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완치되지 않은 다리를 하고 움직일 생각은
아예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내가 직접
가야만 했고 미룰 수 없었다.
습관처럼 택시를 타고 신주쿠로 향하는데
휴가를 즐기려는 인파들로 거리는
밀리는 차량과 사람들로 가득했다.
4일간 연휴의 마지막인 이곳은 올림픽까지 겹쳐
약간은 들뜬 듯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다.
델타 변이가 점점 퍼져가고 올림픽 선수촌에서
매일 새로운 감염자가 늘어나도 이젠 그러러니
각자 제 삶을 즐기며 무뎌져가고 있다.
내가 일을 보는 사이 깨달음은 커피숍에서
시간을 보냈고 난 미팅을 끝내고
오다큐(小田急) 백화점으로 이동했다.
9월 초에 있는 조카의 결혼식에 참석을
못할 확률이 높아진 우린 축의금 외에
뭔가 선물을 해주기로 했다.
신혼에 딱 맞는 아기자기한 식기류를 사려고
둘러보다 아직 구매하지 않은 게 있다길래
그걸 사는 걸로 결정을 했다.
계절과 절기에 어울리는 세련된 식기들이
즐비하게 놓여있다.
우동이나 소바를 넣어 먹을 투명한 유리그릇도
예쁘고 앙증맞은 동물 모양의
받침대들이 발길을 멈추게 한다.
깨달음이 도마를 들고 뭔가 분석하듯이
쳐다보다가 점원에게 몇 가지 물었다.
[ 신혼에게는 이 정도 사이즈가 좋겠죠? ]
[ 사이즈는 적당한데... 나무 도마는
관리하기가 어려워서 추천
안 드리고 싶은데요 ]
아무리 좋은 자재로 만든 나무 도마여도
곰팡이가 생기는데 그걸 막기 위해서는
상당히 세심한 관리를 필요로 하다며
젊은 층에게 인기 있는 향균도마를 보여줬다.
주방용 칼은 가벼우면서도 단단하고
샤프한 것으로 선택했다.
리본으로 포장을 하고 지하층에 전복을 사러
내려갔는데 한 마리 8천엔( 한화 약 8만원)이나
하길래 그냥 포기했다.
나는 3마리, 깨달음은 5마리를 먹을 예정이었는데
60만원을 주고 먹기엔 솔직히 너무 비싸서
다른 식재료만 좀 사고 집에 돌아가려는데
깨달음이 코리아타운에 잠깐 들렀으면 했다.
[ 왜? 살 거 없는데? ]
[ 나 먹고 싶은 게 있어서 ]
[ 뭐? ]
코리아타운에는 전복을 팔지 않는다고 했더니
전복이 아닌 곰탕 꼬리뼈를 살 거라 했다.
[ 지난번에 당신 골절 바로 되고 나서 한번
해 먹었잖아, 꼬리곰탕 수프,
그게 너무 맛있어서 또 먹고 싶어.. ]
내 골절 소식에 한국에서 가족과 친구, 후배들이
보내준 레토르트 도가니탕, 설렁탕을 같이
넣고 끓인 꼬리곰탕이 맛있었다는 것이다.
[ 그럼,, 또 끓여야겠네... 이번엔 당신이 한 번
끓여보는 건 어때? 그리 어렵지 않은데 ]
[ 아니야, 당신이 끓여줘,, 당신이 만들어야 맛있어 ]
[ 근데,, 나 아직 환자거든, 그리고 아마도
그때는 레토르트랑 섞여서 맛있었을 거야,
화학조미료가 들어가서 ]
[ 원래 유명한 곰탕 전문집에서도 다0다
같은 거 조금씩 넣지 않을까? 난 괜찮아,
화학조미료 조금 먹어도 맛만 좋으면 ]
[ ....................................... ]
https://keijapan.tistory.com/1361
https://keijapan.tistory.com/1419
골절상으로 2 주되던 날, 아픈 다리를 부여잡고
힘들게 끓여놓은 곰탕을 깨달음이 거의 다
먹어치워서 어이가 없어 할 말을 잃었는데
그 곰탕이 또 먹고 싶단다.
먹는 거 앞에서는 이성적 판단이 흐트러지는
깨달음은 만들어야 하는 아내에
대한 배려심이 결여되어 있었다.
핏물이 빠지도록 꼬리뼈를 물에 담가두고
난 전복 대신 사 온 성게알을 먹으며
아무리 비싸도 전복을 살 걸 그랬나 하는
약간의 후회를 했다.
https://keijapan.tistory.com/1118
먹고 싶을 때 먹어야 병이 안 생기는 건데
괜히 참았다는 생각도 들고 해서
깨달음에게 물었다.
[ 깨달음, 곰탕은 내일이나 먹을 것 같은데
다른 거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
[ 아니, 꼬리곰탕이면 돼 ]
[ 아니야, 오늘처럼 먹고 싶을 때 먹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말해 봐, 그리고 전복은
생선가게에서 사는 게 좋을 것 같아 ]
[ 음,, 그럼 잡채랑 육개장,,,,김밥,, ]
[ 김밥? 지난번에 사 먹었잖아 ]
[ 음, 사 먹는 김밥은 역시 뭔가 부족했어..
아, 그리고 나 전 같은 것도 먹고 싶어,
동그랑땡이랑 꼬치전,, 근데 그게 손이
많이 가니까 당신이 다 나으면 해달라고
할 생각이였어, 아, 비빔밥이랑 불고기도 ]
[ ......................................... ]
이번 한 달 동안 먹고 싶었던 것을 정리해둔
사람처럼 메뉴들을 줄줄이 나열했다.
깨달음도 지금껏 도시락, 배달음식, 인스턴트로
지냈으니 질릴 만도 했을 것이다.
지금 이상태론 예전처럼 몇 가지 메뉴를 뚝딱
해낼 수 없지만 먹고 싶었다는
음식을 하나씩, 하나씩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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