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1시를 훌쩍 넘긴 시간 우린 한국에서 돌아왔다.
거실의 인터폰에서 택배함에 소포가 들어있다는
빨간 램프가 깜빡이고 있었다.
모두 시어머니께서 보내주신 것이였다.
첫 번째 소포에는 접시들과 수건, 쓰레기 봉투, 반찬통, 소스,
두번째 소포에는 술병과 술잔, 그릇, 양말, 설탕,
손수건, 랩, 호일, 티슈, 행주 등이 들어 있었다.
내가 어머니 쓰시라고 박스에 분리해 두었던
것들도 몇 개 포함되어 있었다.
2주전, 어머니 댁을 청소하면서
참 많은 것들을 버렸다.
솔직히 쓸만한 것들도 있었지만
2,30년 지나다보니 곰팡이가 피거나 변색된 것들이 많았다.
그래도 너무 아깝다 싶은 것들은
재활용 박스에 넣어 리사이클숍에 보낼 수 있도록 했고
어머님이 사용했으면 하는 것들은 따로 박스에 담아 드렸었다.
[ 어머니,, 케이에요. 잘 계시죠?
무릎은 어떠세요? 아버님도 별 일 없으시죠? ]
[ 응,,, 오늘도 병원에 다녀와서 괜찮고
아버지는 물리치료를 열심히 받고 계시더라.
소포 도착했나보구나..]
[ 네,,,어머니,,뭘 이렇게 많이 보내셨어요? ]
[ 지난번에 케이짱이 너무 일을 많이 해줬는데 고마워서
뭔가 마음을 보내고 싶어서,,,
그런 것 밖에 못 보내서 미안하구나...]
[ 미안해 하지 마세요..그러면 제가 더 죄송하잖아요..
어머니 쓰시라고 내 놓은 것들인데 왜 보내셨어요... ]
[ 늙은이가 쓰는 것보다는 젊은 사람들이 써야
그릇들도 좋아할 거야,,,, 이젠 우리들(시부모님)에겐
필요한 게 아무것도 없단다...
안방 장농 속에 더 좋은 게 있으니까
다음에 정리할 때는 그것도 보내주마,,,
가지고 있어봐야 아무소용 없을 것 같아서
기모노랑 옛 물건들을 다 처분할 생각이다...]
[ 기모노도 처분하시게요? ]
[ 응,, 시집 올 때 해 왔던 것부터 다 정리를 할려고,,,
윗 동네에 감정사 같은 사람이 있어...
그 사람이 직접 집에 와서 물건들 값을 책정해 주는데
그 사람한테 부탁하려고,,,
케이짱에게 주고 싶은 것만 몇 개 빼놓고 다 처분할 생각이란다]
[ 그냥 놔 두셔도 괜찮을 것 같은데...]
(일본 야후에서 퍼 온 이미지)
[ 아니야,,,정신이 멀쩡할 때, 해 둬야 할 것 같아서...
그리고 케이짱에게 뭔가 보탬이 되고 싶어서 그래...
[ 어머니,,,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 아, 그리고 친정어머님 팔순은 잘 치뤘어? 한국도 추웠지?]
[ 아니요,,그렇게 춥지는 않았구요,,
염려해주신 덕분에 잘 치뤘어요..
[ 내가 한국어를 할 줄 알면 축하드린다고
직접 전화라도 드리고 싶었는데....
혼자 계시니 많이 외로울실 거야,,,
케이짱이 자주 찾아 뵙고 그래..]
[ 네,,, 그럴게요...]
[ 케이짱,,, 이번에 케이짱이 가고 나서
혼자서 많은 걸 생각해 봤는데 깨달음이랑 얘기해서
한국에 가서 살아도 되지 않을까 싶었어..
어머니도 혼자이시니까...
[ ........................ ]
너무 뜻밖에 말씀을 하셔서 그냥 대답을 못하고 듣고 있었다.
[ 우리들이야 곧 하늘로 가겠지만
어머님은 아직도 건강하시니까 옆에서
돌 봐 드리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딸이 이렇게 멀리 떨어져 살면 신경이 많이 쓰이실 거야...
그니까,,혹 우리들(시부모님)은 신경 쓰지말고
케이짱 마음이 가는대로 했으면 해..
무슨 말인지 알겠지?
아,,근데 우리 아들을 장모님이 맘에 들어하실지 모르겠네...]
어머님이 이렇게 속마음을 보여주신 적은 처음이였다.
원래 말씀도 없으시고, 아주 특별한 일 아니면
전화도 하지 않는 어머님이 오늘은 참 많은 속내를 보여주셨다.
당신들 걱정하느라 내가 혹 한국으로의 귀국을
망설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으셨던 모양이다.
작년에 깨달음이 어머님 앞에서
자신의 노후생활은 [한국]에서 보낼 거라는 얘기를
잠깐 꺼냈는데 그걸 기억하셨던 건지,,,
어머님 목소리엔 뭔가를 체념하신 듯한 허탈함과
외로움이 베어 있었다.
처분하고 정리한다는 말씀을 많이 하시는 것 보니
아버님을 병원에 두고 혼자 계시면서
이것저것 생각들이 많으셨던 것 같다.
혹, 한국에서 산다면 아들이 장모님께 사랑 받고
잘 살지도 걱정하시는것 보면....
전화를 끊기 전에 그런 말씀 마시라고
아버님, 어머님 모두 건강하고 오래오래 사시도록
매일 기도하겠다고 했더니
살만큼 살았으니 안 그래도 된다고 하셨다.
몇 년후면 90을 맞이하시는 우리 어머니...
언제나 며느리가 아닌 그냥 자신과 같은 입장의
여성으로 날 대해주시는 우리 어머니..
말씀만으로도, 마음만으로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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