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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

사람을 용서하는 게 그리 쉽지만은 않다.

by 일본의 케이 2015.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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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우체부 아저씨가 건네 주신 소포를 받고

싸인을 하면서 얼핏 보낸이의 이름을 봤다.

그 이름을 보자마자 내 심장이 요란스럽게 뛰기 시작했고

한순간 온 몸의 피가 목덜미를 향해

 초고속으로 회전하는 느낌을 받았다.

내 학위 논문 지도교수였다.

졸업을 하고 5년을 맞이하는데도 난 이 교수 이름만 봐도

내 몸에 있는 온 신경세포가 날카롭게 거부반응을 보인다.

 

매해 연말이면 지도교수를 포함,

나와 관련된 학교, 학회, 협회 모든 분들께

연하장과 함께 작은 선물을 보내드린다.

지난 한 해를 감사드리고 새해에도

잘 부탁드린다는 의미로...

그 분들 중엔 말 그대로 인사치레로 드리는 분들도 계시고

은사님으로써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파 보내드리는 분이 계신다.

 이 교수님은 전자에 속하는 분이셨다.

다른 분들도 그렇지만 내가 감사로 보내드리는 연말 선물은

특별히 그에 대한 답례를 보내주시거나 그러지 않는다.

이 교수님 역시도 이제까지 늘 그래왔었는데 올 해는 무슨 일로?

무슨 의도로 뭘 보내셨는지 오만가지 생각이 혼란스럽게 스쳐지나갔다.

여전히 내 이름 뒤에 사마라는 극존칭을 쓰는 것부터

기분이 유쾌하지 않았다.  

 

학위를 받기 위한 3년간,,, 참 많이 힘들었다.

공부로, 연구로 힘든 것 보다는

이 교수님과의 하루하루가 내 피를 말렸던 나날들이였다.

내가 일본인을 싫어하게 만든 첫번째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나와 코드가 맞지 않았고, 빼지도 박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이 교수 밑에 있어야만 했던

그 3년을 다시 떠올리는 자체만해도 혈관이 확장되는 순간들이다.

 

태어나 처음으로 [굴욕]이 무엇인지 맛보게 하시고

진정한 [차별]이 무엇인지 경험하게 하시고

[멸시]가 어떤 느낌인지 처절하게 느끼게 하시고 

[치욕]이 얼마나 가혹한 형벌인지도 체험하게 하신 분.

내 스스로 정신과를 찾아가게 만드셨던 분.....

그 당시 깨달음도 알고 있었다.

보다 못한 깨달음이 교육기관에

신고를 하라고 할 정도였다. 그래도 난 참았다.

자기가 대신 해주겠다고 그 교수님이 내게 보낸 메일을

공개하라고, 그 문제로 깨달음과 많이 다투기도 했었다.

그래서 난 아직도 이 교수 이름만 봐도 경기를 일으킨다.

그런 분이 이렇게 초콜렛을 보내셨다.

저녁무렵, 연구실 후배에게 전화를 해봤더니

 그 교수님이 몸이 편찮으시다는 말을 했다.

 누나에게 참회하는 마음이 생긴 게 아니겠냐고

매번 자길 볼 때마다 내 안부를 묻곤 하셨다고

그냥 좋게 생각하라고 덧붙히는 후배. 

 

퇴근한 깨달음에게 당신이 처리하라고 그랬더니

아무말 없이 자기 책상으로 가져간다.

초콜렛을 먹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또 하나 집어 먹는듯 싶더니

 내 쪽으로 오는 깨달음이 말을 건냈다.

당신에겐 좋은 기억이 전혀 없는 분이긴 하지만

그 교수도 분명 심경의 변화가 있어서 이렇게 초콜렛을 보낸신 것 같다고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당신이 그 교수를 대하는 태도가

 변함 없었기에 그 분도 미안한 마음이 생긴 것 같다고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겠지만 당신을 위해서 좋은 쪽으로 생각하란다.

그래도 내 표정이 별로였는지 갑자기

목에 힘을 주고 턱을 내려 깔면서 낮은 톤으로 

어리석은 자는 용서하지도 잊지도 않는다.

순진한 자는 용서하고 잊는다.

현명한 자는 용서하나 잊지는 않는다.

[토머스 사즈]가 했던 말이라고 나보고 현명한 자가 되란다.

 [ ............................ ]

생각만해도 치가 떨린다고 하면서 이렇게 블로그에

그 교수 얘기를 쓰는 것은 당신의 마음 한 편에 그 분을

은사로써 용서하고 있다는 게 아니겠냐고

[현명한 케이씨]가 되라도 다시 말하더니

 자기 책상으로 돌아간다.

어쩌면 난 그 교수님이 주신 상처와 함께

 감사의 마음을 동시에 갖고 있어 더 피곤한지 모른다. 

누군가를 향한 미움과 증오는 내 가슴을 

새카맣게 태운다는 걸 알고 있다.

그것이야말로 내 스스로에게 치명적이기에

그냥 [용서]라는 현명한 선택을 해야만 한다.

 내 자신을 위해...하지만,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내 마음에서 놓아줄 수 있을까...

그 상처를 더 이상 붙들지 않기 위해서는 [용서]하는 것,  

그것만이 그분을 놓아주는 유일한 방법이란 걸 알지만

머리와 가슴이 따로 놀고 있다. 

깨달음이 저 쪽에서 또 뭐라고 한다.

 [ 용서는 용서한 사람을 자유롭게 해 주고

용서는 포기나 망각이 아니라 변화를 위한

적극적인 의지입니다] 라고,,.

어디서 좋은 말은 잘도 들어 외우고 있다.

[ 그를 미워하지 않는 것이 내 마음에

 상처를 남기지 않는 가장 좋은 복수]라고 하셨던

 혜민스님 말씀을 떠올리며 그 교수님을

놓아 드려야한다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용서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다시 한 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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