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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신랑(깨달음)

남편에게 내 카드를 줬더니..

by 일본의 케이 2021.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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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전, 깨달음은 퇴근길에 열무김치를 사 왔다.

너무 반가워서 어디서 샀냐고 물었더니

거래처 다녀오는 길에 한국어가 적힌

작은 마트가 있어서 샀다고 했다.

[ 여름에 열무김치 먹는 거 기억하고 있었어? ]

[ 아니, 요즘 유튜브에서 비빔국수

많이 나오잖아, 보리밥에 넣어 먹기도 하고,

  한국 맛과 같은지 궁금해서 사 봤어 ]

그날 저녁 우린 열무김치를 넣은 비빔국수를

 먹으며 완전 한국 맛이라며 좋아했었다.

집 근처 마트에서 구매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코리아타운에 가야만 했는데 깨달음 덕분에

즐거운 한 끼를 맛볼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자기 방에서 오후 내내

공부를 하던  깨달음이 외출 준비를 했다.

 

[ 내가 혼자 다녀올게 ]

[ 깨달음,, 나도 가고 싶은데...]

[ 알아,, 아는데 아직 당신은 완치되지 않았으니까

그냥 집에서 쉬어,  혼자서 금방 다녀올게,

그리고 코로나가 위험해 ]

[ .......................................... ]

혼자서 코리아타운을 다녀오겠다는 거였다.

갑자기 사고 싶은 게 생겼다며 꼭 가야겠단다.

지금 이곳은 지난 주말부터 15일까지

추석 연휴기간이어서 우린 지루한 휴일을 보내는

중이었다. 외출을 하고 싶어도 코로나 감염자가

하루 만 명을 넘어가면서 병실이 부족해

중증환자조차 입원이 되지 않은 심각한 사태가 

계속되고 있어 얌전히 스테이 홈을 했었다.

지난주 신주쿠 나갔던 날, 그날도 깨달음이 혼자

잠깐 코리아타운에 들렸는데

오늘 또 가겠다고 하니 이번에는 나도 꼭

같이 따라나서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다리에 무리가 간다는 걸 알기에 포기했다.

그렇게 집을 나선 깨달음에게서는

거의 2시간이 되어가도록 연락이 없었다.

8월 17이면 다리에 골절을 입은 지 딱 2달이 된다.

뼈가 잘 붙었는지는 다음 주 예약된 정형외과에서

엑스레이를 찍어봐야 알겠지만

기분상? 붙은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예전처럼 표나게 절뚝거리지는 않지만 아직까지

왼발에 온전히 힘을 줄 수 없어 약간, 미세하게

힘을 배분해 나눠 걷는데 여전히 어색하다.

그리고 제일 곤란한 것은 장거리를 걷다 보면

바로 통증이 올라온다는 것이다. 

힘 조절을 하며 평지만을 조심조심 걸어도

집 앞의 쇼핑몰까지가 한계이다.

또 짐이 든 쇼핑백을 들고 걷는 게 힘들어

아주 가벼운 식재료만 사 오게 되다 보니

우유를 포함한 용량이 있는 식료품들은 

깨달음에게 부탁하게 되었다.

그래서 깨달음은 내 카드를 아주 맘껏?

사용하며 혼자 쇼핑을 즐기고 있다.

집을 나선 지 2시간 20분이 흘러서야 보내온

카톡에는 전라도 김치, 치즈 닭갈비 가게,

왕만두 사진과 함께 사진 속에 필요한 물건이나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알려달라는 거였다.

바로 전화를 걸어 2시간 동안 뭐했냐고 물었더니

백종원 홍콩반점에서 짬뽕 한 그릇 먹고

공유가 주인공으로 나왔던 커피 프린스라는

커피숍을 찾으려다 못 찾고 그냥 다른 곳에서

 차를 한 잔 했다면서 긴급사태 선언 중인데도

10대, 20대 커플들이  엄청 많이 나와 있다며

2층에서 그들이 뭘 먹는지 내려다보며

있다 보니 시간이 훌쩍 가버렸단다. 

[................................... ]

다시마와 잡채, 부침가루를 부탁하고

약 30분이 지났을무렵 쇼핑을 마쳤다며 사진을

보내왔는데 꼬리뼈가 3팩이나 들어있었다.

꼬리뼈 얘긴 안 했는데 또 넣은 걸 보니

 먹고 싶다는 뜻일 것이다.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그냥 카드를 회수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꾹 참았다.

https://keijapan.tistory.com/1489

 

남편이 먹고 싶어 나열한 음식들

 아직 완치되지 않은 다리를 하고 움직일 생각은 아예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내가 직접 가야만 했고 미룰 수 없었다. 습관처럼 택시를 타고 신주쿠로 향하는데 휴가를 즐기려는 인파들로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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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지막 사진은 코리아타운 갈 때마다

사고 싶어 했던 양은냄비 사진이었다.

분명,,, 살 것 같은 불길한 생각이 스쳤지만

이것도 아무 말하지 않았다.

https://keijapan.tistory.com/1475

 

일본인이 한국 라면을 먹을 때

2주 전부터 깨달음이 코리아타운을 한 번 가자고 했지만 난 가야 할 이유를 찾지 않았다. 그곳에 가야만이 살 수 있었던 한국식재료나 냉동식품들이 요즘은 웬만한 대형마트에 가면 구매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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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온 깨달음은 한껏 들뜬 표정으로

요즘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하라주쿠(原宿)랑

신오쿠보(新大久保 코리아타운) 가지 말라고

한다는데 나보고  들어봤냐면서 그 말이

사실이더라고 완전 젊은이들의 성지가

되어버렸다면서 코로나가 무섭지도 않은지

삼삼오오 모여서 먹고 사진찍는 걸 위에서

내려다보는데 전혀 지루하지 않았단다. 

[ 예전에는 치즈 핫도그가 인기였는데 지금은

떡볶이랑 양념통닭을 가장 많이 먹었어. 

일본애들도 이젠 매운 게 익숙해졌나 봐.

부모들이 말리는 이유를 알겠더라구 ]

[............................................... ]

https://keijapan.tistory.com/1397

 

그녀의 자존감을 높여준 한국요리

코리아타운이라 불리우는 신오쿠보역 개찰구에  들어서자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9월이 시작된 첫주말, 여전히 한여름처럼 33도를 향해가는 날씨탓에 그녀는 손수건으로 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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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를 바꾸려고 왜 양은냄비는 안 샀냐고 

했더니 좀 망설였는데 그냥 안 샀단다.

아무튼, 대신 쇼핑해줘서 너무 고마운데

 이제 카드를 돌려달라고 했더니 약간 당황한

표정을 하면서 자기 지갑을 만지작거렸다.

[ 깨달음, 이제 내가 쇼핑할 수 있을 거 같아서,

그리고 주문하는 게 편하고 빠르잖아 ]

[ 아니야,, 당신은 아직 좀 힘들어. 그니까 당분간

내가 다 할게, 나도 살림 잘할 수 있어. 

오늘 양은냄비도 안 샀잖아 ]

파김치도 나를 위해 샀고 꼬리뼈도 나를 위해

샀다면서 자기를 위해서는 안 샀다는 걸

강조했지만 코리아코리아타운 갈 때마다

버터와플이랑 고구마과자를

잊지 않고 사왔고 영수증에 박카스를

한 병 샀던 흔적도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 그럼,, 이제부터 내가 주문한 것만 살 거지? ]

[ 응, 주문한 거 외엔 안 살게 ]

 깨달음에게 카드를 맡긴 후로 딱 2배로

식비와 생활비가 뛰었다. 하지만, 아픈 아내를

대신해 쇼핑 대행을 하는데 자기가

먹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은 어느 정도

자유롭게 사는 재미가 있어야 되지 않을까 싶어

지금까지 그냥 눈감아줬는데 조금만 더 

아내의 카드 맛을 즐기도록? 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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