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설날인데 우린 특별히 갈 곳이 없었다.
매년 신정이면 떡국을 해 먹어서인지
구정의 의미가 점점 엷어져 가고 있는 듯하고
더 솔직해지면 냉장고에 떡국이나 만두 등,
설음식에 필요한 재료들도 없었다.
깨달음은 내가 말을 하지 않아도 오늘이 한국의
명절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 아침부터
가족들에게 사진(음식사진)올라온 게 없냐고
친정에 아직 다 모이지 않았냐고 두어번 물었다.
그리고 오후쯤 코리아타운 신오쿠보(新大久保 )
에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 가서 뭐 하게? ]
[ 떡국도 없다며? 이것 저것 사야 되지 않아? ]
[ 굳이 안 사도 될 것 같은데.]
[ 그래도 한 번 가보자, 설 분위기 나는지 ]
설 분위기?가 뭔지 알고 얘기를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뭔가 북적거리며 들뜬 특유의
명절분위기가 있을 거라 생각하는 듯 했다.
약속 시간에 맞춰 신오쿠보역에 도착하자 사람들은
참 많았다. 설을 쇠기 위한 한국사람들이
아닌 치즈핫도그를 먹기 위해 줄을 선
일본사람들로 이 골목, 저 골목까지 북적댔다.
[ 깨달음, 뭐 사고 싶은데? ]
[ 응, 사고 싶은 건 결정했는데 저 핫도그에
저렇게 줄을 서 있으니 먹을 수가 없네,
나는 한국에 가서 먹어야겠어 ]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 깨달음은이 주저없이
찾아간 곳은 짜장면집.
[ 설날에 짜장면 먹어? ]
[ 응, 우리는 짜장면 먹으면서 설을 보내는 거야 ]
[ ................................... ]
짜장면을 오랜만에 먹는다는 건 알지만 설날에
웬 짜장과 짬뽕, 탕수육인지 약간 거부감 속에
빠져있는데 그 와중에도 깨달음은
주문한 음식이 나올 때까지 단무지를 아삭아삭
씹다가 양파에는 춘장을 발라
번갈아서 먹었고 동시에 3종류의 음식이
나오자 폭풍흡입에 들어갔다.
[ 탕슈~맛있어 ]
[ 응,,탕슈가 아니고 탕수육, 입 닦고 먹어 ]
손님들이 계속해서 들어오는 걸 보고는
우리 말고도 설날을 이렇게 짜장면으로
외식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내게 눈으로
입구쪽 사람들을 가르켰다.
배 불리 먹은 다음은 코리아타운을 구석구석
가게라는 가게는 모두 들어가보는 깨달음.
특별히 살 것도 없으면서 뭐가 있는지 둘러보는
그만의 구경방식을 하도록 내버려뒀다.
한국슈퍼에 들어가 내가 떡국을 고르고 있는
동안 깨달음은 코리아타운에 온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냉동만두코너에서
신중하게 뭔가를 고르고 있었다.
[ 깨달음, 그거 사면 돼, 그게 군만두야,
당신이 좋아하는 브랜드 ]
[ 알아, 근데 아무리 봐도 찐만두가 없어,
동그랗게 생긴 거,,,]
옆에 다른 브랜드 것을 권했더니 싫단다.
그럼 없다고 그냥 군만두만 사라고 했더니
점원에게 물어봐 달란다. 찐만두가 없으면
물만두라고 이 브랜드 게 있는지.
[ ................................... ]
없다는 점원의 얘기를 듣고는 급실망한 표정을
하고서는 군만두를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를
수차례,,왜 그러냐고 물으니까
이 만두를 물만두로도 사용할 수 있는지
조리방법을 나한테 읽어달라고 했고 찐만두가
없으면 이 군만두를 두봉지 사고 싶다고 했다.
[ 안 돼, 그건 안 돼, 이 달말에 한국 가서
많이 사줄게, 하나 내려 놔 ]
내려 놓으라는 내 말에도 갈등과 미련을 떨치지
못한채 나를 한 번 쳐다보고 꼭 잊지 않고 한국에서
이 브랜드로 물만두, 찐만두 모두 사주겠다는
약속을 다시 받고나서야 한 봉지를 내려놓았다.
아이와 흥정하는 것도 아니고,,깨달음과
이런 대화를 나눈다는 게 참 웃길 때가 있다.
그렇게 만두거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역 근처 백0원씨의 사진과 함께 맥주간판이
걸려있는 걸 발견하고는 잠시 쉬었다 가자며
2층으로 성큼성큼 올라갔다.
[ 여기 생맥주집인데? ]
[ 응, 치맥하러 갈려고 ]
[ .................................... ]
양념치킨과 생맥주로 건배를 하고
난 솔직히 전혀 들어가지 않았는데
깨달음은 냠냠 잘 먹었다.
[ 깨달음 좋아? 맛있어? ]
[ 한국보다 좀 덜 하지만 그래도 먹을만 해 ]
[ 정말 구정 잘 쇠고 있네, 우리 ]
[ 코리아타운 오길 잘했어. 내 생각엔 꼭 떡국
안 먹어도 될 것 같애, 신정때 먹었으니까,
이렇게 자기가 먹고 싶은 거 찾아 먹으면
그것도 명절을 보내는 나름의 방식이 아닐까
싶어, 다 똑같을 필요없잖아 ]
[ 당신, 풍습이나 전통문화를
중요시 하는 사람 아니였어? ]
[ 그니까 이렇게 치맥으로 즐기고 있잖아 ]
[ .......................... ]
입으로는 열심히 닭 뼈를 발라내가면서
치맥을 명절에 먹어도 괜찮다고
합리화를 시키는 깨달음은 정말
설연휴를 즐기는 듯 싶었다.
지금껏 구정 설을 쇠 왔던 나에겐 약간의위화감이 있었지만 신정을 제대로 보냈으니괜찮지도 않을까라는 깨달음 생각에동의하고 있는 내가 있었다. *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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