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배를하며 깨달음이묻는다.
[ 결혼 기념일에 어디 갈까? ]
[ 아무곳이나,,]
[ 뭐 갖고 싶어? ]
[ 생각해 볼게..당신은? ]
[ 나는 없어..]
[ 벌써 8년을 맞이하는데 기분이 어때? ]
[ 별,,느낌 없는데..]
[ 나도 별로 없어..]
10월 2일이면 우린 결혼 8년째를 맞이한다.
세월도 빠르다...
[ 7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보냈는데 우리는
지금도 왜 맨날 싸울까?..]
내 질문이 대스럽지 않은듯
[ 그러게..우린 싸우면서정 드나봐..]라고 답했다.
우리 화제를 바꿔 지난주 깨달음이 잠시
출장을 다녀오며 시부모님께 들었을 때의
얘기를 나눴다.
별다른 변화 없이 잘 계시는 게 고맙고
어머님은 여전히 추위를 많이 타서 겨울옷을
입고 계셨고 아버님은 딱딱한 센배가
드시고 싶다고 해서 마트에게 간식거리를
많이 사드리고 왔다고 한다.
우리도 그렇게 오랜시간 함께 하면 좋은데
사람 일이라는 게 한치 앞을 알 수 없으니
지금처럼 매사를 충실하고 솔직하게
살자고 깨달음이 건배를 했다.
결혼 3년 되던 해,,우린 서로에게 한계를
느꼈던 시기가 좀 길었다.
너무도 달라서,,너무도 힘들어서...
그래도 버티었다. 깨달음이 나보다 많이
참아준 덕분에 지금까지 부부라는 끈을
놓지 않고 있는지 모른다.
심각하게 난 혼자이길 바란적이 있었다.
그런데 먼저 떠오르는 게 우리 엄마였다.
엄마에게 헤어지고 싶다는 말을
못했고,,아니 할 수가 없었다.
눈치가 빠른 엄마는 깨서방 같은 사람은
없다고 배부른 소리 하지 말라고 했었다.
배 부른 소리라는 말이...그렇게 아프게
들렸던 적도 없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털어 놓을 수 없는
부부사이의 문제를 그저 가슴에 묻어두고
묻어둘 수밖에 없었던 시간들이 있었다.
나는 나대로 깨달음은 깨달음대로 서로가
주고 받았던 상처들을 아픔기억으로 가슴에
덮어둔 채로 지금까지 아무일 없었던 듯이
지내온 게 아닌가 싶다.
국제커플, 한일커플이여서 찾아오는 트러블은
분명 있었다.
100%만족하는 사람없기에 그저 감사하며
살자고 다짐하고 다짐했고 내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고 맹세를 했던 날들도 많았다.
그렇게 7년을 보내고 다시 새로운 한해를
보낼 준비를 하고 있다.
정종 3잔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깨달음에게
잔을 채워주며 말을 건넸다.
[ 매번 하는 소린데... 올 한해도 수고했어..
나랑 사느라...]
[ 나도 매번 같은 소리지만,,난 당신이랑 있어서
행복해...가끔 슬플 때도 있지만..
당신이 좋으면 나도 좋고,,당신이 힘들면
나도 힘들고 그래...
근데..우리 술 빨리 먹고 집에 가자]
[ 왜? ]
[ 그냥,,,빨리 가고 싶어..]
[ 그래..알았어..]
내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계산서를
받아든 깨달음이 주섬주섬 지불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왜? 술 좀 남았는데...]
[ 그냥,,가자 ]
그렇게 가게를 나와 내 손을 잡은 깨달음이
이번에는 얼른 택시를 잡아서 탔다..
[ 진짜 왜 그래? ]
[ 실은,아까 술먹다가 생각 난 건데 지난주 녹화해
둔 옥녀(옥중화)가 문뜩 생각 난 거야,,
내일도, 모레도 퇴근이 늦을 건데 볼 시간이
오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 ]
[ 뭐? 지금 드라마 보려고 빨리 가는 거라고? ]
[ 응,,]
집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옷을 번개처럼 갈아입고
내 방에 들어가 티브이를 켠다.
[ 아니..결혼 8주년을 맞이해서 진지한 얘길 하다가
겨우 티브이 보려고 이렇게 달려 온거야?
진짜 대단하다...당신...]
[ 응, 알았어... 지금 드라마 시작하니까
조금 있다가 얘기해..]
이미 깨달음은 드라마에 정신을 팔려
내가 뭐라고 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은
상태여서 조용히 문을 닫고 나왔다.
결혼 7년을 뒤돌아보며 서로에게 주었던 상처
기쁨. 행복들을 정리하고 반성도 하고
새로운 8년째는 어떻게 슬기롭고 지혜롭게
헤쳐나갈 것인지 얘기하던 중에 한국 드라마를
머리에 떠올린 깨달음의 뇌회로가 궁금했다.
아니,,도무지 알 수가 없다..
저렇게 단순할 수가.....저렇게 엉뚱할 수가,,
오직 그 생각에 택시까지 타고 오는 깨달음은
10년이 가도, 아니 20년이 가도 변하지
않을 것 같아 헛웃음이 나왔다.
약 1시간 가량 옥중화를 보고 나온
깨달음 얼굴이 아주 만족스러웠다.
[ 재밌었어? ]
[ 응,그리고 아까 가게에서 하다가 말았던
얘기인데 우리의 결혼 생활은 8년째도
아무 문제없이 잘 살 거니까 아프지말고
행복하게 살면 돼, 그리고 난 변함없이
이렇게 한국 드라마를 즐겨보며
한국 음식도 맛있게 먹을 거야 ]
[ 그게 8년을 맞이하는 각오야? ]
[ 응, 괜히 약속도 못지키는 한국어 공부를
하겠다는 건 무리니까 그냥 지금처럼
한국에 관한 모든 것을 흡수하고
즐기고 놀거야,.그게 한국인 아내를 둔
남편들의 특권같은 거 아니야?
난,,아무리 생각해도 당신하고 결혼하길 잘했어,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사랑을 받을 때는
과할 만큼 받기도 하고 미움 받을 때는
죽고 싶을만큼 미워받지만,,그래도 난 좋아,
당신이랑 있는 게 아주 행복해... ]
어이가 없어 내가 아무 반응을 않자, 의미를
알 수 없는 이상한 춤을 추며
내 주위를 맴돌았다.
[ .......................... ]
알다가도 모르겠고,,알 수도 없는 깨달음이지만
싸우고 웃고, 울고 그런 시간들이
축척되어 우리 부부는 조금씩
단단해지고 성숙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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