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해 손녀를 본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지금껏 휴가를 제대로 내 본 적이 없던 친구가
손녀를 보기 위해 3개월이라는 긴 휴가를 냈었다.
이번 휴가동안 한국에서 날 만나게 되면
많은 시간 함께 할 수 있겠다고 좋아했는데
코로나로 하늘 길이 묶인 탓에 가지 못하고,
이젠 그녀의 휴가도 끝이 나가고 있었다.
[ 나,, 다음주면 다시 회사 복귀야 ]
[ 그래,,너 쉬는 동안 가고 싶었는데...]
지금은 외국인에게 입국허가를 완화시켜서
한국에 나갈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나는 움직일 수가 없는 상황이다.
언제 한국 들어 올 예정이냐는 물음에
막연히 내년쯤이라고만 대답을 했다.
어젯밤 꿈에서 날 봤다며 어릴적 모습 그대로
오랜만에 중학생으로 돌아가 학교에서 떠들고
놀았는데 갑자기 어른 되어서는
둘이서
쇼핑을 하다가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는데
내가 갑자기 화를 내는 바람에 실랑이를
벌이다 잠이 깼다고 한다.
[ 왜 화를 냈어? 내가? ]
[ 뭐 때문에 화가 났는지 기억이 안 나]
꿈 속에서도 난 여전히 화를 자주내는 사람으로
등장하더냐고 했더니 죽는다고 웃었다.
아무튼 뒤죽박죽 된 꿈을 꾸고 나니
궁금해서 연락했다고 한다.
[ 우리도 이제 늙었지..]
[ 그러지..넌 벌써 할머니 소리 듣잖아..]
[ 케이야, 그래도 너, 성질 많이 좋아졌으니까
걱정 마, 지난 번 우리 딸 결혼식 때, 우리 남편이
너 보고 완전 온화해졌다고, 나이 먹은 티
난다고 그랬어]
[ 다행이다..그렇게 보여서...]
손녀가 깬 소리가 나서 우리 통화는 여기까지였다.
친구란,,참 좋은 관계인 것 같다.
허물없이 속내를 내 보일 수 있어
편하고,
굳이 포장하고 감추려 하지 않아서 더 좋다.
무엇보다 서로 친하다고 선을 넘으려 하지 않고
알고 있어도 모든 걸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아서 더 고맙다.
난 누구보다 청소년기가 힘들었다. 특히 중학교 때
자살을 하고 싶을 만큼 정신적으로
아픈 시간들을 보냈었다.
그런 나를 가장 빨리 알아차렸던 그녀는 행여나
내가 잘 못 될까봐 학교 수업이 끝나면
우리 집에 와서는 내 옆에 붙어 있었다.
자살을 해서는 안 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자기를 혼자 두게 하지 말아야하는
친구로서의 의무가 있는 거라며
내 손을 잡아 주기도 하고 울고 있는
내 등을 가만히 쓰다듬어 주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난 자살을 실행에 옮기려
했던 한 사람으로서 자살관련
책자를 즐겨 읽는다. 어느 책자엔
자살의 90%는 타살이라고 말하고 있다.
자살에 이르기까지 원인 제공자가 분명 존재하기에
타살이라 해석하고 있었다.
나도 이 논리에 100%공감을 하는 입장으로서
자살방지를 위해 주변 사람들이 뭘 해야하는지,
또한원인 제공자를 찾아 연결고리를 끊는
자연스러운방법들을 모색하고 연구하는
시간들을 갖고 있다.이 친구는
이 외에도 내 인생에 상당 부분에서
참 우정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 주었다.
20년전, 내가 이곳으로 유학을 오고 이 친구가
핸드폰을 분실하면서 내 연락처를 잃어버린 후로
연락이 두절 되었는데 나를 찾기 위해
어렴풋이
기억하는 내 친정집(광주 엄마집)을 찾아
아파트 라인을 몇 동째 돌아다니며
100가구이상 되는 집들을 한 집,
한 집씩 초인종을
눌러가며 확인해 기여코
우리집을 찾았던 친구이다.
또한, 2년전엔 내가 출간한 책을 뒤늦게 읽고는
막무가내로 일본에 오겠다고 했었다.
내 투병사실을 책을 통해 알게 된 친구가
그 동안 모르고 있었다는 게 너무 미안하다며
사과하러 당장 일본으로 가겠다며
고집을 피웠던 적도 있었다.
온순하며 순수한 그녀지만 한 번 마음 먹으면
직진밖에 할 지 모르는 우직함이 있는
친구 덕분에 지금도 이렇게
귀한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
인생이 힘들어질 때 속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친구만큼 큰 에너지를
가져다 주는 이도 없다.
친구에겐 구차한 설명을 할 필요가 없어 좋고
환경이 좋던 나쁘던 늘 같은 마음으로
대해줘서 더 고마운 게 친구인 것 같다.
좋은 일이 있으면 가장 먼저 알려주고 싶고
다른 사람에게 밝히기 싫은 일도 마음 열어
얘기하고 싶은 사람이다.
언젠가 내가 술 한 잔 마시면서 물었다.
[ 야,,넌 왜 자꾸 날 찾았어? ]
[ 널 좋아하니까....좋아하는 친구를
찾은 게 당연한 거 아니야? ]
화려하지도 그렇다고 초라하지도 않는
순수하며 수줍음 많은 내 친구,
지금와 생각해 보면 중학교 3년간,
내 마음엔
온통 울분과 서러움, 미움만이 가득차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슬퍼할 줄만 알고,
힘든 세상 차라리
떠나는 게 속 편할 거라며
줄곧 내 아픔을 키워 갔던 나,,
그런 나를 지켜준 친구,,
친구는 제 2의 내 자신이라고 하는데
성인군자같은 이 친구처럼 되려면 난 이번 생엔
무리인 것 같고 다음 생에는 흉내라도
낼 수 있는 인간이 되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생의 갈림길에 서 있던 날 붙잡아 준
친구에게 다시 한번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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