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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부모의 자격, 그리고 자식의 아픔

by 일본의 케이 2019. 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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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는 안 미워? 원망스럽지 않아? ]

[ 아니, 그래도 날 낳아줬잖아,

그리고 뭐 원망해봐야 뭐 해,.지금에 와서,

다 지나간 일이고 본인들이 모르는데... ]

[ 낳기만 하고 아무것도 안 했잖아, 솔직히

너 혼자 큰 거나 마찬가지인데 무슨 얼굴로

 널 보러 온다는 거야? 무슨 자격으로?  ]

말을 좀 가려서 했어야한다는 걸 알면서도

  내 머릿속은 순화된 단어를

 찾으려 하지 않았다. 

[ 공항에 나가야하는데 회사에서 시간을 

내 줄지 모르겠어. 우리 회사가 좀 그러잖아,

10년만에 보는건데 얼굴은 알아볼련지.. ]

[ 몇 시야? 그럼 내가 대신 나갈까?

아니, 나기지도 마, 얄미우니까 ]

나가지도 말라는 내 말에 후배는 피식 웃는다.

[ 자격 ]이라 말했던 건 기본적으로 부모로서의

의무와 자격이 없다는 뜻이라는 걸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 낳아줬다고 다 부모냐? ]

[ 고아원에 안 보낸 것만도 고맙다고 생각해 ]

[ 그게 고마워할 일이냐? ]

또 피식 웃으면서 소바를 맛있게 먹는 후배..

 

소녀가장처럼 혼자 씩씩하게 자란 후배는 늘 밝다.

오늘도 전혀 우울한 기색없이 언제나처럼

긍정마인드로 자신에게 닥친 일을 풀어가려했고

누군가를 미워하고, 탓을 하거나

자신을 자책하는 일도 없었다.

 그녀의 밝은 웃음이 오늘 같은 날은

더 시리게만 느껴졌다.

자신을 낳아준 부모가 부모로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 부모를 위해 아끼고 모아둔 비상금을 

기꺼이 내 드리겠다고 한다.

 부모라는 이유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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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숍으로 옮겨와서도

 내 말은 예쁘게 나가지 않았다.

[ 왜 오시는 거래? ]

[ 잘 모르겠어, 약간 불안하긴 한데

우리 부모님도 처음부터 못된 부모가 되고자

 했던 건 아니였겠지. 그분들은 

그 분들나름대로 이유가 있었겠지 ]

[ 그걸 말이라고 하냐? 아무튼, 이제 성인이니까 

그냥 혼자 잘 살게 내버려 두셨으면 하는 

마음이야. 행여 금전적으로

너한테 부탁하는 건 아니겠지? ]

[ 몰라, 사업도 잘 안 된다고 이모가 그러셨는데  

  건강도 안 좋아진 것 같다고 그랬어 ]

[ 난, 니가 자식의 의무같은 건 생각 안했으면

냉정히 말해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 ]

[ 나도 그러고 싶은데 부모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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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자식을 낳으면 모두가 부모가 된다.

사람은 태어나고 자라서 성인이 되면

대부분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룬다.

굳이 결혼이나 가정이라는 형식을 갖추지 않아도

성인 남녀는 아이를 낳을 수 있다.

그렇게 임신을 하고 출산이라는 경이로운

경험을 통해 부모라는 이름을 얻는다.

 하지만, 신체적, 심리적, 경제적으로 부모됨의 

준비가 기본적으로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식을 낳다보면 아이를 내다 버리기도 하고

 방치하기도 하며 아이의 양육은 뒤로 하고 

자신의 삶만을 우선시 하는 부모가 있다.

생물학적으로 부모가 되기는 쉽지만 부모가 

된다는 것은 자식을 낳는다는 것 이상의

책임과 의무가 뒤따른만큼 부모가 되기 위한 

준비과정이 꼭 필요한데

부모로서의 자격을 갖추지 못했으면서 

부모가 되어버리는 경우가 꽤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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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수업을 받고 있는 초등4학년 여학

아빠가 엄마가 아닌 다른 여자와 자기집 침대에서

함께 뒹구는 걸 본 후로는 심한 정서불안과 

스트레스로 원형탈모증과 머리가 긴 

여자들을 볼때마다 헛구역질을 하는 

증상을 보이기도 했다.

중학교 1학년인 남자학생은 부모가 양육을

 방치해버린 탓에 절도와 폭행을 일삼아 

소년원을 제 집처럼 들락거렸는데 그렇게 

문제를 일으킨 이유가 따뜻한 세끼 밥을

소년원에서는 먹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이를 낳는다고 모두 부모가 될 수 없고,

낳았을 뿐, 부모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않은

부모는 이미 부모의 자격을 상실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천륜이라는 끈으로 묶여있기에 끊을래야 

끊을 수도 없는 부모와 자식,,

그 끈을 놔 버릴 수만 있으면 좋으련만 착한

후배는 자식으로서의 의무를 하려고 한다. 

그건 착한 게 아니라고 목이 터지게 열변을 

토해도 그녀는 부모를 나 몰라라 하지 못했다.

영화 [가버나움]은 레바논 빈민가에서

출생기록조차없이 태어난 12살로 추정되는 

주인공 자인의 얘기를 다뤘다. 

부모에게 보호받지 못하고 살아남기 위해

온갖 역경을 이겨내며 버티다가 끝내는 

자신의 부모를 고소한다.

판사가 왜 부모를 고소했냐고 묻자,

저를 낳아줘서요, 그리고 간절히 청합니다.

아이를 그만 낳게 해주세요라고 대답한다.

영화 제목인 [가버나움]은 혼돈과 기적을

의미라고 한다. 산다는 게 혼돈의 연속이고

가끔은 기적이 찾아올 때도 있지만 난 후배가 

좀 더 자신을 아꼈으면 하는 마음에 카톡을 보냈다. 

 

 인생의 선배로 해 줄 수 있는 말이 그닥 많지

 않아서 보내고 나서도 왠지 부끄러웠다.

부모는 뭐고, 자식은 또 무엇인가,,

천륜으로 이어진 부모와 자식 사이를 누구도

관여할 수 없기에 더 답답한지 모르겠다

.난 그녀가 이제 자식의 입장보다는

자신의 삶에 모든 걸 쏟았으면 한다.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부모로서 자식에게

안겨준 아픔은 자식이 평생 안고 가야할 

짐이며 상처 덩어리임을 부모님들도 조금은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였다면 과연 후배처럼 부모님께 자식의

의무를 다 할까...

답도 없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자식을 낳은 게 죄가 되지 않고

그 자식이 되어 버린 것 역시

 아픔이 되지 않는 세상이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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