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연휴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말 그대로 휴식을 취했다.
늦더위가 사람을 지치게 한 탓인지
우린 연휴라지만 무언가를 할 의욕마저
상실해 버린 것처럼 시원한 에어컨 바람 속에서
뒹굴뒹굴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가스불 켜고 음식을 하는 것도 사람을 지치게
하다 보니 전자렌지에 돌려서 먹을 수 있는
간편식이나 외식을 하면서
연휴를 보냈다.
그러다 우연히 티브이에서 나온
모츠나베(もつ鍋-곱창전골)를 같이 보다가
곱창 좋아하는 깨달음이 도저히 못 참겠다며
후쿠오카(福岡)를 가자고했고 마침 검색해 보니
바로 갈 수 있는 티켓이 있어 속옷만 몇가지
캐리어에 구겨넣고 바로 공항으로 달렸다.
예전엔 미리 계획 세워 갔던 여행을
요즘은 기분 내키는 대로, 몸이 움직이는 대로
시간 되는대로, 마음이 시키는 대로
본능적이고 즉흥적으로 변형되어가고 있다.
나이 들수록 염려되니 철절히 준비한다는
여행을 청춘도 아닌 우린 동물적 본능에
맡긴 채 움직이고 했다.
그렇게 후쿠오카에 도착, 호텔에 체크인을 미루고
깨달음이 예약해 둔 모츠나베집으로 바로 이동,
차가운 니혼슈와 함께 하카타(博多)의 명물,
타라코( たらこ-명란)에 술을 마시는데
어찌나 맛있던지 계속해서 술잔이 빈다.
[ 이렇게 여행 오는 게 훨씬 재밌지? ]
[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
[ 먹고 싶을 때 먹어줘야지, 안 그러면
항상 뭔가 만족스럽지 않아,,,,]
[ 맞아, 본고장에서 먹으니 기분부터 다르네 ]
[ 그렇지?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이
비행기 티켓이 딱 두 자리 비어있었잖아 ]
[ 그니까.. 원래 우리 자리였던 것처럼...]
[ 정말, 시간도 그렇고 티켓이랑 호텔까지
잘 맞아 떨여졌지..]
2시간 전까지만 해도 도쿄에 있다가
지금은 하카타(博多)에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 근데 진짜 한국사람 많다... ]
[ 그런데 이상한 게 여행자로 안 보이고
여기 거주하는 사람 같아, 희한하네...
오사카나 교토에서 보면 여행 온 사람인 걸
금방 알 수 있잖아, 근데 여기에 있는
한국인들은 마치 여기 사는 사람처럼
뭐랄까.. 스며들어 있다고 할까,,,
관광 온 게 아닌 익숙해하는 모습이야,,
낯설어하지 않는,, 다른 관광지하고
전혀 다른 분위기가 놀랍네...]
정말 그랬다. 분명 옷차림과 생김새를 보면
한국인인데 너무도 하카타 거리에
잘 어우러져 있다고나 할까,, 깨달음말처럼
낯설음이 전혀 보이지 않고
관광객 티도 나지 않고
적응이 아주 잘 된 모습이었다.
[ 후쿠오카에 자주 와서 그런 건가? ]
[ 부산에서 배로도 오가고 하니까 해외라기
보다는 친척집에 온 것 같은 느낌인가 봐,,]
[ 정말,, 그런가 봐..]
가게 앞을 지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한국인으로
혼자 여행 온 여자분도 꽤 보였고, 특히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듯한, 아니면 고등학생 같은
어린 남학생 그룹들이 상당히 많았다.
하카타는 일본인보다 한국인이 더 많은 게
아니냐는 얘길 하고 있는데 드디어 모츠나베가
나오고 쇼유아지(醬油味-간장맛)의 모츠는
우리가 기대한 대로 완벽함에 가까웠다.
역시, 비행기 타고 오길 잘했다며
깨달음은 뜨거운 국물을 연신 마시며
땀을 뻘뻘 흘렸다.
가게를 나와 나카스(中州) 쪽으로 향해 걷는데
강에 비췬 노천의 야타이(屋台-포장마차)
불빛이 한층 더 운치있는 분위기를 자아냈다.
우린 야타이거리를 한 번 둘러보고
후식을 먹기 위해 가까운 카페에 들어가
시원한 팥빙수를 주문했다.
맞은 편 즐비하게 늘어서선 포장마차는
손님들이 가득했고
호객행위하는 것이 훤히 보였다.
우리가 그 유명하다는 나카스의 야타이를
그냥 스치기만 한 데는 오전에 탔던
택시 아저씨의 간곡한?
당부의 말을 들어서였다.
나카스의 야타이는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하기 때문에 맛은 물론 무엇보다 위생적으로
아주 심각하다며 절대로 가지 말아야 한다고
하가타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문제점이
너무 많아 부끄러울 정도라고 하셨다.
그래서 현지인은 죽어도 안 가는 곳이
바로 야타이라며 우리에게
저렴하면서도 유명한 맛집을
여러 곳 소개 해주셨다. 아저씨 얘길
듣지 않았다면 우리도 분위기에
취해 야타이에서 술을 한 잔 했을 것이다.
[ 깨달음,, 정말 저 포장마차들이 그럴까? ]
[ 바가지요금은 이젠 많이 사라졌지만
음식 주문을 과하게 요구하기도 하고
빨리 먹고 빨리 가라는 식이래..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하니까 그렇게 됐겠지..
한국사람들이 많은데 배탈 날까
걱정이네... 우리가 좀 더 일찍 이 사실을
알았으면 좋았을텐데....]
우린 나카스 다리 위에서 버스킹을 하는
이름 모를 가수의 노래를 따라 불렀다.
깨달음이 한국사람도 저기서
버스킹 하면 좋겠다며 그러면 자기가
신청곡을 몇 곡 부탁하고 싶다더니 갑자기
가라오케(カラオケ-노래방)를 가자고 했다.
버스킹 하는 사람이 없으니 그냥 자기가
불러야겠다며 코로나 이후로 4년 만에
가보는 거라며 노래방에 들어가자마자
이은미 노래를 시작으로 깨달음
혼자만의 버스킹? 이 시작됐다.
그렇게 장장 2시간의 단독무대를 하고
마지막 곡은 역시나 여러분으로 장식을 했다.
[ 내가 이 노래를 18번으로 하고 싶은데
부를 때마다 가슴이 벅차서 눈물이 나,,
가사도 좋지만 멜로디가 너무 애절하지 않아?
여러분, 외로울 때 내가 위로해 드리겠습니다.
저한테 다 말씀하세요.
제가 다 들어드리겠습니다..
제가 친구가 되어 드리겠습니다..
너무 슬퍼하지 마시고, 너무 울지마시고
제가 진정한 친구가 되어 드릴테니
외로워 마세요..
여러분 곁에 제가 늘 있겠습니다 ]
술에 취한 건지, 노래에 취한 건지 깨달음은
정말 자기가 가수가 된 것처럼 폼을 잠고
맨트까지 섞어가며 심취해 있었고
2분 남았는데 다시 여러분을 눌러
또 부르기 시작했다.. 나카스에 있는
모든 한국 여러분에 친구가 되어드리겠다며..
친구가 되어주겠다는 깨달음에 애절한
목소리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매 순간, 매 시간을 정말 열성적으로
순수하게 살아가는 깨달음은 분명
좋은 친구가 되어줄 것이다.
상대가 누구든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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