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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커플들 이야기

어른들도 노는 건 다 똑같다.

by 일본의 케이 2019.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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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달음, 오늘,,우리 뭐 하지? ]

[ 음,,어디 가면 재밌을까? ]

추석연휴(이곳은 8월15일이 추석)가 시작되고

3일이 지났다. 그 3일동안 우린 서로 각자가

 하고 싶은 일들을 자유롭게 했다.

공부를 하기도 하고 책도 읽고, 잠을 자고, 

취미생활을 하며 상대가

무엇을 하던 전혀 터치하지 않은 시간, 

독신과 같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4일째 

되는 오늘,이젠 둘이서 놀아볼까라는

생각을 서로 하면서 어디서 뭘 할까,

궁리를 해도 좀처럼 좋은 아이디어가 없다.

연휴여서 쉬는 곳도 많고 영화관, 미술관, 

쇼핑은 늘 하던 것이고 특별히 어딜 가면 

휴가다움을 느낄까 둘이서 고민을 했다.

[ 깨달음, 추석이니까 추석음식 만들어서

그냥 집에서 먹고 쉴까? ]

[ 그건 한국 추석날하면 좋지 않아? 일본은

추석이여도 특별히 먹는 요리가 없어 ]

[ 그럼 뭐가 좋을까..]  

[ 추석 분위기가 느껴지는 시장 가볼까?]


의견일치가 되고 바로 옷을 갈아입고

 우린 우에노로 향했다. 우에노역에 있는

 아메요코는 도쿄를 대표하는 재래시장이다. 

오카치마치역까지 400미터에 이르는 시장으로

 골목마다 다양한 상점들이 밀집해 있어

 볼거리, 먹거리, 특히 저렴한 물건들이 많은 것도

 매력이며 무엇보다 다른 시장과 달리 

흥정이 가능하고 덤을 많이 준다는 장점에

관광객뿐만 아니라 일본인들도 이곳을

자주 찾는다. 우린 그냥 추석분위기를 

맛보려고 왔기 때문에 특별히 장을 볼 게

 없었지만 붐비는 사람들 틈에 상인들이 손짓을

 하거나 목청높여 손님을 부르는 소리가 명절같은

 느낌이 많이 들었다. 주점과 식당에는 

대낮부터 손님들이 가득했고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는 손님들은

서로에게 건배를 권하며 싱글벙글이였다.


생선가게를 지나던 깨달음이 조기가 

있으면 좀 살거냐고 묻는다.

[ 한국에서 먹었던 영광굴비를

 찾는다면 없을 걸...]

두리번 거리며 찾아봐도 조기는 없었고 그냥 

포기하고 우리도 더위를 식힐겸 식당에서 

홉피(소맥)로 간단히 목을 축였다.

[ 여기 오니까 좀 추석 분위기는 난다 ]

[ 응,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네 ]

[ 일본은 추석때 뭐 특별한 음식 안 먹어? ]

[ 응, 지역마다 음식이 다르긴 한데 원래

( 쇼진요리-精進料理, 불교적인 의미로 

동물적 재료를 사용하지 않고 만든요리)

 먹는데 우리집은 아무것도 없었어 ]

[ 어릴적에 뭘 먹었는지 기억 안 나? ]

[ 응,,그냥 특별한 음식이 나오진 않았어,

한국에서는 무슨 떡을 먹지? ]

[ 응, 송편 ]

[ 그럼, 이번 한국 추석날에 송편 먹자 ]

[ 응 ]


한국과 일본에서 명절 보내는 방식들을

얘기하며 남은 오후시간은 어딜 갈 건지 또 궁리를

하다가 결혼전에 한 번 가봤던 우에노 동물원을

가자는 같은 말이 나왔다.

[ 깨달음, 몇 년만이지? 이 동물원 ]

[ 우리가 사귄지 얼마 안 되고 왔던 것 같은데 ]

[ 그 때 왜 동물원을 왔을까? ]

[ 당신이 동물 좋아한다고 해서 왔던 게 아닐까 ]

[ 그런 것도 같고,,기억이 잘 안 나네 ]

그렇게 가물가물했던 옛 연애시절이

동물원 입구에 들어서자 새록새록 떠올랐다.

[ 맞아,내가 동물원 가고 싶다고 했던 것 같애 ]

[ 내 말이 맞지? ]

15년도 훌쩍 넘는 그 때 그 시절을 되돌아보면

참 순진하게 놀았던 것 같다.    


이 날도 36도까지 올라서인지

동물들도 다 지쳐보였고 더위를 피하려 

다들 우리 속으로 들어가 쉬는 동물들이 많았다. 


파충류 관람실에서 심기가 불편한 듯한 악어가

 관광객을 노려보고 있자 깨달음이 가까이 다가가 

입을 벌려 겁을 주는데 악어가 쳐다도 보지 않았다.

[ 그러다 악어가 화나서 밖으로 뛰쳐 나오면

당신 목을 먼저 물거야, 너무 가까워서 위험해]

목을 물릴지 모른다는 말에 줄행랑을

 치는데 어찌나 빠르던지 발이 안 보였다. 


그렇게 까불고 난 후 잠시 커피숍에서 몸과 

마음을 진정시켰다.

[ 오랜만에 오니까 재밌다 ]

[ 응,,재밌는데 어린 꼬마들을 데리고 온

가족들 틈에 중년부부는 우리뿐이였던 것 같애 ]

[ 응,,그래도 15년전 데이트 할 때처럼 

신선한 느낌은 있었어 ]

[ 응, 나도 좋았어 ] 


[ 응,가끔 동물원 오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애 ]

[ 나도 옛날 데이트하던 시절이 생각났어 ]

추석느낌을 맛보고 싶었다.

그래서 계획에도 없던 동물까지 찾았는데

그리 나쁘진 않았다.

이렇게 긴 휴가 주어지면 자녀가 없는

우리같은 중년부부들은

특별히 갈 곳도, 할 일도 없는 것 같다.

그렇지만 예전에 데이트 했던 장소를

다시 찾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았다.

동물원을 빠져 나오려는데 깨달음이 타조같은

 에뮤 상 앞에서 사진을 찍어달란다.

아이들이 모여 찍는 곳에서 중년 아저씨가

사진을 찍으려 기다리는 모습이 왠지 짠하게 

보였지만 동심으로 돌아간 듯한 시간을 보냈고

거 풋풋했던 그 감정도 되살아나

나쁘지 않았다

나이 먹은 어른들도 노는 건 

아이들과 별반 다른 게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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