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오후 시간이어서인지
커피숍은 한가로웠다.
점심을 먹지 못해, 일단 샌드위치를 주문하고
받아 들고 왔는데 입맛이 별로 없다.
깨달음은 지난주부터 직원의 실수로 인해
발생한 트러블을 해결하느라 신경이
곤두서 있고, 관계자를 직접 찾아가
설명회를 열고, 만나주지 않겠다는 분들을
설득하기 위해 바삐 움직이고 있다.
오전에 깨달음과 같이 움직이다
오후엔 내 일을 좀 보고
난 혼자 커피숍에 앉아 있다.
오늘은 책도 가지고 오질 않아 그냥 멍하니
식어가는 코코아를 바라 볼뿐
마시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근처 책방이 있는지 검색을 하려다 그냥 관뒀다.
책도 들어올 것 같지 않고 그냥
아무 생각을 안 하고 싶은데
친구가 보낸 메일이 약간 신경이 쓰인다.
내 쪽에서 연락을 두절했던 친구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소식을 전하지 않은지
횟수로 5년이 되어가고 있다.
코로나 시대에 잘 있는지 걱정되고 궁금해서
잘 있는지 연락을 해 보는 거라
첫 문장은 그렇게 시작되었지만
나를 원망하는 듯한
뉘앙스가 담긴 내용들이 섞여 있었다.
자길 친구로 생각하지 않았냐고,
8년전에 있었던 채무관계를 언급하며
자기 입장이 어떠했는지 조금 상세히
그때 상황도 적혀 있었다.
싸우거나 말다툼이 있진 않았다.
그냥 그녀를 더 이상 볼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깊어져서였다.
그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놀라울 정도로
싸늘히 식어가는 내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녀와 연락을 서서히 끊으면서도
아프지 않았던 것 같다.
20년 넘게 친구라는 이름으로 지냈지만
사람 마음이 식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2년전쯤 그녀의 남편에게서 메일이
왔을 때도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아직도 그녀는 8년전 채무관계로
내가 돌아섰다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그게 아니라고 그 때의 내 마음과 생각을
보여줬는데도 그녀는 여전히 그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다시 한 번 설명을 해야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난 하지 않았다.
20년이 넘도록 같이 웃고 울며 함께
속내를 털어놓고 지낸 시간을 되돌아보았다.
하지만, 더 이상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힘들 거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친구끼리 미래지향적일 필요까진 없겠지만
이젠 그러고 싶어 졌다. 내가...
친구 사이에 나누는 정신적 유대감을
더 이상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면
그게 더 정확한 이유인지 모르겠다..
나의 기쁨을 배로 하고 슬픔을 반으로 하는 게
친구라지만 나 역시 그렇게 하지 못했고
그녀 역시 그러지 못했다.
인생이 타이밍인 것처럼 인간관계도 그랬다.
만남과 헤어짐, 용서와 화해,
이해와 오해를 하는 것도 순간이며,
그 찰나에 결정되고 마는 타이밍..
참된 우정은 뒤에서나 앞에서나 같은
모습을 한다고 하지만 우린 그러지 못했다.
친구를 갖는다는 것은 또 하나의 인생을
갖는 것이다.
사랑도 일방적일 수 없듯이 우정도
일방적이면 오래 버틸 수 없음을
깨달았다.
궁핍과 곤란한 상태에 처해보면
친구의 진가를 알아볼 수 있다.
친구를 돕기 위해 우산을 들어주는 게 아닌
함께 비를 맞았어야 하는 게 정답이였는지
지금도 의문이지만
그리움에, 보고픔에 꿈틀거렸던 내 심장이
이젠 더 이상 뛰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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