신의

부모님에게는 참 많이 냉철하다. 

여기서 발을 동동거린다고 해결되는 건 없지만

너무도 남의 일처럼 차분한 것이 

낯설게까지 느껴졌다.

요양원에 가신다 할 때도 아주 쿨하게 

보내드렸고 어머님이 치매증상이 시작됐을 때도 

노인들에게는 피해가기 힘든

 질환이라고 넘어갔다.

혹 연명치료를 해야할 상황이 온다고 해도 

하지 않는 게 두 분을 편하게 떠나보내는 

방법이라고 덤덤히 얘기도 했었다. 


어떤 일이 닥쳐도 감정에 휘말리지 않고

냉정하고 침착하게 대응하는 모습이

멋지게 보일 때도 있지만 자신의 부모 일인데

동요하지 않는 게 한편으로는 차갑게만 보인다. 

내가 걱정이 별로 안되냐고 물었더니

상처가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르고 

동생 얘기로는 그렇게 긴박한 것도 아닌 것

같아서 내일 가보면 알 게 될 텐데

지금부터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다면서

짐가방을 다시 챙기기 시작했다.

자기 부모를 너무 챙기는 것도 썩 좋아보이지

않겠지만 저렇게까지 침착할 수 있는지

물론 걱정이야 되겠지만 전혀 동요하거나

흔들림없는 깨달음을 대할 때마다

 알다가도 모르겠다.

 언제나처럼 깨달음의 따뜻하고 정이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으련만 난 자꾸만

 거리감이 느껴진다. 내 부모, 남의 부모가 

아닌 현실을 그대로 직시하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깨달음의

정신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아무튼, 어머님이 괜찮으셔야 할텐데

내 마음은 벌써 시골로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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