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 상, PCR검사했어? ]
[ 그렇지 않아도 하려고 했는데 검사 키트가
없어서 리더에게 말해뒀어요 ]
[ 언제 준비된다고 그래? ]
[ 오후에나 올려 보내겠다고 하네요 ]
[ 코로나가 언제쯤이나 사라질까...]
페럴림픽 보란티어로 활동을 한지
일주일, 오늘이 마지막 날이다.
어제부터 밖은 비가 추적추적 오고
기온도 뚝 떨어져 다들 점퍼를 꺼내 입었다.
매일 같은 얼굴의 보란티어를 볼 수 없어
새로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며
업무를 공유하며 보냈다.
내가 맡았던 사무쪽은 60대의 주부가
과반수를 차지해서 젊은 축에 속한 나는
컴퓨터를 다루는 일을 많이 했다.
어제부터 비가 내리는 바람에 모두가 사무실에서만
앉아 서류를 정리하거나 체크인을 돕기도 했다.
날이 좋았던 날은 선수촌 주변 청소를 하기도 하고
알코올을 들고 다니며 테이블, 의자, 서류함을
깨끗이 소독했고 또 어떤 날은
메인경기장으로 옮겨 배송된 물건들을
각 부서에 분배하기도 했다.
내가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처음에 배정되었던
일은 할 수 없게 되었고 지금은 통역을 맡았지만
의외로 통역할 일이 별로 없어서
모두가 함께 청소를 하고,
소독을 하며 물건을 나르는 일을 했다.
[ 정 상, 다리 통증은 어때?
오늘 너무 움직이는 거 아니야? ]
[ 아니, 괜찮아요,, 조심하면서 하고 있어요 ]
[ 너무 무리하지 마, 보란티어는 무리해가면서
하는 게 아니니까 ]
[ 네...]
오늘도 내 골절된 다리를 염려해주신 분은
쿠로타니 상(黒谷 )이었다.
보란티어 첫날, 내가 일본인인 줄 알았다면서
어디서 일본어를 배웠냐고 물으셨고
유학 와서 바로 일본어학원을 다녔다고 하자
그때부터 자신의 얘길 해주셨다.
그녀는 치바(千葉)출신으로 중학교 교사로
정년퇴직을 한 뒤,
일본어 어학원 선생님을 역임하셨다.
[ 지금은 그만뒀지만 아직도 난민이나
NPO단체에서 일본어가 필요한 외국인에게
가르치는 일은 하고 있어 ]
[ 근데...왜 그만두셨어요? ]
좀 머뭇거리시다 쿠로타니 상이 자기 속내를
얘기해도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 주라면서
5년이상 해왔던 어학원 시절을 말해주셨다.
일본인 학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너무 달라서 거기서 오는 괴리감이
좀 있었고 무엇보다 유학생들에게서
배우려고 하는 자세가 별로 보이지 않아서
그냥 그만뒀다고 한다.
[ 일본어 능력시험에 맞춰 문법을 가르치고
외우게 하고 그러다 보니까 말하는 연습은
제대로 안 되고 실제로 일본에서 생활하는데
필요한 일상회화는 뒷전이 되버리고,,,,
도대체 무얼 가르치는가 싶기도 하고,,,
이런 말 하긴 좀 그런데..특히,,00인들은
거의 수업에 들어와도 공부를 안 하고,
학업에 대한 의지도 약했고 그냥 일본에
체류하기 위해 비자를 받아야하니까
어쩔 수없이 어학원에 다니는 학생도 꽤나 있고,
그러다보니 나도 가르치고 싶은 욕구가
점점 떨어지고,,그래서 그만뒀어 ]
한국 유학생도 있었냐고 물었다.
[ 응, 있었는데 우리 학교는 시골이어서인지
한국인보다 00인들이 80%를 차지했는데
한국인 유학생들은 참 많이 달랐어,
한국은 어릴 적부터 교육열이 높아서인지
공부하는 자세도 바르고 무엇보다 잘하고
싶어 하는 욕심이 보인다고나 할까,
참 열심히들 했어 ]
쿠로타니 상은 한국인을 포함, 외국인을
접한 게 어학원이 처음이었고 각 나라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만 가지고 있었는데
막상 여러 국적의 학생들을 만나보니
그 색깔이 확연히 다른 모습들을 하고
있었다며 숙제를 꼬박꼬박 제일 잘 해오는 것도
한국인 학생들이었고 선생님 말을 아주 잘
들었던 것도 한국인 학생들이었다고 한다.
[ 뭐랄까,, 그,, 예의가 바른데 기억에 남은 게
숙제를 제출할 때, 꼭 두 손으로 주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어. 그리고 점심시간에
식사 하는 걸 한 번 봤는데 김밥 같은 것을
사 와서 책상에 하나 올려놓고 서로의 입에
넣어주면서 셰어하는 모습을 보고
참 사이가 좋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 ]
그리고 호기심은 많은데 부끄러움이 많아서인지
늘 선생님 앞에 와서는 할 말을 못 하고
돌아가는 학생이 있었다며 시험을 보면
좋은 성적인데 입이 안 트여서 일본어가
안 나와 답답해했던 학생도 기억한다고 했다.
https://keijapan.tistory.com/782
지금은 어느 어학원이나 중국인이 60%를 차지하고
베트남과 인도, 방글라데시가 나머지라고 했다.
20년 전, 내가 다녔던 어학원은 한국인 50%,
중국인 30%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미국,
영국, 캐나다가 20% 정도였다고 하자
한국에서는 일본으로 유학 오기 전에
일본어 공부를 다들 하고 오는 거냐고
모두가 금방 잘 따라오더라면서
한국인만의 비법이 있는 거냐고 물으셨다.
[ 아마 문법이 같아서 처음 접근하기가
편하니까 혼자서도 아주 기본적인 것들은
학습을 하다보니 빠른 거 같아요 ]
[ 그래, 문법이 같다는 소리는 나도 들었어..
근데.. 아무튼 영리한 것도 있고, 일본과 닮은
부분이 있어서인지 이해도가 높았어,
물론 노력을 많이 하는 게 가장 큰 장점이였고 ]
다시 선생님을 하고 싶지 않냐고 물었더니
한국인 유학생이 많은 도쿄에서 자기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다시 해 볼 의향은 있다고 하신다.
https://keijapan.tistory.com/1084
https://keijapan.tistory.com/910
[ 다음에 도쿄에 놀러가면 그 때 정 상이랑
또 이런저런 얘기 하고 싶네 ]
[ 네..언제든지 연락주세요 ]
마지막날이여서인지 왠지 쓸쓸함이 맴돌았지만
서로의 연락처를 교환하고 모두에게
감사의 인사를 나눴다.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쿠로타니 상과
나눴던 대화를 다시 상기시키며
내 어학원 시절을 잠시 떠올려봤다.
그 당시엔 크게 공부가 목적인 그룹과
노는 걸 즐기는 그룹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요즘은 모두가 공부하는 그룹에 속해있는 건지
어학원 선생님으로부터
한국인 칭찬을 받으니 기분이 좋아진다.
부모, 형제 떠나와 낯선 땅에서 공부를 한다는 자체가
그리 쉬운 게 아닌데 모두가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선배 유학생으로서
왠지 든든한 마음에 응원하고 싶어진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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