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주방에서 달그락 달그락 소리가 났다.
뭐하냐고 쳐다봤더니 빨리 씻어라며 어젯밤에 말한 아울렛에 가잔다.
봄세일 시작했다는 얘길 자기 전에 잠깐 하길래 살 것도, 필요한 것도 없다고 그래서 안 가겠다고
분명 얘기 했는데 왠 변덕인지...
샤워를 하고 나오자, 내 가방부터 쇼핑백까지 모두 챙겨진 상태였다.
집을 나서니 코 끝으로 봄바람이 들어 온다.
신주쿠에서 아울렛 전용버스를 타고 1시간을 달려 도착.
나한테 뭐 살 것 있냐고 묻길래, 특별히 필요한 건 없는데 그래도 왔으니까 한 번 돌아보겠다고
그랬더니 그러면 자기 가고 싶은데 가자고 향한 곳이 레고가게였다.
2주전 한국에 갔을 때 태현이한테 레고선물 줬으면서
뭘 또 사냐고 싫은 소릴 했더니 5월달 가족여행에 우린 참석을 못하니까
선물이라도 보내고 싶어서란다.
다음은 내가 좋아하는 그릇가게로 이동, 생선 전용접시를 찾고 있는데 깨달음이
왠 접시들을 바구니에 넣으며 이번 아빠 제사 때 보니까
우리 엄마집에 개인용 작은 접시가 부족한 것 같더라고 엄마한테 보내드리잔다.
[ .......................]
점심을 먹기 위해 푸드코너로 이동.
쯔케멘을 맛있게 먹은 후, 깨달음이 자기 가방에서 꺼낸 건 삶은 계란이였다.
언제 삶았냐고 그랬더니 내가 샤워할 때 삶았단다.
아무튼, 장거리 외출을 할 때마다 빼놓지 않고 챙기는 게 삶은 계란이다.
손수건을 꺼내려고 내 가방을 열었더니 뿌시럭 뿌시럭 과자들이 종류별로 들어 있다.
어이가 없이 쳐다봤더니 이것들도 내가 샤워중에 모두 챙긴거란다.
그러면서 큰 인심이라도 쓰는 듯, 먹고 싶으면 먹어도 된단다. 자긴 삶은 계란 먹을 거라고,,
[ .......................]
내 가방 속에 한국과자를 넣으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2개씩도 아닌 종류별로 하나씩 넣어 놓고 먹어도 된다는 허락은 또 뭔지....
그렇게 삶은 계란을 2개 먹고, 몽쉘통통도 하나 먹고 아주 만족스런 표정을 하는 깨달음이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사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던 엄마집에 개인 접시...
5월에 우릴 기다릴지 모르는 조카 태현이를 위한 선물들....
손님 많이 치리는 작은 언니네를 위한 대형접시....
처제에게도 주고 싶다고 산 꽃무늬 접시까지...
늘 이렇다. 먼저 생각하고 먼저 행동하는 깨달음 때문에 난 늘 뒷차를 타는 기분이다.
챙겨줄 사람 많아서 부담스러울텐데도 그는 즐거워한다.
그럴 때마다 고맙고 미안하고 어깨가 무거워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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