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전, MRI촬영을 했다.
저녁이 되면 뒤통수쪽에 두통이 있었지만
굳이 MRI를 할정도는 아니였다.
하지만, 대비차원에서 해 두는 게 좋다며
깨달음이 강하게 추천을 했다.
5년전에 한 번 했던 기억이 있어서
별 거부반응은 없었는데 촬영까지 꽤나
시간이 걸려 오후 늦게까지
병원에 있어야만 했다.
촬영을 마치고 40분쯤 지나 결과가 나왔는데
이상한 점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왼쪽 뇌혈관에 2미리정도 혈관이 돌출되어
있다며 혈압 올리는 일은 삼가하고
늘 마음을 편안하게 먹으라신다.
또 저녁에만 찾아오는 두통의 원인은
갱년기증상의 하나일 수 있다는 말에
전혀 납득이 되지 않았지만 병원을 빠져나오며
모든 걸 갱년기탓으로 돌리고 싶어하는
의사들의 심정을 이해하기로 했다.
오늘은 깨달음이 지난번 수술 때,
전부 배출시키지 못한 잔류결석을 확인하기 위한
엑스레이 촬영이 있었다.
다행히도 결석이 보이지 않아 더이상
약을 복용하지 않아도 된다며 많이 기뻐했고
맛있는 메밀집에서
저녁을 같이 하자고 했다.
[ 깨달음, 다행이야, 그리고 축하해 ]
[ 응, 엊그제 화장실에서 빠져 나온 걸 느꼈는데
그게 마지막이였나 봐, 당신도 지난번
MRI에 큰 문제 없어서 다행이야 ]
[..........................]
MRI라는 말에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어느 댓글이 떠올랐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가 아니다]라는 글을
올렸을 때 어느 분이 종합병원처럼
이런저런 병을 줄줄이 달고 사는 부인하고 사는
남편이 불쌍하다고 나에게 복에 겨웠다는 댓글이 달렸었다.
[ 그런 댓글을 다는 사림이 있었어? ]
[ 응, 근데 맞는 말인 것 같았어.
매사에 까다롭고, 예민한 아내와 같이 사는
남편 입장을 생각해 봤냐고도 그랬어 ]
[ 누가 그랬어? ]
[ 몰라,근데 예전부터 우리 블로그를
오신 분 같았어, 그니까 내가 까탈스럽다는 걸
알고 계시지..]
깨달음은 얼른 그 글을 읽어보고는 자신이
말실수를 너무 자주해서 부부싸움이 일어나고
그걸로 인해 고민하는 내용인데
왜 그런 댓글이 달렸는지 모르겠단다.
[ 남편 입장에서도 생각해 보라는 거지,
근데 나는 당신 입장을 너무 많이 생각해서
생긴 스트레스인데 그건 안 느껴졌나봐,
그래서 블로그에 병원 간 얘길 이젠 안 하려고
했는데 오늘도 그냥 쓸거야 ]
[ 그게 바로 당신의 장점이야, 솔직한 게 케이잖아,
있는 그대로 누가 뭐라하더라도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는 거]
[ 이상하게 칭찬으로 안 들리네 ]
[ 아니야, 칭찬이야, 그리고 당신이
나를 얼마나 생각하는지 그 분들이 몰라서
그런 말을 쉽게 한 걸거야 ]
[ 아무튼, 케이라는, 아니 나라는 인물은
그런 이미지가 강한 것 같애 ]
깨달음은 술을 또 한잔 시켜 마시면서
그런 댓글들은 무시하라며 이런 얘길 했다.
코끼리를 다리만 만져본 사람은 코끼리가
딱딱한 나무처럼 생겼다고 말하고
코만 만져본 사람은 긴 통처럼 생겼다고 하고
꼬리만 만져본 사람은 코끼리는 먼지털이처럼
생겼다고 말하는 거라며 어디에서, 어떤식으로
보느냐에 따라 진실하고 멀어진 단편적이고
편견으로 생각을 만들고 이미지를 굳어가는
경우가 있다며 그냥 잊으란다.
[ 아니, MRI 얘기를 하니까 문득 생각나서
말했던 거야,,나라는 사람을 그렇게
보고 있다는 걸 내가 몰랐던 거지.. ]
[ 우린 충분히 노력하고 충분히 행복하게살고 있으니까
지금처럼 싸우면 싸운대로사랑하면 사랑한대로
그대로 써 나가면 돼]
[ 그럴거야,,]
처음에 그 댓글을 봤을 때 참 건방지고
불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블로그에서 보여진 케이라는
인물을 여러 각도에서 보시는 분들이
내 생각보다 아주 많다는 걸 알았다.
코끼리의 일부를 보았던, 전체를 보았던 느끼고
평가하는 건 각자의 몫이기에
옳고 그름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최대한 솔직하려고
애를 썼고 최대한 사실적으로 우리부부의
감정을 블로그에는 담으려했다.
그래서 결혼생활에서 오는 갈등이나 후회마져도
되도록 숨김없이 보여드리고 싶었다.
내가 결혼이 맞지 않는 체질이란 걸 결혼을
하고 나서 알게 된 케이스다 보니 트러블도
많았고 맞춰나가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완고한 독신주의까지는 아니였지만
마흔이 넘도록 독신으로 살아왔던 것도
결혼생활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던 하나의
요인이 되었다.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게 참 많이 힘들었고
꽤나 불편했다. 깨달음 때문이 아닌
내 스스로가 결혼이라는 상식적인 틀에
맞춰야 한다는 게 숨이 막혀서 죽을 지경이였다.
지금도 100% 극복한 건 아니지만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방법들을
하나씩 찾아왔고, 서로가 많은 대화와 합의점을
만들어 가며 지금에 이르렀다.
오직 나만을 생각했다면 진작에 우린
서로 남남이 되는 길을 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들의 선택에 대한 책임감과
그 선택에 있어서 발생된 인간관계가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던 것 같다.
가게를 나오며 깨달음이 내 손을 꼭 잡고
자기는 그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라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처럼만 살자고 한다.
이렇게 우린 날마다 아주 조금씩이나마
성숙해가는 부부가 되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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