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째 미열과 두통으로 시달리다
오후에 병원을 찾았다.
감기일 거라 생각했는데
[갱년기 증상]이라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진단을 받고,,,
너무 우울해서 깨달음에게 전화했더니
맛있는 음식 먹으면 낫는다고
아주 가볍게 흘러 넘겼다.
갱년기라,,몸의 변화는 어쩔 수 없는 것인지..
나이는 못 속인다는 어르신들 말이
하나 틀린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속장소로 가기 위해 전철을 갈아타고
창 밖을 내다보니 하늘은 맑고 청명한데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한 낮엔 여전히30도를 넘나들고 있고
그나마 태풍이 와서 잠시 비바람을
뿌려줬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가을 준비를 서두르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주춤하게 만든다.
나는 생각지도 못한 진단을 받아
썩 기분이 맑지 않는데
깨달음은 가게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싱글벙글이였다.
자리에 앉아 내 몸의 상태를 묻기도 전에
메뉴판을 들고 낱낱히 훑어보면서
언젠가 직원이랑 런치 먹으러 왔던 곳인데
맛있어서 내게도 소개해 주고 싶은
레스토랑이라고 했다.
[ 병원에서 갱년기 증상이래..]
[ 아,,그래 ? 나이 먹었다는 소리야 ]
[ 그래도 갱년기 장애가 뭐야,,,
아직 50도 안 됐는데.....]
[ 여성호르몬 균형이 깨지면
갱년기 장애가 심하다는 얘긴 들어봤어..]
[ 남자들도 갱년기가 있다던데 당신도 그랬어? ]
[ 아니,,나는 아무렇지도 않았어..]
[ 왠지 우울해..내 몸이 내 나이를 말해주는 것 같아서,]
[ 뭐가 우울해? 그냥 나이먹으면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런거야,,
자연의 이치인데 뭘 심각하게 생각해? ]
[ ...................... ]
[ 이 피자 너무 맛있지? 파스타도 죽이거든,,
한 번 먹어보면 이 맛을 잊지 못해 ~ ]
내가 주문한 토마토 파스타도
반 이상 뺏어 먹더니 급기야 피자 조각에
파스타 소스를 접시에서 퍼 올려 작은 입을
힘껏 벌려 맛있게 먹는다.
어쩜 인간이 이렇게 잘 먹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깨달음은 내가 치료중일 때도 솔직히
혼자서 아주 잘 먹었다.
갱년기 장애라는 진단 같은 건 내 약물치료에
비하면[ 아프다]는 부류에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난 오늘 깨달음을 만나
[ 갱년기 증상 ]에 관한 얘기가 아닌
세월의 무상함, 인생의 허무함, 삶의 의미 등등
뭐 그런 이 가을의 문턱에 딱 맞는
그런 심오한 대화를 나누고 싶었는데
내 앞에 있는 깨달음은 피자를 한 판 더
시키고나서야 잠시 내 말에 귀를 귀울렸다.
[ 배 불러?]
[ 응, 괜히 한 판 더 시켰어,,,
다 못 먹겠다. 포장해 가야지~]
[ 옛 명언에 배 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라는 말이 있거든? ]
[ 알아, 근데 소크라테스도 밥 먹고 고민하거든?
배고픈 채로 고민 못해~ 그래서 난 밥 먹고
얘기할려고 했는데 뭐가 잘못 됐어? ]
[ .......................... ]
[ 많이 무심해 졌다고 생각 안 해? ]
[ 무심해진 게 아니라 서로가 편해진거지..
그리고 그건 솔직히 병도 아니잖아 ]
[ 너무 편해진 거 아니야?]
[ 이제 정말 부부로써 성숙해져가고 있다는 거지..]
[ 걱정 안 돼? ]
[ 뭘 걱정 해? 이렇게 잘 먹으면
갱년기 같은 것도 다 잊어버려~
그리고 나이 먹었음을 받아들이면 돼.
아직도 당신은 자기가 30대인 줄 알고 있으니까
그 갭이 당신을 힘들게 하는 거야,,
그냥,자기 나이도, 자기 현실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다 해결 되는 문제야
어려울 거 하나도 없어,
근데 당신이 안 받아들이려고 거부하니까
자꾸만 더 우울해지고 그런거야,,
그리고 갱년기는 병이 아니야,,,
그냥 인간이 나이를 먹으면서 순리적으로
거쳐가는 과정일 뿐이야,,노화가 되어가는
현상을 이해하고 인정해야 돼... ]
맞는 말만 골라하는 깨달음이 얄미워서
째려봤더니 이제 째려봐도
안 무섭다고 실실 웃으며
또 피자 한조각을 집어 들었다.
[ ......................... ]
당신 때문에 내 갱년기 증상이
더 오래 갈 것 같다고 그랬더니
괜히 자기 탓으로 돌리지 말란다.
요즘 깨달음은 말대꾸도 잘 한다.
옛날에는 안 그랬는데 요즘은 말도
잘 받아치고,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한다.
내가 아프다고 하면 어쩔줄 몰라
발을 동동거렸던 예전의 깨달음은 이제 없다.
아직 결혼 6년째인데,,,
다른 부부들도 다 이러겠지...
역시, 인간은 변한다.
특히 남녀사이엔 그게 부부든 연인이든..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무뎌지는 게
어쩔 수 없는 진리인 것같다.
난 정말 갱년기 얘길 하려는 게 아니였는데...
옷깃을 스치는 초가을 밤바람이
왠지 씁쓸했다.
'일본인 신랑(깨달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편이 주는 따뜻하고 특별한 생일선물 (73) | 2016.09.28 |
---|---|
남편의 취중진담 속 한국인 아내 (33) | 2016.09.24 |
남편을 설레게 만든 한국 여가수 (15) | 2016.08.31 |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본 깨서방 (27) | 2016.08.10 |
고깃집 갈 때 남편이 꼭 챙겨 가는 것 (35) | 2016.08.0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