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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늘 미안해 하시는 우리 시아버지

by 일본의 케이 2016.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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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전 11시 30분, 시댁에 도착한 우린 가방을 들고

바로 아버님이 계시는 병원으로 향했다.

서방님이 어머님을 모시고 먼저 와 계시고

아버님이 좋아하는 초코케익도 준비가 되어 있다는

문자를 신칸센 안에서 받았기 때문이였다.

병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아버님은 물리치료 중이셨고 

우린 아버님이 퇴원 후, 건강관리에 관한 얘기를 나누며

생신선물과 케익을 준비했다.

약 20분후, 아버님이 들어오시고

 우리는 입을 모아 생일 축하송을 불러 드렸다.


 

[ 아버님, 생신 축하드려요~,

내년, 내후년에도 이렇게 축하파티 할 수 있게

계속해서 건강하셔야해요~]

[ 아,,,,고마워,,케이짱..

케이짱 덕분에 이렇게 생일날까지 버틸 수 있었는데

앞으로 얼마나 살지 모르겠어..]

[아버님, 절대로 마음 약한 소리 하시면 안 돼요

담당의가 아주 좋아졌다고 하셨으니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 고맙고 미안하고,,...모두에게,,미안하구나,,

또 이렇게 먼 길 오게해서,,,,, ]

아버님이 촛불을 끄고, 케익 표면에 묻은 흰 가루를 찍어

맛만 보시며 눈시울이 붉어지셨다.

[ 너희들에게 너무 고맙고 미안하다,,,

자식들한테 민폐를 끼쳐서 안 되는데

뜻대로 되질 않는구나,,,]라고 하시자

깨달음이 좋아하는 초코케익 빨리 먹고 싶으면

그런 소리하지 말고 어서 건강해지라고 하며

준비한 선물을 드렸다.

화제를 바꾸기 위해 케익을 치우고 서방님이 거칠게

자라있는 수염을 조심히 깍아드렸다.

면도기로 매일 깍아도 미쳐 깍지 못한 부분들이 많다면서

역시 누군가가 이렇게 매일 꼼꼼하게 돌보아 드려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된다면서 푸념처럼 하신 서방님 말씀을 끝으로

병실안은 한동안 전동면도기 소리만이 울려퍼졌다.

 

면도가 끝나고 우린 아버님께 지금의 몸상태와

이후의 계획들을 말씀 드렸다.

아버님 건강상태는 거의 정상화 된 상태지만

퇴원은 2주후쯤에나 가능할 거라는 것과

근육이 약해져 걷는게 아직도 불편함이 있어

퇴원후 물리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노인홈에 들어가

몇 달간 생활을 해야할 거라는 설명을 드리자

아버님이 집으로 바로 가면 안 되냐고

집에 가고 싶다고 설명하고 있는 아들들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셨다. 

[ ..................... ]

노인홈에 들어가는 이유는 건강한 몸을 만들기 위해 가는 거라고

걷는 게 문제 없으면 바로 집에서 생활 할 수 있으니까

걱정말라고 서방님이 좀 더 상세히 말씀드리는데도

작은 목소리로 [집에 가고 싶은데...]라고 하셨다.

두 아들이 걱정했던 부분이였기에 아버님을 설득하는데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거라 생각을 했고 서두르지 말고

아버님 마음을 움직이게 하자고 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우린 홈센터에 들러

 필요한 물건들을 사고 바로 청소에 들어갔다.

 

두 형제는 옷장을 옮기고, 환자용 침대를 안방에 넣고,

헌 서랍장은 분해를 하고,,,새로 산 서랍장을 넣고,,,

난 주방과 화장실을 정신없이 청소를 하고 있는데

예약한 식당에서 확인 전화가 왔다.

그래서 모두들 일손을 멈추고 옷을 갈아 입은 후

다카시형님 댁으로 갔다.

서방님이 자주 와서 시부모님을 봐 주시기는 하지만

그래도 바로 앞에 살고 있는 다카시형님( 어머님 조카)이

여러면으로 많이 보살펴 주심에 감사하는 마음에서

오늘 같이 식사대접을 하기로 한 것이다. 

예약해 둔 샤브샤프 가게에 가는길에

깨달음이 어머님 손을 잡아 드리며

아버지가 무사히 생일을 맞이해서 다행이라고

앞으로도  엄마가 고생이 많을 것 같아

걱정이라며 혼잣말처럼 얘길 했다.

 

자리에 앉자 다카시 형님이 아버님 생신파티 했냐고 물으며

 생일까지 못 버틸 줄 알았다면서

첫 날 응급실에 실려 갔을 때 상황을

리얼하게 말씀해 주셨다. 많이 위험했었다고,,,

아들이 아닌 자기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데

많이 안타깝더라고,,,서방님이 서둘러 오시긴 했지만

그 날밤 많이 심각했다면서,,,,,그래도 이렇게

생일까지 잘 버티셨던 건 아버님의 의지가

강한 거라고,,,, 퇴원 후에 관한 얘기도 다시 나누며

아버님도 문제지만 무릎 관절이 안 좋은

어머님도 간병이 필요한데 어찌할 것인지에 대해 얘기했다.

http://keijapan.tistory.com/806

(전편 글 -시아버지 병문안을 다녀오며...)

 

그런 얘기들이 오가는 동안 난 자매들에게

시부모님 건강 상태를 얘기하다가 나도 모르게 울컥해졌다.

아버님 사진을 보냈을때 우리 아빠를 연상케 한다는 언니말에

애써 참았던 눈물샘이 또 자극을 받았다.

그랬다..아버님 손을 잡고 생신 축하드린다고 했을때

아버님 손이 영락없이 우리 아빠처럼 건조하게 말라 있었고

날 쳐다보시는 눈빛이 너무도 애절하고 간절해서

병실에 있는 내내 가슴이 먹먹해었다.

병실을 나오며 아버님을 가만히 안아 드렸을 때

[ 케이짱,,,고맙고,,,정말 미안하다,,]라고 나지막히

말씀해 주셨을 때도 눈물을 보여선 안 될 것 같아

꾸욱 참았었다.

늘 나를 볼 때마다 뭐가 그리도 미안한지

[ 미안하다, 미안하다 ]하시는 우리 아버님....

깨달음이 훌쩍거리는 날 힐끔 쳐다보더니 못 본척 해주었다. 

그날 밤, 다카시형님은 얼큰하게 술이 취하셨고

우린 집으로 돌아와 초코케익을 어머님과 나눠 먹으며

내가 찍은 사진과 아버님 젊었을 때 사진들을

 펼쳐놓고 늦은 시간까지 많은 얘길 나눴고

난 아버님께 다시 한 번 마음으로 축하인사를 드렸다.

[ 아버님, 생신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건강하세요~

꼭, 꼭 우리 아빠 몫까지 오래 오래 사셔야해요~

제가 효도할 수 있게....

그리고 아버님,,,제가 너무 죄송해요...]

 자식으로, 며느리로 뭘 해드려야 진정한 효도인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질 못한 난 

가슴만 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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