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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우리 시어머니를 존경합니다.

by 일본의 케이 2017.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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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우유로 간단한 아침을 먹던 깨달음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꺼냈다.

[ 어젯밤 꿈에 큰아버지가 나왔어..

 30년전에 돌아가신 분이 갑자기.... ]

[ 시골 집에? ]

[ 응, 동생이랑 같이 무슨 일이시냐고 물으면서

 뭔가 음식을 드려야 할 것 같아 주방을 

갔다가, 다시 방에 들어와서 얘기를 나눴어..]

[ 무슨 얘기? ]

[ 모르겠어, 무슨 얘길 했는지.기억이 안 나.]

[ 꿈에서 같이 식사를 했어? ]

[ 아니,,뭔가 식사를 대접하면 아버지랑

어머니, 둘 중에 한명을 데리고 갈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아무것도 안 드렸어...]

[ 서방님이랑 당신은 어릴적 모습이였어? ]

[ 음,,아주 젊은,,20대 정도였던 것 같애..

근데 왜 갑자기 큰 아버지가 나왔을까?

혹,,아버지를 데리고 가실려고 왔을까?]

[ 왜 그런 생각을 해?]

[ 잠을 깼는데 그냥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어..]

[ 지난주, 거래처 사장님 장례식 다녀와서 

기분이 좀 더 그런거 아니야?]

[ 그럴지도 모르지...]

항상 장난스럽던 깨달음 표정이 사뭇 진지했다.

이런 대화를 오늘 아침에 했었다.

그런데 저녁 10시가 넘은 시간, 시아버님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기에 찍힌 번호를 보고 아버지라며 받는 

깨달음의 한마디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 뭐? 엄마가 못 일어나신다고? 왜?]

주책없이 뛰기 시작하는 심장을 안정시키며

통화내용이 뭔지 귀를 기울렸다.

아마 깨달음도 심장이 뛰였을 것이다.


연세를 드신 탓도 있지만, 원래 무릎관절이 

좋지 않아 걷는게 불편하셨던 어머니. 

외출시에는 지팡이나 쇼핑바구니를 밀고

다니셨는데 이젠 그럴 기력마져도 

다  떨어지신 걸까,,

이번달 초에 찾아 뵙을 때만해도

아버님이 틀어놓은 에어콘 바람이 차갑다고

가을 옷을 입고 계시면서도 아버님 방석을 

새로 만드신다며 바느실을 부지런히 하셨었다.


그런데, 며칠전 감기 기운에 설사를 하신 뒤로

자리에서 일어나는 걸 힘들어하시더니 급기야 

오늘 밤에는 전혀 서질 못해 기어다니신다고

 아무래도 병원에 모셔야할 것 같아

아버님이 전화를 하신 것이라고 한다.

 통화를 끝낸 깨달음이 바로 남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이번 기회에 역시 노인홈에 

모시는 게나을 것 같은데 그렇게 된다면 

홀로 남은 아버지는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꽤 긴시간 의견교환을 했다.  


통화를 끝낸 깨달음이 자기방에서 지난번 

아버님을 잠시 모셨던 노인홈 팜플렛을 꺼내 와 

한 장, 한 장 살피고, 케어매니저 전화번호를

자기 핸드폰에 입력시켰다.

난, 옆에서 괜찮을 거라는 말도 못 꺼내고

그저 조용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아들 둘을 두신 우리 어머님은

장남이였던 깨달음을 무척이나 챙기셔서

서방님이 사랑을 못 받고 자랐다고

허전함을 갖게 할 만큼 큰 아들과

큰 며느리에게 많은 관심과 사랑을 

주셨던 우리 어머니...

언제나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관계가 아닌

같은 여성의 입장에서 조언해 주시던 어머니..

 일하는 며느리, 아픈 며느리, 외국인 며느리지만 

젊은 감각, 새 문화에 맞추시려고 

대화를 할 때도 늘 자신의 얘기보다는

 내 얘기에 흥미롭게 귀기울려 주시고

웃어 주셨다.



오직, 당신의 아들만 보고 해외에서의 삶을

택한 며느리를 위해 아내를 먼저 배려하고

섬세히 돌보아야 한다며 아들에게 

신신당부하셨던 우리 어머니..

일본문화나 풍습들을 강요하지 않으셨고

당신의 배움이 짧은 것을 못내 후회하시며

여자도 많이 배우고, 많이 활동해야한다고

언제든지 며느리편에 서서 얘기해주시던 어머니.

그런데 난 결혼을 하고 매해 신정맞이 대청소를 하러

가서는 너무 지져분해 한숨을 쉬었고,,

우리 친정 엄마랑 비교도 했었고,

끝없이 나오는 비닐봉투와 노끈들에

진저리 치기도 했었고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들을 치우며 나도

모르게 코를 틀어 막기도 했으며 

싱크대의 묵은 때를 닦으며 깨달음에게

투덜거렸던 못난 며느리였다.

( 우리 시어머니가 내게 전해주신 말씀 )

http://keijapan.tistory.com/959



그런 며느리를 위해 겨울이면 온돌이 아니여서 

미안하다며 털양말이며 두툼한 가디건을 

꺼내주시고,자꾸만 기억이 가물거리시면서도

그래도 며느리가 뭘 좋아하는지

기억해내서 매해 감이며, 쇠고기, 만두, 

예쁜 그릇, 타올, 양말까지 

잊지 않고 보내주셨던 어머니..

도쿄로 돌아가는 며느리에게 갓 삶은 계란을

어색하게 내미셨던 우리 어머니..

매번 챙겨드린 한국 정관장을 아껴 드시다가

떨어지고 나면 행여 며느리가 신경 쓸까봐

깨달음에게 조심히 말을 꺼냈다는 어머니....

서로 잘 하려고 애를 쓰면 서로가 피곤하다고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는 관계를 유지하며

살자고 하셨던 어머니..

 적정거리를 만들어 가도록 착한 며느리보다 

편한 며느리가 되도록  말없이 지켜봐 주신 

우리 어머니...

당신들이 자식들에게 불편한 존재가

되는게 싫어 항상 입버릇처럼 

괜찮다고만 하시는 어머니.....


사람을 대하실 때도, 넓은 포용력으로 

상대의 마음이 열릴 때까지

기다려주는 인내력을 갖고 계셨던 어머니..

시댁 갈 때마다 여기 오는 것보다

홀로 계신 친정엄마한테 자주 가라며

깨달음에게도 언제든지 한국에 갈 수 있게

편리를 봐 줘야한다고 당부하셨다.

나를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하게 만들어주신 

어머님을 난 존경한다.

이 글을 쓰며 어머니 사진을 찾다가 

  대문에서 우리를 배웅하시는 사진을 보니 

 작년부터는 배웅을 못하셨다는 걸

 이제서야 파악하는 이 무심한 며느리를

어머님은 용서해 주실까... 

자꾸만 죄송한 마음이 들게 만드신 우리 어머니.

내가 갚아드릴 때까지, 내가 좀 더 괜찮은 

며느리가 될 때까지 조금 더 건강하시고

꼭 이겨내시길 바라며 이 못난 며느리는 

이렇게 글로 사죄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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