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본인 신랑(깨달음)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사는 남편을 보며

by 일본의 케이 2023. 6. 12.
728x90
728x170

장마가 시작된 도쿄는 오늘도 비가 내렸다.

오전 중에 내리던 비가 오후면 잠깐 개이다가

밤이 되면 추적추적 아침까지 내린다.

주말인 토요일은 잔뜩 흐린날씨이긴 했지만

다행히 비가 오질 않아 나는 깨달음과 한

 약속을 지키기위해 약속장소에 미리 나가

쇼핑을 했다.

약속시간 20분 전, 깨달음에게서

역에 도착했다는 메시지가 오길래 서둘러

레스토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먼저 쇼코슈(紹興酒 소흥주)로 건배를 하고

깨달음이 먹고 싶다는 메뉴들을 주문했다.

[ 오늘은 내 마음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날인거지? ]

[ 응, 당신 하고 싶은 거, 먹고 은 거,

가고 싶은 곳,, 맘대로 하는 날이야,

아버지의 날이니까 ]

일본은 한국처럼 어버이날이 있지 않고

어머니의 날, 아버지의 날이 나눠져 있다. 

 

어머니의 날은 매년 5월 두 번째 일요일,

아버지의 날은 매년 6월 세 번째 일요일이다.

올 해는 6월 18일인데 우리 서로 선약이

있어 일주일 빠른 오늘을 그 날로 정했다.

원래는 한국처럼 자식들이 부모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는 날인데 우린 그냥

 상대가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는 날로

 우리끼리  멋대로 만들었다.

[ 깨달음,  뭐 하고 싶은 거 있어?]

[ 아니,, 없어, 근데 생각한 것은 있어 ]

[ 뭔데? ]

[ 그냥 생각만 해봤어. 실현될지 안 될지 

모르니까..]

[ 뭔데 그래? ]

[ 확신이 서면 말할게 ]

무슨 생각을 한다는 건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아서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작년엔 뭘 했는지 기억을 꺼내보다

다음 달에 있을 시부모님 제사에  관한 

얘기를 잠깐 나눴다.

[ 올 해도 벌써 반이 지나가네...]

[ 참,, 시간이 너무 빨리 가는 것 같아..]

[ 맞아,,, 나이 들수록 정말 하루하루가

쏜살같이 지나간다는 말이 맞는 거 같아 ]

갑자기 분위기가 무거워지길래 화제를 바꿔

맘대로 할 수 있는 귀한 오늘을 어찌

보낼 건지 다시 물었다.

 

[ 나 먹고 싶은 거 있어 ]

[ 뭐? ]

[ 10원빵 ]

[ 아,,, 그거,,,]

[ 여기저기서 하도 맛있다고 하니까

먹어보고 싶어서, 근데 왜 10원이야? ]

[ 몰라, 나도 ]

[ 10원에 파는 게 아니고 빵 모양이

10원짜리라는 거지? ]

[ 응, 그럴 거야, 오늘 먹을 거야? ]

[ 응 ]

[ 그럼,  여기 나가서 바로 가자 ]

우리 부부에게 어머니날, 아버지날은

상대가 어떤 제안, 어떠한 요구에도

태클이나 딴지를 걸지 않고 무조건 

흔쾌히 들어주는 날이며 모든 비용도

상대가 아낌없이 내는 날이기에

망설임 없이 가자고 했다.

그런데 10원빵  인기가 너무 많아  예전에

호떡집에  한 시간씩 줄을 서듯이 지금도

많이 대기한다는 걸 소문으로 들어서

약간 걱정이 되긴 했다. 

300x250

신오쿠보역에서 바로 보이는 10원빵집은

끝이 어딘지 모르게 줄이 서 있어서

 우린 뒷골목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그곳은 대기줄이 적어 내가 얼른 줄을 섰는데

깨달음이 가게 안을 둘러보더니 안 먹겠단다.

[ 왜 갑자기? ]

[ 그냥, 안 먹고 싶어졌어  ]

[............................. ]

줄 서 있는 내 손을 잡고는 옆 골목으로

들어가면서 다음에 먹겠다는 말만 했다. 

뭐가 마음에 안 든 건지 모르겠지만

다른 걸 먹겠다며 새로 생긴 듯한 카페에 

들어가서는 빵과 커피, 와인을 주문해 왔다.

[ 이거 봐 봐 굴뚝빵이래,  맛있겠지 ]

해맑게 웃으며 쟁반을 내려놓고는

손가락 비닐을 끼고 어떻게 먹는지

모르겠다며 옆 테이블을 곁눈질했다.

반응형

막 구워내서 너무 고소하고 맛있다며

휘핑크림에 찍어 먹으면 와인 하고도 

궁합이 잘 맞는다고 여기 오길 잘했다면서

10 원빵을 안 먹은 이유를 말했다.

자기가 생각해 보니 호떡도 그렇고 예전에

치즈핫도그가 한참 유행이었을 때도

코리아타운에서 사 먹지 않고 참았다가

 한국에서 먹었던 기억이 떠올랐다고

여기도 맛은 별반 차이는 없겠지만

본토에서 먹어야 제대로 맛을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한국에 가게 되면

먹을 생각에 안 먹은 거란다.

[ 예전에 안국역 앞에서 먹은 치즈핫도그 맛이

완전 환상적이었어, 아무리 여기 일본에서

같은 재료로 만든다 해도 본고장

오리지널 맛을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아서 ]

 [ 그래, 다음에 한국에 가서 먹으면 되겠네 ]

[ 그리고 나,, 하고 싶은 거 생각해 둔 게

있다고  했잖아 ]

[ 응, 뭔데? ]

[ 8월에 서울에서 일주일살이 해볼까 생각 중이야] 

[ ,,,,,,,,,,,,,,,,,,,,,,,,,,,,,, ]

 

일본에서 한국 자녀를 키우는 고충

“언니, 오랜만이에요. 몇 년만이지? 2년? 아니 3년만인가? 진짜 오랜만이다. 잘 계셨어요?” “응……. 네 블로그는 잘 보고 있어.” “아, 그래요? 잘 계시죠? 근데 무슨 일이세요?” “그냥, 네

keijapan.tistory.com

 

일본인이 한국 여친에게 감사한 이유

깨달음 후배분이 많이 늦을 거라는 연락이 와서 우린 일단 간단하게 건배를 했다. 오늘 우리가 만나려고 기다리는 분은 깨달음과 20년 이상 알고 지낸 후배로 40대 후반의 돌싱분이다. 40분이 지

keijapan.tistory.com

너무 느닷없는 전개여서 약간 당황스러웠지만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는지 물었더니 지금은

일주일을 어떻게 뺄지, 스케줄을 보며

날짜를 조율하는 중이란다. 

스케줄이 맞지 않으면 못 가니까

지금으로서는 아무런 계획을 세우지 못하지만

대략 큰 스케치는 그려뒀단다.

숙소는 서울역 쪽, 갈 곳은 강릉이나 포항,

그리고 청와대도 들어가 보고 오래전

한국에 처음 갔을 때  동대문 쪽에

막걸리가 유명했던 선술집 노포도 기억을

더듬어 찾아가 보고 싶단다.

[.......................... ]

728x90

계획을 안 세웠다더니 꽤나 많이 그것도

구체적으로 세운 티가 팍팍 났다.

역시 깨달음은 하고 싶은 것은 기필코 하고

사는 실천형 인간이 틀림없다.

정말 깨달음이 일주일살기를 하게 된다면

난 뭐해야 될지 갑자기 머리 속이

바쁘게 움직였다.

 

일본의 장례식에서 가장 슬펐던 두가지

시어머님이 돌아가신 지 보름이 지난 오늘, 깨달음이 32장의 사진을 내 카톡으로 보내왔다. 장례를 치르고 도쿄로 돌아온 우린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일상으로 복귀를 했고 한 번도 어머님

keijapan.tistory.com

일주일살기가 끝나면 한달살기도 해보겠다고

할 것 같은데...

깨달음에게 일주일살기는

그저 희망사항이고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거라 생각했는데 왠지 

실현될 것 같다는 예감이 휘몰아쳤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