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일커플들 이야기

부부싸움을 푸는 남편만의 방법

by 일본의 케이 2020. 9. 10.
728x90
728x170

아침 일찍 거실로 나가보니 

내 노트북 위에 편지가 놓여있다.

열어보지 않아도 분명 반성과 후회, 사과의

내용일 거라는 예측은 할 수  있었다.

부부싸움이 있는 다음날이면, 깨달음은 늘 이렇게

 곱게 편지를 써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다.

특히 자신이 많이 잘 못한 것 같은 생각이 지배적이면

어김없이 반성문?과 같은 편지를 쓴다.


첫 줄부터 [미안해요]라고 시작된 걸 보니

아주 많이 미안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자기가 

내 입장을 잊은 채 이기적이였던 것에 대해

 후회하고 반성한다는 글이 적혔고 중간엔

 [사랑해요]라고 급하게 써넣은 듯한 문구도 나왔다.

그리고 마지막장엔 00레스토랑에서 다시 한번

자신의 진심을 얘기할테니  

꼭 나와달라는 부탁도 첨부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간 곳은 게전문집(かに道楽) 이였고

엘리베이터가 열리자 맞은편 대기실 카운터에 앉아

 아주 천진스런 미소로 날 맞이했다.


니혼슈로 건배를 하면서 바로 물었다.

[ 당신은 꼭 이런날에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로

공략을 하려고 하더라..]

[ 응, 당신 게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잖아 ]

[ 그러긴 한데,그래도 좀 수법이 비겁한 것 같애 ]

[ 여기 아니면 당신이 안 나올 것 같아서

내가 머리를 썼지 ]

[ 편지, 잘 읽었어..많이 반성 한 거 

같아서 오늘 나온 거야 ]

[ 맞아, 많이 반성했어. 정말 미안해. 원래 남자들은 

잘한다, 잘한다 기를 살려주면 기고만장해져서 

자기가 잘난 줄 알고 실수할 때가 있어.

그러니까 당신이 그럴 때마다 회초리를 

들어서 자각을 하게 해 줘. 

남자는 금방 잊어버리거든..]

[ ................................ ] 


결혼생활 10년을 향해가고 있다.

부부싸움이란게 칼로 물베기라고 하지만

우린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였다.

국제커플이라는 것도 있고 문화가 달라 

서로를 이해하는데도 시간이 여느 부부보다

두배로 더 걸렸던 것 같다. 또한 늦은 나이에

한 결혼이다보니 삶의 방식들이 달라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데도 꽤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너무 힘들고 피곤해서 정말 이혼이라는 단어를

언급한 적도 있었고 실제로 작성했던 이혼서류를

 아직까지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과 달리 일본은 부부가 각자 이혼서류에 

서명하고 구청에 제출만 하면 바로 그자리에서 

이혼이 성립되기 때문에 어찌보면 

 미련없이 심플하게 부부의 연을

끊어버릴 수 있다


깨달음은 외모와 달리 조잘조잘 말이 많은 스타일이다.

그러다보니 필터링이 되지않은 상태로

 뱉어내는 말들이 많아지고

다시 주워담을 수 없는 말이 튀어나오곤 한다.

그래서 이번에도 말실수를 한 것이다.

깨달음이 말 수가 많은 게 타고난 거라면

난 반대로 말 수가 없다. 필요한 말만 하고

쓸데없는 농담을 즐겨하지 않는다. 

반면, 깨달음은 아주 감성적이며 눈물도 많고

 정이 많은 좋은 장점을 소유하고 있다.

그래서 그 장점만을 보며 살면 부부싸움이 

일어나지 않겠지만 불쑥불쑥 단점들이 예고없이

튀어나오고 반복되다보니 충돌이 생기는 것이다.

샤브샤브가 준비되고 깨달음이 적당히

잘 익은 게다리를 내게 건네주며 입을 열었다.


[ 나는 당신이 아무말 하지 않고 날 

쳐다볼 때가 가장 무서워. 차라리 화를 내면

좋은데 당신은 눈으로 말을 하잖아,,]

[ 매번 같은 말을 하는 게 지쳐서 그래.

생각하고 뱉어라, 말 조심해라, 그런말들을

계속하는 내 자신이 싫어서 그러는 거야 ]

[ 그래도 말을 해 줘. 그래야 내가 또 그런 실수를

하지 않도록 조심하지 ]

[ 그래, 알았어]

화를 안 내고 무표정한 표정을 하면 

아예 날 포기한 건가싶기도 하고

애정이 식은 건가,,별 생각이 다 들어 ]

[ 알았어..이제부터 화 낼게 ] 

식사를 마치고 집에 들어와서는 내가 좋아하는

샤인 머스켓도 샀다며 자기 가방에서 꺼냈다. 

내가 좋아하는 걸로 마지막까지 준비하며 애쓰는

 모습이 고마워서 깨달음에게 괜찮다고 

이젠 아무렇지 않다고 말해주었다.

   


언젠가 한국 친구들과 부부싸움에 관한 얘기를

 나눴던 적이 있었다.

그 때 난 이런 표현을 했다.

결혼생활이라는 게 살아보니 몸에서

사리가 나오는 것 같은 인내가 필요하더라고

지금까지 내 몸에서 나온 사리만해도 대여섯개는 될거라

했더니 친구들이 명언이라고 박수를 쳤었다.

그만큼 참아야하고 인내해야할 게 많다는 뜻으로

했던 말인데 지금도 가끔 친구들은 자신들

몸에서도 사리가 나오고 있다며 농담을 하곤 한다.

나만 몸에서 사리가 나왔겠는가.,, 깨달음 역시도

참고, 인내하며 버티왔을 게다.

내가 화를 표현하지 않는 데는 10년 가까이 살아보니

 그냥 넘어가게 되고, 무엇보다 이젠 서로

중년이다보니 측은지심 같은 게 생겨서

화를 내서 뭐하나,,잘잘못을 따져서 뭐하나싶고

 지금에 와서는 그런 언쟁에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는 게

 서로에게 현명하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랑하기에도 바쁜 시간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요즘 세상인데 얼굴 붉히고 목청 높여가며 짜증내고

상처주고 상처받는 시간들이 얼마나 

무의미했는지 늦게나마 깨달았다. 

결혼생활을 통달하려면 아직도 갈길이 멀었지만

모든 일에 좀 더 너그럽고 여유로운 

마음가짐으로 살아 가고 싶다.

저렇게 열심히? 깨달음만의 방법으로

반성을 하는데 내가

화 낼 이유가 없는 것 같다.

인간은 단순해서 맛있는 것을 먹으면

날카로워져있던 신경세포들도 잠시나마

무뎌진다는 것을 깨달음은 잘 알고 있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