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녁은 먹었냐? ]
저녁 9시가 넘은 시각,
엄마가 전화를 하셨다.
[ 니기 시부모님도 잘 계시지? 한국은
어버이날이였는디 일본도 있냐? 그런 거?]
[ 응, 있어, 6월달에 ]
[ 살아계실 때 한번이라도 더 찾아뵙고
그래라. 후회한께..깨서방은 뭐하고 있냐? ]
[ 드라마 보느라 정신 없어 ]
거실에 있는 깨달음을 불렀는데
전혀 대답이 없다.
요즘, 엄마는 새로 바꾼 스마트폰으로 삼촌들과
이모, 또 자식들에게 음성으로 카톡메시지를
보내는 재미에 푹 빠졌다고 하셨다.
[ 근데,, 엄마 왜 무슨 일 있어? ]
[ 아니,,뭔 일이 있는 것은 아니고,,니가
매달 용돈을 보내준께 통장을 볼 때마다
괜히 미안하고,,고맙고 그래서 ]
[ 오늘 은행 다녀오셨어? ]
[ 응 , 갔다왔는디 괜히 너한테도 깨서방한테도
죄스러워서 좀 그런다..]
[ 엄마, 부담 갖지말고 편하게 맛있는 거 사 드셔.
교회에서 권사님들한테도 가끔 대접도 하고
그러시라고 드리는 거야 ]
[ 그래도 어째, 니가 준 용돈은 허투로
못 쓰것어..]
[ 그냥 걱정말고 써, 아끼지 마시고 ]
결혼을 하고 처음엔 드리지 못했던 용돈을
5년전쯤 정기적으로 드렸던 것 같다.
그 전에는 한국에 갈 때마다 조금씩 드리긴 했지만
매달 정기적으로 드리지 못했고 이제는
조금씩이나마 매달 정해진 금액의 용돈을
양가 부모님께 드리고 있다.
그렇게 두쪽 집안에 똑같이 드리면서부터는
자식노릇을 한 것같아 자기만족을 해왔었다.
엄마에게 용돈을 드리는 이유를 굳이 말하자면
한달에 두어번 같이 식사를 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으니 혼자서라도 맛있는 음식을
드셨으면 하는 마음이였다.
멀리 떨어져 있으니 언제라도 자유롭게
식사를 함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여행을 모시고 다닐 수도 없으니
조금밖에 되지않는 용돈으로
면죄부를 받으려 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친정엄마에게 드리는 용돈과는 달리
시부모님께 드리는 용돈에는 또다른
의미가 내게 있었다.
큰 며느리라는 자리에 있지만 지금껏 한번도
나를 며느리입장으로 대하지 않으셨음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포함되어 있다.
한국은 5월8일이 어버이날이지만
일본은 어머니날, 어버이날이 따로 있어
두분을 따로 따로 챙겨드려야했다.
결혼을 하고 그날에 맞춰 두분께 선물을 들고
찾아갔을 때 시부모님은 내게 괜한 돈 쓰지 말라고
하셨고 그래서인지 당신들의 생신때도
전혀 뭘 원하지도 물론, 전화도 일절
하지 않으셨다.
원래부터 생일같은 건 축하한 적이 없으니
여느 평일과 같다시며..
내 주변 일본인 친구나 동료들 중에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는 사람은
10%정도였다. 개중에는 몸으로 떼운다는
친구들도 몇 명 있었다.
이곳도 부모님에게 효도를 못하는 이유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역시나
금전적인 여유가 없어서고, 바쁘고 먼 곳에
살다보니 그렇게 되더라고 했다.
저학년 자녀를 둔 동료들은 아이를 기르느라
부모에게까지 신경을 못쓴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들도 부모에게 효도한다는 것은
얼굴을 자주 보여드리는 것,
기념일에 선물을 보내는 것,
안부인사를 자주 드리는 것,
집안일을 도와 드리는 것
걱정시킬 일을 만들지 않을 것.
손자들을 자주 만나게 해드리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지만, 상대가 시부모님이면 돈도,
시간도, 안부인사도 전혀 다른 별개의 얘기가
되어버리는 건 한국과 같았다.
그리고 내게 시부모님께도 용돈을 드리는 자체가
너무 신기하다고 했었다.
엄마와 통화가 끝나고 한참을 지나서야
깨달음이 아까 자길 불렀냐고 묻길래
엄마와 통화내용을 말해줬더니
어버이날 선물을 보내드리지 못해 죄송하다고
전해달란다.
[그렇지 않아도 말씀 드렸어. 코로나 때문에
국제우편을 보내는 게 좀 불편해서 못 보낸다고 ]
[ 그냥 현금이라도 조금 송금을 할까? ]
[ 아니, 그럴 필요까진 없을 것 같애
아, 아버님께는 소포 보내 드렸어? ]
[ 응, 어제 소포 보냈어. 아마 또 전화 올거야,
과자 도착했다고, 주말에 코리아타운에서
당신이 골라준 한국과자도 넣어서 보냈으니까
더 좋아하실거야 ]
[ 잘했네, 근데 어머니날, 아버지날은
뭐가 좋을까? ]
[ 과일 보내드리면 되겠지. 아니면
스테이크정식이나 장어구이정식을
요양원쪽으로 배달시키면 될 것 같애 ]
[ 그럼 되겠네..]
지난 2월 한국에 갔을 때, 엄마에게
매달 20일이면 자동으로
이체가 될 수 있도록 신청을 했었다.
은행직원이 몇 년으로 할꺼냐는 질문에
5년이라고 했다가 얼른 2년이라고 다시 말했다.
왜 5년이 아닌 2년을 택했는지 그 때 내 머리를
스쳤던 건 2년후면 내가 한국에 들어와
살 수 있을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2년간이라는
기간을 설정했었다.
2년후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매달 20일이면 월급처럼 들어오는 용돈을
받아보실 때마다 엄마는 외국에서 살고 있는
딸과 사위를 생각할 것이다.
시부모님은 이틀에 한번씩 배달되어오는
과자와 과일, 통조림속에 챙겨넣은 용돈을
보시면서 큰 아들과 큰 며느리를 떠올리실 게다.
양가 부모님들께 드리는 용돈의 의미가 다르지만
멀리 있어 해 드릴 수 있는 게 적어
이렇게라도 성의표시?를 하고 있어 다행이라 생각한다.
요양원에 계시는 시부모님까지 챙길 이유가 뭐가 있냐고
몇몇은 내게 싫은 소릴 하지만내겐 시댁이라는
높은 문턱을 전혀 못 느끼게해주셨기에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용돈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앞으로도 친정엄마는 맛있는 걸 많이 사드셨으면 하는
바람으로 시부모님께는 며느리역할을 시키지
않으셨음에 대한 감사함을 전하는 마음으로
계속해서 용돈을 보내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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