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월요일, 퇴근하고 5시 뉴스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티브이가 먹통이 되었다.
뭔가 뚝 끊어지는 소리와 동시에 화면은
나오지 않고 소리만 들려서
여길 만져보고 저길 두드려도
전혀 반응이 없었다.
한 시간 후, 퇴근하고 돌아온 깨달음이
좀 맞아야 말을 들을지 모른다며 손바닥으로
툭툭 때려보았지만 여전히 무반응.
라디오라고 생각하고 일단 전원을 켜 둔 상태로
설명서를 읽어 내려가는데 연식이 오래되면
나타나는 증상이며 수리를 맡겨야 한다고 적혀
있는데 생각해보니 우리가 결혼하고 샀으니
10년이 넘었고, 그것은 이미 수명이
다 됐다는 뜻이었다.
새것을 사야 될 것 같아서 신형 모델을
검색하는데 옆에서 깨달음이 정말 티브이
수명이 10년 정도인지 확인해 보겠다며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는 마른걸레로 앞 뒤를 깨끗이
닦으면서 일단 주문해서 새것이 올 때까지는
그동안 뉴스는 봐야 하니까 내 방에 있는
작은 티브이라도 놓아야 될 것 같다며
가져와서는 연결했다.
그렇게 4일을 작은 티브이로 보내다
목요일 퇴근길에 만나서 주문을 하고
오늘 아침에서야 기사님이 오셨다.
기존 사이즈보다 약간 큰 걸로 샀더니 장식장 위에
꽉 찰 것 같아 일단 오디오를 치워두었다.
요즘은 컴퓨터 기능을 장착하는 모델이
많아졌다며 넷플릭스, 유튜브는 물론 각종
동영상 사이트를 편히 볼 수 있는
신형이어서 많이 간편했다.
약 20쯤 걸려 설치가 끝나고
깨달음과 나는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와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둘이서 함께 정기점진을 받기 위해서인데
요즘 깨달음이 많이 피곤한 것도 있어
검사 항목을 늘리다 보니 서둘러야 했다.
로비에 도착해 깨달음은 먼저 진료실로
들어갔고 내가 이비인후과에 갔다가
채혈을 하고 나서도 거의 두 시간 넘도록
깨달음은 나타나지 않았다.
검사가 오래 걸리는 건지, 궁금해 접수처에
물었더니 거의 끝나고 상담 중이라고 했다.
오늘따라 유난히도 병원을 찾은 사람들이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많아 젊은 나만
머쓱하게 앉아 있었다. 내가 이분들이
어디가 아파서 오셨는지 궁금한 듯
이분들도 젊은 애가 뭐 때문에 왔는가 하고
궁금해하는 눈빛이었다.
내가 핸드폰으로 시선을 돌려 열중하는 동안
깨달음이 나와서 다 끝났다며
계산하고 나가자고 했다.
우리 병원 근처 중화요릿집에 들어가
점심을 먹었다.
무슨 상담을 했는지 결과는 어땠는지
묻기 전에 깨달음은 별 일은 아니었고
건강에도 아무 일 없다고 말했다.
[ 상담이 길어진 거야? ]
[ 응, 지난번 요도결석 수술했을 때 그 담당의랑
얘기하다 보니까 이런저런 세상 사는 얘기까지
하게 되면서 시간이 훌쩍 가버렸어 ]
인간이 나이를 먹어갈수록
몸 구석구석이 삐그덕 거리기 시작하면서
수리를 해야 하고 뜯어고쳐야 할 곳이
생긴다면서 작년 겨울, 회사 계단에서
미끄러져 무릎을 부딪혔던 게 괜찮더니
지금에 와서 쑤시고 시려서 오늘
엑스레이를 찍어봤는데 엑스레이상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욱신거리는 것은
나이에서 오는 거라고 의사가 말했단다.
[ 기계인 테레비 수명이 10년인데 나는
60년을 넘게 써먹고 있으니 얼마나
몸이 힘들겠어.. 그래서 그냥 의사말대로
나이탓이러니 하고 생각하기로 했어 ]
[ 통증 완화시켜 주는 팩 같은 걸
무릎에 붙이는 건 어때? ]
[ 그것도 얘기했더니 그걸 붙이면
심리적으로 나아진 것 같은 생각만 들 뿐
근본적인 치료는 되지 않는대.
엑스레이상은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까 ]
그리고 요로결석 검사도 했는데
지금은 문제가 없지만 생활습관을
바꾸지 않으면 또 걸릴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했단다.
커피숍으로 옮겨 몽블랑을 먹으며
작년까지만 해도 자신이 늙었다는 생각을
거의 해보지 않았는데 올해 들어서는 몸이
노화되어가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됐단다.
나이를 먹어가는 건 그만큼 육체도 따라
늙어가는 게 당연한 순리인데 항상 건강에
자신이 있어서 못 느꼈던 것들이 60이라는
나이를 넘기고 나니 몸의 노화가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며 그래도 자긴 괜찮단다.
[ 뭐가 괜찮아? ]
[ 나이에서 오는 인생의 멋이라는 게 있잖아,
늙음의 미학처럼 노련하면서 여백이 있고,,
여유롭고,, 마음은 여전히 40대니까 ]
[ 40대? ]
[ 응, 난 내가 40대로 생각하며 살아 ]
[ ........................... ]
마음과 육체가 똑같이 늙었다고 생각하면
삶이 위축되니까 죽는 날까지 젊은 패기와
기상으로 살아갈 거란다.
깨달음은 어릴 적부터 사춘기도 없었고
갱년기, 그리고 그 흔한 오십견도 없이
지나갈 만큼 정신적, 육체적으로 나보다
훨씬 건강하고 긍정적이었다.
그래서인지 몸이 고장 나기 시작하는 지금도
저렇게 젊은? 생각들을 가지고 있어
잘 버틸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깨달음이 앞으로도 40대 기분으로 살아간다니
난 어떻게 그에게 조율해야할지
모르겠지만 한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젊게 사고하며 사는 게 중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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