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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커플들 이야기

어느덧 시작된 가을에서

by 일본의 케이 2020.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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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온다는 예보였는데 갑자기 화창한 가을 날씨가

펼쳐지자 깨달음이 얼른 나가자고 아우성이다.

이곳은 내일까지 연휴이다. 다들 황금같은 연휴를

즐기고 있었지만 우린 그냥 코로나니까 자중하자는

의미로 집에만 있었는데 도저히 참기 힘들었는지

깨달음이 나갈 채비를 서둘렀다.

[ 어디갈 건데? ]

[ 가까운데 가서 가을을 느끼고 오자 ]

[ 알았어, 근데 당신 반팔로 나가? 쌀쌀할 건데 ]

[ 아니야, 난 이런 날이 좋아, 덥지도 춥지도 않아서]

분명 반팔 입을 걸 후회할 거라 말해뒀지만

깨달음은 그대로 집을 나섰다.

우리가 말하는 가까운 곳은 바로 오다이바이다.

마땅히 갈 곳이 없거나 바다를 좀 더 가까이서

보고 싶을 때, 쇼핑이 하고 싶어질 때면 오는 곳이다.

 특별하진 않지만 그래서도 바람쐬기에는

최적의 장소임에 자주 찾는다.  


어슬렁 어슬렁 바닷바람을 맞고 있는데 깨달음이 

유람선이 우릴 기다리고 있다며 달리기 시작했다.

[ 갑자기 왠 유람선?]

[그냥 심심하니까, 빨리 뛰어]

그렇게 얼떨결에 유람선에 올라보니 

의외로 사람들이 없다.

[ 깨달음,,,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좋다 ]

[ 다들 도쿄를 빠져 나갔어. 공항이랑 신칸센은

만석이래.우리만 착실히 어디에도 안 가고

집에 있었던 거야,,]

정말 그런가 싶어 뉴스를 검색해 봤더니

여기저기 코로나 발생 전 상황으로

돌아간 것처럼 붐비고 있다는 기사가 많았다.


깨달음은,,타이타닉 흉내를 냈다가 혼자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 빙그레 돌기도 하고

 기분이 좋아졌는지 맞은편

 유람선을 향해 손을 흔들며 즐겨워했다.

[ 안 추워? ]

 [ 응, 시원해,햇살이 따뜻하잖아

삼일만에 나왔더니 완전 상쾌해!!]

여러각도로 포즈를 취하며 모델인양 표정도

오묘하게 잡고는 혼자 낄낄거리는 깨달음이

마치 방학을 처음 맞이한 초딩처럼 보였다.


유람선에서 내려 쇼핑을 좀 하고 난후,

 인공잔디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우린 가을을 온 피부로 느꼈다.

[ 날씨가 너무 좋다 ]

[ 나오길 잘 했지? ]

[ 응,,바람도 살랑살랑하고 아이들 웃는 소리도 좋고,,

근데 다들 코로나 이젠 안 무서운가 봐 ]

[ 안 무서운 게 아니라 코로나랑 함께 사는 거지,

걸리지 않게 조심하면서 경제활동해야하니까 ]

[ 그러지.,,언제까지 움추릴 순 없지..]

우린 또 말없이 드넓은 하늘, 비릿한 바다내음과

  천방지축으로 뛰어노는 꼬마들 목소리로 어우려진

가을의 시작을 감상했다.

그렇게 계절을 만끽하고 있는데 깨달음이 

와인 한잔씩 하고 가자며 내 손을 잡아 끌었다.

메뉴얼 인간처럼 예정에 없는 일은 좀처럼 

하지 않으려는 나와 달리, 약간은 즉흥적이며

분위기와 기분에 자신을 감성을 맡기는 깨달음은

오늘도 예상밖의 상황들을 자주 만들었다.

유람선도 그렇고, 외식도 그렇고,,,


[ 이곳,,예약하기 힘든 곳이야 ]

[ 나 별로 배 안 고픈데..]

[ 괜찮아, 여긴 코로나대책이 잘 되어 있어서

 안심해도 돼. 내가 미리 조사해 놨던 곳이야 ]

무계획인것 같지만 나름 계획이 있었다는 깨달음은

잔을 부딪히며 씨익 웃는다.

푹신한 소파도 그렇고, 적당한 바람에 취해

가끔은 있는 그대로 널부러진 모습으로

계획없이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이젠 코로나라고 집에만 있을 수

없으니까 조금씩 조금씩 조심해가며

예전처럼 여기저기 여행 다니자는 깨달음..

난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마지막 승객들을 내려준 유람선 직원들이 나와

열심히 물청소를 하고 그 옆에선 갈매기들이

꼬마가 막무가내로 내던지는 새우깡을 받아 

먹느라 정신없는 모습이 왠지 훈훈했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깨달음이 벌써 가을이라며

남자의 계절이 시작됐다고 또 폼을 잡았다.

[ 깨달음,당신은 올 안에 뭐 하고 싶은 거 있어? ]

 [ 음, 특별한 건 없어..당신은?]

[ 음,,나도 없어.]

[ 아,이번 추석에는 한국에서도 가족들 

안 모인다고 기사에 나왔던데 ]

[ 응,,다들, 안 찾아뵙는 걸로 하나 봐 ]

[ 오늘이 경로의 날이잖아, 어머님께

뭐 보내드릴까? ]

[ 그렇지 않아도 어머님 거랑 아버님,

친정엄마 것까지 보내드릴려고 사 뒀어]

세 분에게 드릴 얇은 목도리를 준비해 두었다고

하자 고맙다며 와인을 또 한잔 따라준다.


술도 적당히 마셨고 기분도 좋은 우린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깨달음은 혼자 다 먹은 빠에야 때문에 배불러

숨이 차오른다면서도 재즈 라이브바에

가고 싶다고 했다.

[ 파크호텔에서도 이젠 라이브 다시 할까? ]

[ 하겠지..]

[ 그곳이 연주를 아주 잘하는데...]

[ 응,,]

[ 다음주에 갈까? 결혼기념일에 맞춰..]

내가 아무반응을 안 보이자 

11월엔 당신 생일, 12월엔 크리스마스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받고 싶은 선물을 미리 생각해

 두라며 올 겨울엔 흰눈이 뒤덮인 온천을 

다녀오는 것도 좋을 것같지 않냐고 어디가 

좋겠냐며 내게 뭔가를 물었는데

난 달리는 창밖으로 멀어져가는 바다를

 쳐다보며 세월이 이리도 빨리 가는지 허무하다는 

생각에 빠져 깨달음 얘길 흘려보냈다. 

가을은 이미 우리곁에 다가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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