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이곳은 춘분의 날로 휴일이다.
우린 모처럼의 연휴인데도 특별한 스케쥴이 없어
봄맞이 청소를 했다.
그러고보면 우리부부는 휴일만 생기면
청소를 하는 것 같다.
깨달음은 거실 창문을 닦기로 하고
난 늘 그렇듯 버리기에 들어갔다.
고층에 살면 좋은 점도 많지만
거실 창문을 자주 닦아야한다.
그래야 야경도 잘 보이고,,
[ 나도 같이 나갈까?]
[ 아니,,혼자해도 돼 ]
[ 그럼 난 내 방에 들어갈게]
읽었던 책, 작년에 한번도 입지 않았던 옷들,
한보따리를 밖에 내 놨다.
내가 너무 많이 버리는 것이 염려되는지
몰래 감시하듯 내 방을 한 번 내다봤지만
물건이 많아 쌓여있는 게 싫은 난
미련없이 버렸다.
방청소가 깔끔히 끝나갈무렵
아주 깨끗이 거실 창문이 닦여 있었다.
그리고 배란다에 있는 우리집 텃밭?에
손을 대며 묻는다.
[ 올해는 상추는 안 심어? ]
[ 음,난 기분탓인지 화분에서 자란 상추가 별로
맛이 없더라구, 그래서 올 해는 안 할생각인데 ]
[ 그래도 씨가 이렇게 많이 남았는데?
상추가 싫으면 깻잎만 하던지? ]
[ 깻잎도,,별로,,,]
[ 상추는 슈퍼에서 바로 사지만 깻잎은
코리아타운 가야 살 수 있잖아,
그니까 심는 게 좋을 것 같아~
상추랑 깻잎 내가 적당히 알아서 심을게 ]
내가 주춤거리는 사이 깨달음 오른손이
고랑을 만들어 씨를 뿌리기 시작했다.
[ 두 종류만 심을 거야, 비빔밥 먹을 때나
삼겹살 싸먹을 때 깻잎 있으면 더 좋잖아]
[ 그래...당신이 알아서 해..]
거실 창문도 깨끗이 닦고 씨앗도 예쁘게
뿌린 깨달음이 점심메뉴로 요청 한
신라면을 준비했다.
[ 맛없어? 야채 많이 넣었는데
오늘은 반응이 별로네 ]
[ 아니, 맛있어..파김치랑 먹으니까
너무 맛있는데 실은 먹고 싶은 게 따로 있어서,,]
[ 뭐?]
[ 만두,,,,]
[ 그럼 지금 만두 구워줄게]
[ 아니,,그거 말고 한국 만두,,
생활의 달인에서 지난번에 나 온 만두,,
그게,,,너무 먹고 싶어...]
즐겨보는 한국 방송 3대천왕을 볼 때도 소개되는
모든 가게에 가고 싶어했는데
생활의 달인이란 프로를 보기 시작하면서부터
서울 뿐만 아니라 전국각지에
종류별로 맛집이 엄청 많다는 걸 알게 된
깨달음이 그렇게 좋아하는 신라면조차도
오늘은 만족을 못하는 듯했다.
[ 생활의 달인이랑 3대천왕에 나온
맛집 투어를 하고 싶어.. 3박4일 정도..
서울에 있으면서 여러군데 돌아다녀보고 싶어,,
가족들에게 알리지 말고,,,]
[ 우리끼리 가서 달인집 투어하자는 거야?
가족들 모르게 ? ]
[ 응,가족들이 알면 서로 데리고 가려고 하고,,
그니까 우리 마음대로 못 가잖아..]
[ ........................... ]
[ 달인집 종류가 많은데 뭐 먹을 건데?]
[ 만두가 가장 먹고 싶어,다음으로는 칼국수,
그리고 빵집에도 가 보고 싶어..]
[ 몇시간 기다리고 그래도 괜찮아? ]
[ 기다려서 먹는 게 더 맛있지 ]
[ 아,, 떡볶기도 한 번 먹고 볼까? ]
우리 부부는 둘 다 떡볶이를 좋아하지 않아
한국에서도 그리고 이곳 일본에서도
한번도 떡볶기를 먹으려 하지 않았다.
[ 떡볶기 달인들 보면 할머니들이
잠도 제대로 못자고 재료선택이며
조리방법까지 고생고생하시며 만들잖아,
그래서 한 번 먹어보고 싶어,,
그렇게 정성들인 맛은 어떤지 궁금해.]
[ 알았어,,그럼,,먹거리 투어를 하기 위해
가족들 몰래 잠깐이라도 다녀 오자는 거네? ]
[ 응,가족이 알면 우리가 가고 싶은데 못 갈거야
내가 먹고 싶은 음식들 목록을 정리할테니까
당신은 그 달인집을 찾아 놔,
그런 다음 이동거리를 줄여가면서 움직여야하니까
호텔은 지하철 노선이 제일 편한
2호선쪽으로 잡고,,, ]
[ 알았어, 라면 퍼 져,,얼른 먹어 ]
[ 아, 밥종류랑 면종류가 겹치지 않게
가야할 곳을 잘 검색한 다음,
아침과 저녁시간대로 나눠서 가야하니까
장소 파악이랑 음식종류를 잘 짜서
스케쥴을 만들어야지 짧은 시간에 많은 종류의
달인집을 갈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당신이
그 집 주소, 이동 거리가 어느정도 되는지
미리 파악해 주면 좋겠어,
아마 경기도까지는 갈 수 있을 거야~]
[ ........................... ]
[ 아, 라면도 먹어 보고 싶어, 일본에서 배워서
한국에서 히트 치는 걸 보면 일본이랑
조금은 맛이 다를 것 같애. 그니까
일본인인 내가 맛을 한 번 보고싶어 ]
[ ............................. ]
아주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생각한 게 분명하다.
만두, 떡볶이, 꽈배기, 김밥, 크로와상,
칼국수, 양념통닭, 짬뽕,,,,
이것들을 먹으러 가족들에게는
알리지않고 몰래 한국을 다녀오자고 하니...
[ 진짜 가고 싶어? 언제 가? 서로 시간이 없잖아 ]
[ 시간은 만들면 돼~그대신 절대로
가족들 몰래 가야 돼~
나중에 알면 서운해 하시니까...
아, 이번 생일선물은 이 한국투어로 해 줘,
당신, 나한테 생일 선물 아직 안 해줬잖아,,]
[ ......................... ]
깨달음은 먹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
그리고 이젠 맛있는 것만 찾아 먹으려고 한다.
보통으로 맛있는 게 아닌, 정말 아주 맛있는 것을,
장소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먹거리투어를 하고 싶어하니..
생일 선물 필요없다고 하더니 이런 황당하고
치밀한 계획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내가 이렇게 블로그에 적었다는 걸 알면
분명 작전실패했다고 작은 눈으로
날 노려볼 것이다.
하지만,,,정말 깨달음 바램처럼
아니, 생일선물로 가족들에게는 알리지 않고
조용히 바람처럼 갔다가 원하는만큼,
질릴만큼 먹게하고 돌아와야 될 것 같다.
생일선물이 약간 계산적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해줘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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