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미술사 활동을 같이 했던 모리 상이
전화를 주었다.
나보다 세 살 어린 모리 상은 재혼했는데
남편의 딸과 함께 세 식구가 산다.
딸 메이짱은 한국 가수를 좋아해서
코리아타운을 한 달에도 몇 번씩 가고
내게 한국어를 육 개월간 배울 만큼
열정도 많은 열일곱 살의 여고 3학년이다.
그런데 몇 달 전부터 대학은 안 갈 테니
한국으로 유학을 보내달라고
생떼를 쓰고 있다고 한다.
(일본 야후에서 퍼 온 이미지)
모리 상은 보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정작 아이의 아빠인 남편이
강력하게 반대한다고 한다.
“왜요? 왜 반대하는데요?”
“딸바보라고 했잖아. 그래서 절대로
떨어져서는 못 산다고 난리야.
시집은 어찌 보내려는지 몰라.
지금도 알바가 늦게 끝나는 날엔
가게 앞에서 기다린다니깐.
비 오는 날엔 우산 가지고 가서 기다리고.
완전히 공주님 키우듯이 하고 있어.”
“세상 아빠들은 다 딸바보라고 하잖아요.”
“근데 아직 남편에게 말하지 못한
비밀이 또 있어. 우리 딸이 남친이 생겼는데
한국 유학생이야. 그래서 더 한국에 유학을
가겠다고 하는 것 같아. 남친을 내가 같이
두 번 만나봤는데 예의도 바르고
잘생긴데다 영어도 잘하더라고…….”
“대학생이에요?”
“응, 1학년이야. 휴학하고 일본어 배우러 온
학생인데 내년 1월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간대.
그래서 우리 딸이 더 안달인 것 같아.
보니까 그 남학생보다 우리 딸이
더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
모리 상은 메이짱이 중학교 1학년 때 재혼했고,
재혼 당시부터 친해지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좀처럼 자기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 메이짱 때문에
마음고생도 많이 했다.
(일본 야후에서 퍼 온 이미지)
그런데 어느 날 딸의 방에서 케이팝이
흘러나오기에 자기에게도 좀 들려달라고
말을 걸었더니 아주 상냥하게 여러 가수들과
노래를 소개해주었다.
그게 계기가 되어서 둘은 자연스럽게 함께
코리아타운에도 가고 케이팝 콘서트도 보러
가면서 지금은 정말 친모녀처럼 잘 지내고 있다.
그런데 이번 한국 유학 문제로 둘의 관계가
틀어지게 되면 남편하고도 문제가 생길 것 같아
자기가 가운데서 입장이 난처하다며
내게 조언을 구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추석 연휴 때 한국에 갔다 오지 않았어요?
“응, 딸이랑 셋이서 처음으로 한국에 갔다 왔지.”
“ 남편분은 뭐라고 하시던가요? 한국에 대해서.”
“음식도 맛있고 사람들도 친절하다고
엄청 좋아했지. 그런데 막상 딸을 유학 보내려고
하니까 뭔가 복잡한 생각이 들었나봐.
실은 우리가 갔을 때가 8월 15일이었는데
한국은 ‘광복절’이었잖아.
그래서 데모는 아니지만
광복절 기념행사 같은 걸 봤거든.
거리에는 태극기 물결이었고.
어느 행사장에서는 젊은 학생들이
일장기에 X표시한 것을 들고 있는 것도 봤어….
(다음에서 퍼 온 이미지)
나는 어느 정도 이해했는데 우리 남편은
그게 인상에 남았나봐. 연세가 있는 분들은
옛날 식민지 시대를 경험해서 일본에 대해
악감정이 있을지 몰라도 요즘 젊은 학생들이
반일운동을 하고 있다는 게 좀 충격이였는지..
케이짱, 나는 있잖아…… 한국 사람들만큼은
아니겠지만 광복절의 의미도 알고 과거의 아픔에
대해 일본인으로서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어.
그런데 그런 노골적인 모습을 직접 내 눈으로
보니까 좀 무서운 생각도 들었던 게 사실이야.
그리고 지금 박대통령 때문에
여러모로 어수선하잖아, 그래서 더 불안한가봐,,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이해하겠지, 케이짱은?”
“네, 알아요. 아무튼 남편분과 메이짱,
어느 쪽이든 설득해야 할 텐데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그래서 말인데 다다음주에 우리 가족들과
한 번 같이 식사할 수 있어?”
“식사하면서 나보고 설득하라는 거죠?”
“맞아. 케이짱과 얘기 나누고 이런저런
설명을 듣다보면 남편 마음도 움직일 것 같아.”
“모리 상은 메이짱을 보내고 싶은 거죠?”
“응, 나는 메이가 한국에서 공부했으면 좋겠어.
그 덕에 나도 자유롭게 한국에
왔다 갔다 하면서 놀 수 있잖아, 하하하.”
모리 상 특유의 청명한 웃음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한참 들려왔다.
(한국어 학당, 일본 야후에서 퍼 온 이미지)
모리 상 가족 외에도 내 주변엔 한국에
유학을 다녀온 일본인 학생들이 꽤 있다.
모두가 단기 어학연수를 경험한 학생들로
그들이 떠난 이유 중 하나는
케이팝과 한국 연예인들을 좀 더
가깝게 느끼고 싶어서라고 했다.
나는 조만간 모리 상 가족들을 만나
먼저 ‘광복절’이 한국인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부터 설명해줄 생각이다.
한국인에겐 서럽고도 아팠던 과거가 있었기에
지금의 오늘이 있음을 알기 쉽게
풀어줘야 할 것이다.
메이짱을 위해서가 아니라 양국을
이끌어갈 앞으로의 젊은 세대를 위해서라도
바른 역사와 바른 교육이
절실히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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