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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

반백년을 살아도 모르겠다

by 일본의 케이 2020.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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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 깨달음은 러시아워를 피해

출근을 했다. 일주일만에 맞는 혼자만의 시간을

 좀 유용하게 쓰고 싶어져 아침부터 

부산하게 움직였다.

24시간을 그것도 일주일 내내 함께 있어야하는

 시간들이 서로에게 부담스럽다는 건 사실이다.

그래서도 이런 시간은 아주 귀하다.

먼저 구석구석 청소를 깔끔히 마치고 

차분히 머리를 말리는데 자꾸만

 흰머리가 눈에 거슬린다.

 언제 또 이렇게도 많이 자랐는지..

머리를 좀 자른 후에 염색을 해야할 것 같아

지난주 원장님과 통화를 해봤는데 역시나

 코로나로 휴업중이라 하셨다.

 TV에선 아직까지 PCR검사를 늘려야 한다는 얘기로

시끌벅적대지만 이젠 그것도 식상해졌고 

 언젠가 종식되겠지..

누군가가 백신을 만들겠지라고

남의 일처럼 내 관심사에서 벗어나버렸다.


 한두개 나던 흰머리를 거울에 얼굴을 바짝 들이대고

쪽집게로 하나씩 뽑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젠 염색을

 하지 않고서는 외출하기가 힘들정도로 

반 이상을 점령해가고 있다.

강경화 장관처럼 그냥 내버려둘까라는 생각도

 해봤는데 아직은 염색약이 필요할 것 같았다. 

앞 머리. 옆머리, 뒷목덜미까지 빈틈없이

흰머리가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내 나이 50이 넘어 중반을 향해가고 있으니

이렇게 흰머리가 가득차는 것도 별스러운 일이 

아니라고 조금씩 밤색으로 물들어가는 

머릿칼을 보며 위로해보았지만

 뭔지모를 무상함에 빠져들었다.

나이 50이면 참 어른중에 어른, 그리고

노인이 되기 위한 준비단계라 생각했던

내가 벌써 반백년을 넘게 살고 있으니.. 

작년에 결혼한 동창네 딸아이는 7월에 아이를 

낳게 되었다고 자기는 이젠 할머니라며

 볼멘소릴 하던 친구가 떠올랐다.

나는 자식이 없으니 평생 맛볼 수 없는

기쁨과 환희겠지만 친구는 한마디로 

표현하기 힘들만큼 복잡한 심경이라했다.

할머니가 되고,,그렇게 늙어가는 것인데

난 뭘 하고 살고 있는가.....


조금전에 받은 전화 한통이 내 머릿속을 더 

어둡게 만들어 가고 있었다.

나름 열심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지만

생각하는대로, 마음먹은대로 움직여지지

 않는게 삶이고 인생이였다.

올해 50대 중반을 넘어선 야노 상은 

지금껏 결혼해 가게에 보탬이 되도록

나름 열심히 파트타임을 뛰며 살아 왔는데

남편은 한시도 쉬는 꼴을 못보고 나가서

돈을 벌어오라고 한단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면서

일을 그만두면 온갖 눈치를 주는 통에

결혼 30년동안 자신은 그 집에서 뭐였으며

자신이 왜 지금껏 열심히 살았는지

 모르겠다고 억울하고 슬프다고 했다.

아침부터 쏟아붓는 남편의 잔소리에 못 이겨

 일단 집 밖으로 뛰쳐 나왔는데 24시간

맥도날드에서 3시간을 버티고 있다가

문득 내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다는 야노 상.

야노 상과 나눈 대화를 모두 옮길 순 없지만

긴 세월 아픈 말들로 인한 상처가 많았다.


[ 야노 상, 이혼이나 별거도 하나의

처방전이 될 수 있어요 ]

말해놓고도 아차했다. 이혼을 할 것 같았으면

진작 했을 것이고, 지금까지 버텨야했던

이유는 너무도 많았을 것이다.

 가끔 이렇게 상담이라는 명목으로

신세한탄이라도 하고 싶어

내게 전화를 주신 분들이 계신다.

그럴 때면 그분들의 입장에서 공감하며

이성적이고 모나지 않는 어드바이스를 

해드려야하는데 나도 모르게 내 감정이 실린

말들이 불쑥 앞서 나갈 때가 있다. 

지치고 피곤해서 의욕이 나질 않는다는 그녀가

마지막까지 하고 싶은 말을 다 뱉어낼 수

있도록 잠자코 들어주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야 지금껏 해왔던 

자신의 노력을 존중해야한다고 말을 할 걸

 그랬다는 후회를 잠깐 했다.

나 역시, 문제는 다르지만 

지금 이대로의 내 삶이 바른 것인지,

옳게 살고 있는지, 이게 내가 노력한 

삶의 결과인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속에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래서도 

그녀에게 위로와 안심감을 전해주는

따뜻한 말들이 떠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도 끝없이 자기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책을 붙들고 있고, 기회가 있으면 

좀 더 발전된 내 자신을 확인코자 경쟁속에 

뛰어드는 이런 삶을 반백년이 지났어도

 변함없이 하고 있다는 게 우습기 짝이없다.


뭘 얼마나 더 해야 멈출까,,.

얼마나 더 노력해야만이 이 

허허로움을 매울 수 있을까,,

 왜 그렇게 피곤하게 사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던 이유를 알면서도 그 피곤한 삶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인생의 답을 찾으려는 자체가 어리석은 거라는

 것쯤이야 알고 있지만 난 자꾸만 딱 떨어지는 

정답을 찾아 헤매고 있는 것 같다.

청춘이여서 아프다고 누군가는 말하지만

 중년에는 다른 색의 아픔이 기다리고 있다. 

어느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인생의 꽃은 핀다.

피는 시기가 다르듯 누구는 이미 피었고

누구는 아직 꽃봉오리에 머물러 있겠지만

 결국엔 꽃은 핀다.

다만 그 때를 기다려야 하고 그 꽃을 피우기위해

또 뛰고 뛰기를 반복하고 있나보다.

 그러기에 50이 넘도록, 이 나이 먹도록 아파하고

버둥거리는 이유인지 모르겠다. 

단순히 사는 법을 배우고 싶은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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