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손강호를 너무 좋아하는 깨달음이
기다리고 기다리는 영화는[ 택시 운전사]이다.
한국에서 상영되었던 시기, 일본 영화계에서도
영화의 내용 뿐만 아니라 주인공
송강호의 연기력과 그의 매력에 관한 기사가
영화매거진에 자주 올랐다.
그렇게 [ 택시 운전사]를 기다리던 깨달음이
[밀정]이라는 영화가 상영되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가자고 했고, 난 이미 비행기 안에서
봤지만 아무말 하지 않고 따라나섰다.
영화가 끝나고 내내 말이 없던 깨달음이
게시판에 적힌 주인공들의 인터뷰를
꼼꼼히 읽어내려갔다.
[ 어땠어? ]
[ 역시,,송강호는 대단해.. 까불기도 잘하고
울기도 잘하고,,대사 없이도 몸짓과 표정으로
모든 걸 표현할 줄 아는 배우야,,,]
[ 영화 내용은 어땠어?]
[ 음,,,당신처럼 역시 한국 사람은
끈질긴 데가 있다는 걸 다시 확인 했어..]
[ 칭찬이지?]
[ 응,,,한국 사람들만이 갖고 있는 근성,
인내, 지혜, 그리고 동포애,,그런게 다른
국민들에게서 찾아 보기 힘들지..
절대로 포기하지 않아 당신처럼,,,,]
[ 칭찬으로 들을게..]
[ 맞아, 칭찬이야,,나는 그런 곤조(根性)를
안 가지고 있잖아,,어느 선에서 포기하는데
당신은 끝까지 목표 달성 할 때까지 하잖아,,
자,, 짜장면 먹으러 가자, 오늘은 짜장면 신이
없었지만, 한국영화를 봤으니 한국 짜장을
먹으러 가야하지 않겠어? ]
[ 지난번 한국에서 탕수육 먹었잖아]
[ 짬뽕은 안 먹었잖아,,]
[ .......................... ]
[ 뭐 먹어? ]
[ 탕수육, 짬뽕, 볶음밥 ]
[ 짜장 먹는다며? ]
[ 추우니까 얼큰한 짬뽕으로 먹을거야, 짜장은
볶음밥 시키면 얹혀 나오니까 그거 먹으면 돼~ ]
저녁시간이 되고 손님들이 밀려오면서
탕수육을 기다리는 시간이 약간 길어졌다.
옆 테이블에는 짜장면들이 나오고 깨달음은
단무지를 계속 집어 먹었다.
[ 배 고파? ]
[ 응, 배 고파..저 옆에 짜장은 좀 다르네..]
[ 간짜장이야,,양념들을 따로 볶아서 더 고소해 ]
[다음엔 저거 한 번 먹어봐야겠어.]
[ 시킬까? ]
[ 아니, 오늘은 짬뽕이야, 추우니까~]
탕수육이 나오자 내가 사진을 찍으려는데
빨리 찍으라며 젓가락을 들고 재촉했다.
[ 너무 맛있다~역시, 이 집 탕수육은
내 입맛에 딱이야, 어설픈 한국
중화요리집보다 여기가 훨씬 더 맛있는 것 같애..
내 입맛이 여기에 길들여졌나 봐,,
지난번 어머니 집에서 먹은 탕수육보다
여기가 고기도 더 두껍고 맛있어..]
[ 알았어..]
[ 걸쭉한 소소랑 이 적당한 달달함이 식욕을 돋구게 해]
[ 많이 먹어...]
두 개쯤 먹고 있을 때, 따끈한 짬뽕도 나오고
뭘 먹어야할지 약간 헷갈린 깨달음이
자기 앞으로 그릇을 당겨서는 면을 먹기 시작했다.
[ 주방 바뀌었나? ]
[ 아니 그대로야 ]
[ 오늘 완전 맛있는데~~]
고개를 돌려 주방쪽을 몇 번 기웃거리면서
엄지를 척 들어올렸다.
[ 그렇게 맛있어? ]
[ 응, 해산물도 많아졌고, 국물이 끝내 줘 ]
한번 먹어보려는데 마침 볶음밥과 함께
짬뽕 국물이 나왔다.
[ 진짜 맛있다, 당신도 맛있지? ]
[ 응 ]
[ 오늘은 면도 더 쫄깃해~주방 식구 진짜
바뀐 거 아닐까? ]
[ 아니야, 내 쪽에서 보면 보이는데 그대로야,,
저 면 뽑는 사람만 바뀐 것 같애..
머리 염색을 해서 헷갈리나..]
[ 그것 봐, 오늘은 면도 쫄깃쫄깃하다니깐 ]
[ 알았어..많이 먹어..]
내 볶음밥을 한 번 먹겠다는 말도 없이
자기 것처럼 숟가락으로 짜장 소스를 푼다음에
볶은밥을 조심히 올린다.
[ 굿~~~!!]
[ .......................... ]
그렇게 아주 잘 먹고 나오면서
난 참지 못하고 물었다.
[ 당신, 짬뽕에 있는 새우 있잖아,,나한테
한마리도 안 준 거 알아? ]
[ 내가 물어봤잖아? 먹을 거냐고? ]
[ 면을 안 먹는다는 소리였지..새우 한 마리
먹으려고 봤더니 건더기 하나도 없던데?
새우 좋아하는 거 알면서,,,]
[ 오늘 새우는 입에서 살아있는 것처럼
탄력있고 맛있었어 ]
[ 그래서 안 줬어? ]
[ 음,,먹다 보니까 그렇게 됐어..]
[ 옛날에는 참,,나한테 먼저 먹으라며 권하고
따로 남겨놓고 그러더니 요즘은 좀
그런 게 많이 없어진 것 같애..]
[ 음,,이번에는 솔직히 깜빡했어..]
[ 원래 그런건 몸에 베인 습관처럼 하는 배려인데
그걸 깜빡했다는 것은,,아내보다 당신의 식욕이
앞섰다는 거네..]
[ 응, 그랬는지 몰라, 너무 맛있었거든,,ㅎㅎ]
[ ....................... ]
별 거 아닌 것 처럼 웃고 넘어가는
깨달음이 얄미웠다.
아직 10년도 되지 않은 결혼생활인데
언젠가부터 깨달음이 특히 먹거리 앞에서
나를 먼저 챙기거나 나에게 음식을 양보하거나
그런 자상함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 당신,,진짜 좀 변했어..지난주에도 닭튀김
당신이 거의 다 먹었잖아...]
[ 그러고 보니 그랬네.그 때도 진짜 맛있긴 했지
이제부터는 당신 거랑 내 것을 따로 주문할까? ]
[ 그런 얘기가 아니잖아,,,]
[ 알았어.근데 나도 요즘 늙었는지 맛있는 걸 보면
약간 이성을 잃은 가 봐..나 밖에 안 보여~]
자기밖에 안 보인다는 말을 하는 깨달음에게
그 이상 묻지 않았다.
깨달음이 블로그를 보고 무슨 내용이냐고 묻는다.
[ 변해버린 당신 얘기야... ]
[ 무슨 얘기? ]
[ 점점 무관심해지는 듯한 남편의 모습을
적는 거야, 자신이 조금 변했다고
생각 안 들어? ]
[ 변한게 아니야,,솔직히 진짜 맛있었어. 한국보다
훨씬 맛있었고, 추운데 국물도 뜨근뜨근해서
당신을 챙길 생각이 잠깐 안 들었던 거야,,,
그건 내 잘 못이 아니야, 너무 맛있게 만든
그 집이 문제야~내가 오죽하면 남은 짬뽕 국물을
싸달라고 하고 싶을 정도였어....
그 정도로 맛있었어.. 근데, 당신,,
송강호보다 더 끈질기다....
그냥 넘어가지,,꼭 그럴 블로그에 적어? ]
[ 응,,당신의 모든 행동을 다 적을 거야 ]
[ 역시,,송강호보다 더 무서운 사람이야,,
끝까지 물고 늘어져,,,...]
[ ........................... ]
아내를 잠시 잊게 할 만큼 한국음식에 빠져
맛있게 먹은 건 고맙도, 예쁘고, 감사하지만
약간 변한 건 변했다.
그게 아니라면 원래 깨달음이 나눠먹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일본인 특유의 습관이
결혼 7년만에 다시 나왔는지, 나이를 먹으며
식욕이 넘쳐나면서 본능에 충실하기로 했는지
이곳에서 자주 먹지 못하는 한국 중화요리 앞에서
아무 생각이 안 났는지
정확한 분석을 하긴 힘들지만 변했다.
아주 작은 것들이지만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서로에게 무디어져가고 자신이 먼저가 되가는 게
부부로 살아가면서 자연스레 익숙해져야하는데
오늘 깨달음의 태도는 왠지 낯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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