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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커플들 이야기

남편에게 괜시리 미안해지던 밤

by 일본의 케이 2019. 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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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샷포로역입니다, 택시 타고 바로 갈게요 ]

 택시 안에 시계는 저녁 8시를 막 넘어가고 있었다.

지난번에 깨달음의 수술로 인해 오지 못하고

 취소했던 이자카야에 이번에는 늦여서

 죄송하다는 전화를 해야했다.

회사일을 마치고 공항에서 4시에 합류,

5시 비행기가 느닷없이 연착되는 바람에 

예약시간을 맞추지 못했다.

가게에 도착하자 모든 스텝들이 아주

반갑게 맞아주며 도쿄에서 오시느라 고생했다고

 들고 있는 짐들을 챙겨준다.


일단 맥주로 건배를 하고 깨달음이

내가 좋아하는 성게알, 가리비, 문어, 소라

 사시미를 주문했다.

[ 깨달음, 당신이 좋아하는 것도 시켜 ]

[ 아니야, 난 맨날 먹잖아, 홋카이도 산은 

맛이 전혀 다르니까 당신 입에도 잘 맞을거야 ]

20년 가까이 이곳에 살고 있지만 난 아직도

왠만한 사시미를 거의 먹지 못한다. 하지만

갑각류계열이나 조개류는 조금씩 먹을 수 있어

내가 먹을 수 있는 걸로 주문을 해주었다.

[ 어때 맛이?]

도쿄하고는 많이 다르네, 단 맛이 나 ]

[ 그렇지?]

[응 ] 


맥주를 비우고 정종으로 다시 건배를 하면서

우린 이날 저녁 머물러야할 호텔에 관한 정보를

서로 공유하고 관광사업과 호텔사업의 관계성,

각 호텔이 가지고 있는 경쟁력에 대한 얘길 나눴다.

그리고 언니와 동생이 보내준 추석상 사진을

보기도 하고 조카가 낳은 아이 사진과 동영상을

 보면서 깨달음이 우리가 아이를 낳았으면 어떻게 

됐을까라는 돌발 질문을 내게 던졌다.

우린 결혼을 하고 서로 나이가 있어서 아이를

낳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었다.

꽤나 많은 고민들과 계산을 했던 결과,

낳지 않는 걸로 결론을 내렸고 그 결정에 크게

후회를 한다거나 그러진 않았었다.

그런 결정을 내린 가장 큰 이유로는 역시나 

우리의 나이가 너무 많은 것에 대한 리스크였고 

그 리스크를 뛰어 넘는다해도 아이의 성장과 함께 

미래를 책임질 자신이 없었던 것이였다.

[ 왜? 갑자기 그런 얘길 해?  ]

[ 아이를 보니까 혹 우리가 결혼하고 바로 

낳았으면 7.8살쯤 되서 학부모가 되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그냥,,]


[ 깨달음, 안 낳은 걸 후회해? ]

[ 아니,,아이 낳았으면 우리 둘이 이렇게

여기저기 같이 다니지지도 못하고 생활이 180도

바꿨을 거야, 우리의 결정이 옳았다고 생각해 ]

우린 그 당시 서로의 생활, 자기 발전을 더 

중시했던 생각들이 아이를 낳지 않은 쪽으로 

기울었던 것도 사실이다.

우리 둘이서 조금은 편하게 노후를 지내자는 뜻도

같았고 70이 되어서도 아이를 위해 일을 해야하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것도

 서로의 속내에는 들어 있었다. 

시아버님은 결혼하고 바로 아이에 대해 딱 한번 

물으셨고 우리 친정 엄마는 2년동안 아이는

낳는 게 좋다며 내게 설교를 했었다.

하지만 우린 그 결정에 흔들림이 없었고

지금도 아주 잘 살고 있다.

물론 아이가 있었으면 또 다른 인생을 맛보고

살겠지만 우린 둘만의 편한?인생,

개인적인? 인생을 택한 것이였다.


[ 근데, 당신은 우리가 젊었을 때 결혼했으면

아이를 낳았을 것 같애? ]

깨달음의 질문에 나는 노라고 대답을 했는데

자기는 젊었으면 낳았을 거란다.

[ 예쁜 딸을 낳아서 김연아처럼 피겨 스케이팅이나

송가인처럼 국악을 배우게 했을 거야 ]

[ ................................ ]

[ 자식은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래 ]

[ 꿈이라도 그렇게 꾸고 싶은 거야..]

피아니스트를 만들어 자식과 함께 세계를 누비는

부모가 되어보기도 하고, 스포츠를 잘해서

올림픽에 내보내는 부모가 되었다가 외교관을

 만들어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자식을 

만들자는 이루워지지 못할 꿈들은 나열했다.

우리는 가상 자식을 한명씩 만들어 놓고 

뭘 가르쳐서 어떤 사람을 만들고 싶은지

허무맹랑한 얘길 하며 술잔을 기울렸다.


그렇게 우린 장장 2시간을 넘게 그곳에서 

허무한 꿈을 꾸다가 장소를 옮겨 또 술을 한잔씩

더 하고 호텔에 도착했을 때는

 11시가 넘어서였다. 취기가 돌았지만 

차를 한잔씩 하며 하루를 정리했다.

[ 깨달음, 아이를 꼭 낳자고 하지 않아서 고마워]

[ 아니야, 다음 생에서 당신을 만나게 되면

그 때 예쁜 딸을 낳으면 돼.근데 당신 닮아서

 꼬장꼬장한 아이가 나올까 봐 걱정이야 ]

[ ................................. ]


내가 째려봤더니 자기가 말해 놓고도 좀 그랬는지

커피를 질질 흘리면서 웃는다.

 이자카야에서 바로 자리를 옮겨 술을 마시면서

깨달음은 딸을 한 명 꼭 낳고 싶었다는

 진실고백을 했다. 

[ 정말,,귀여운 딸을 낳으면 나 혼자서도 키울 수

있을 것 같았어. 당신이 낳아주기만 하면...

근데 당신이랑 결혼 초에 낳지 말자고 결론을

 내서 강력하게 말을 못했어...]

깨달음은 딸이 너무 갖고 싶었단다. 딸이 낳고 

싶다고 낳아지는 건 아니지만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딸을 낳고 싶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내 몸이 많이 힘들어질 것

같기도 하고 자기 좋자고 아내의 몸을

무리하게 혹사시킬 수없다는 생각에 

 딸 낳기를 포기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도 많이 행복하다며 다음 생엔

자기가 여자로 태어날테니 나보고 남자로

태어나라면서 그러면 자기가 3명정도

예쁜 여자아이를 낳을 거란다.

딸이 갖고 싶었다는 깨달음의 진실고백이

 조금은 안타깝지만 자식이 없는 이 또한 우리 

부부의 운명이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도 자꾸만 깨달음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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